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권위를 마치 자신의 만능 무기처럼, 제멋대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온 날. 그 탓에마음속이 있는 대로 뒤집어진날이었다.
들끓는 마음으로 단어를 휘갈겨놓고서, 그날은 조용히 끝냈다.분노에 짓눌려 있을 때는 그저 푹 쉬는 게 답이다.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그것들을 유의미하게 엮어내는 것도 어려운 상태니까.
그로부터 며칠 뒤,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았던 날.
여느 때처럼 홀로 누워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문득, 생각의 흐름 속에 '권위'라는 단어가 끼어들었다.곧장 머리맡 노트를 끌어당겨 생각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었다.더 늦기 전에 이 단어로 인해 떠오르는 난상(亂想)들을 털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권위(Authority)라는 건 본래 좋은 말...이라고 나는 믿는다. 권위의 사전적 의미를 통해 얻은 결론이다.
어느 개인, 조직(또는 제도), 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그것을 '권위'라고 부른다.
여기서 핵심을 추려내자면... 인정, 그리고 영향력 정도일 것이다.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탄생할 수 있는(아마도)선한 것.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여러 명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다룬다고 인정받는 사람'도 일종의 권위라 할 수 있는 셈이다.
즉, 권위라는 건 태생적으로사회적인 개념이다.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없으며, 만약 그게 가능하더라도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누군가 인정해주어야만, 인정해줄 타인이 있어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마치 천부적이고 절대적인권리인듯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꽤 많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사회적 약속의 결과로 만들어진 권위(ex 대표적으로, 군대 계급)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경우가 특히많았다.
※ 위 이미지 속의 상황과 본 글의 취지는 무관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은 크고 작은 권위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그래서 위계질서라는 게 필요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권위가 휘둘러지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물론규모가 작더라도 권위의 횡포를 자주 볼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내가 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휘둘러지는 권위는 과연 정당한가? 진정 타인의 인정을 받는 영향력이라 할 수 있는가?
뭐, 누군가는 진심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난 그런 사람들을 '예비 꼰대' 또는 '꼰대 꿈나무'라고 부르고 싶다), 그보다는생존의 문제로 인해 권위를 '인정하는 척'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여기까지 쓰다가, 치밀어 오른 분노를 삭이기 위해 잠시 고개를 돌렸다.벽 한 편의 책장에서 책 한 권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능력보다 호감부터 사라>
구입한 지 10년 가까이 돼 가는, 참으로 오래된 책. 그 순간 등불이 밝혀졌다. 내 머리와 마음을 옥죈 '가짜 권위'를 정의할 수 있는 표현을 찾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게 되는 포인트는, 대개 특정한 능력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약 인간적으로 비호감인 경우라면? 아무리 출중한 능력이라도 다소 빛이 바래기 쉽다. 아니면 능력 외의 것으로 헐뜯어지거나.
하물며...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도 겪어보지 못한 채로, 인간적인 호감조차 생기지 않게끔 행동하는 사람. 그런 이가 권위랍시고 휘두르는 것을 목격하고 나면 어떨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며칠 전 분노에 짓눌렸던 내 모습과 비슷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간단하게 말해서, '같잖은 데다가 꼴 보기도 싫은데 그런 놈이 상급자인 상황'을 생각해보면된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나 역시 완전히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권위를 앞세우고 부당하게 휘두른 과거를갖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첫 사회생활을 경험한 곳에서 양보와 겸양, 솔선과 공감의 미덕을 아는 분을 상사로 만나게 됐다.덕분에 '진짜 권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 계기를 얻었고, 오랜 숙고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짜 권위를 쌓아가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
그렇기에, 살면서 만나게 되는 가짜 권위에 대해 한층 더 과격하고까칠한 반응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반은 지난 과오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나머지 반은 '진짜 권위'가 충분히 빛을 받을 수 있는 세상임을 증명하려는 의미로.
너도나도 '자존'이 높은 시대다. 누군가는 평균적인 교육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핵가족화와 소수의 형제자매가 일반화된 결과라고도 한다.
물론 실제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높은 자존을 지닌 이들이 점차 세상의 주축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가짜 권위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점이다.
근거 없는 권위, 증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 권위. 앞으로의 세상에 그런 껍데기뿐인 가짜 권위가 설 자리 같은 건... 빠르게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자신과는 다른 능력과 장점을 지닌 이에 대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인정. 그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영향력. 그런 진짜 권위가 당연해지는 미래가 오기를 소망하며, 나 또한 그렇게 살기 위해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려 한다.
그리하여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장황한 한탄을 풀어놓어야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기를. 그리하여 결국은 없어지기를.
이 대목에서 불현듯 이 책 제목이 떠올랐다. 이유는... 좀 복잡해서 굳이 풀어놓지는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