※ 이 글은 2014년 7월 26일 '미디엄(Medium)'에 게재했던 글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전쟁은 게임에 있어 단골 중의 단골 소재다. 죽이고 피 흘리고 파괴하는 극단적 폭력 행위.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도덕적 갈등이나 고민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승리한 쪽이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대전제를 앞세워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는 일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것을 다소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총과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 그 곳을 종횡무진 누비며 활약하는 영웅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를 너무 흔하게 보기 때문일까? 흠... 100%는 아닐지라도 아마 조금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니, 전쟁이 즈려밟고 지나간 무수한 '개인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생명이 덧없이 꺼져가는 참상 안으로 등 떠밀린 사람들. 그들 각자의 사연은 커다란 프레임 아래 묵살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매캐한 포화 연기 속에 가려진다. 그 안타까움을 조명하는 사례는 극히 소수다.
곁에서 쓰러지는 모두가 한 '인간'이지만, 전쟁은 그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2014년 6월 출시된 <발리언트 하츠: 더 그레이트 워(Valiant Hearts: The Great War)>는 '전쟁 속 개인'에게 뷰파인더를 맞춘 작품 중 하나다. 한 개인의 눈으로 본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그것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유비소프트 몽펠리에(Montpellier) 스튜디오에서 개발한 작품. 2.5D 카툰형 그래픽으로 제작된 횡스크롤 퍼즐 어드벤처 게임. 너도 나도 오픈월드를 외쳐대는 패키지 시장에서 꿋꿋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선형적 스토리라인도 주목할 만하다.
<발리언트 하츠>의 주인공은 전장을 주름잡는 영웅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농사를 짓다가 징집된 중년 사내, 대서양을 건너 참전했지만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던 병사,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일군에 복무하게 된 청년, 아버지를 찾아 구해내기 위해 의무병으로 참전한 아가씨...... 척 봐도 평범함이 풀풀 묻어나는 사람들이다. 아, 맞다.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은, 우리 귀염둥이 군견 멍멍이를 빼먹을 뻔 했군.
장담하건대, 엔딩 볼 때 쯤엔 정 든다.
다양한 방식의 퍼즐을 통해 풀어나가는 이야기. <발리언트 하츠>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전쟁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 현실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참혹함, 절망, 암담함...... 몇 마디 단어로는 도무지 표현하기 어려운 아비규환을 덤덤한 그래픽으로 촘촘하게 그려낸다.
주인공들은 과연 무엇을 잘못한 걸까? 시키는대로 다 했건만, 가면 갈수록 기구하게 꼬여가는 이야기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국가니 대의명분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들은 다 집어치우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눈 앞의 삶에 충실하는 사람들의 모습. 이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꼭 붙들고 있는 테마다.
이들이 걸어간 길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 스포일러가 될 테니 이쯤에서 입을 다물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주인공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한참동안 생각해보게 됐다. 그는 진정 '가치 있는 선택'을 했던 걸까?
아무리 열심히 산다 해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시대의 멘토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내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고 그토록 외쳐대는 건, 아마 그런 이유일 게다. 국가도 중요하고 타인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신경 쓸 일은 차고 넘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는 일이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마지막 그 순간에 결코 허망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 가닥 희망을 찾아 달리고 또 달리던 주인공의 치열한 삶. 덤덤한 표정으로 따라가던 그 여정의 마지막, 어느새 나는 촉촉해진 눈시울로 '내 삶'을 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