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을 줄 몰랐던 상처, 시간이 지나면 <새 살>이 돋아나겠죠
"으아아앙~"
현관에서부터 들려오는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얼른 몸을 일으킨다. 여섯 살 난 조카 녀석이 무릎에 피를 주르륵 흘리며 서 있다. 에휴...... 평화로운 주말은 이미 물 건너갔고, 누나와 매형에게 얻어터지는 비극이라도 면하려면 얼른 조치를 취해둬야 한다.
"어허, 뚝! 대장부가 좀 아프다고 울고 그러는 거 아니야."
"훌쩍, 훌쩍, 크흥."
고리타분한 데다 성차별적 표현까지 들어있는 멘트지만 역시 애들에게는 효과만점이다. 목청껏 데시벨을 뽐내던 조카 녀석은 금새 훌쩍이며 눈물을 쓱쓱 훔쳐냈다. 대강 살펴보니 모래만 좀 묻어 있을 뿐, 파편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 얼른 욕실로 데려가 간단하게 씻기고 구급상자를 꺼내들었다.
"이잉, 삼춘. 그거 아픈데."
"시끄러 임마. 이거 발라야 빨리 낫는 거야."
과산화수소를 잔뜩 묻힌 솜을 들이대자 조카는 울상이 된다. 일주일에 두세 번 꼴로 다칠 만큼 활동적인 녀석인지라 소독약이나 연고와는 이미 친할대로 친해진 사이. 덕분에 나와 실랑이 벌이는 것도 일상다반사라는 게 문제지만.
상처 부위에 거품이 부글부글 일자 조카는 오만상을 찌푸린다. 피식 웃으며 면봉에 연고를 묻혀 쓱쓱 발라줬다. 이젠 제법 적응했는지, 금새 눈물자국만 남긴 채 뚝 그쳤다.
"근데 있자나, 삼춘."
"응?"
"사내 대장부는 얼마나 많이 아파야 우는 거야?"
"잉? 무슨 질문이 그래?"
"쪼금 아플 때는 울면 안 되자나. 그럼 삼춘은 많이 아파서 운 거야?"
젠장. 이 녀석 뭔가 봤구나. '삼촌'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꼬맹이가...... 뭘 본 거지? 분명히 문을 잠궜던 거 같은데, 아니었나? 문 잠근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 걸 보니 아무래도 그 날이 맞는 듯 싶다.
정말 서럽게 울었던 날이었다. 밖에 가족들이 있었기에 소리내어 펑펑 울진 못했지만, 훌쩍거리며 베개에 적셔낸 눈물만 해도 몇 리터는 됐을 거다. 당장 헤어지고 온 날도, 보기 좋게 차인 날도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는 정식으로 사귀던 사이도 아니었다. 우스운 일이지. 길을 걷다가 문득, 흔히 말하는 '썸' 정도였던 사람이 보고 싶어져 그 난리를 피웠으니.
가로수길을 걷던 중이었다. 우연히 쇼윈도에서 그녀가 즐겨입던 옷과 똑같은 걸 발견했다. 3개월치 용돈을 모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기분으로 산 옷이라 했었다.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와 단 둘이 만날 때는 거의 항상 입던 거였다. 덕분에 난, 그 옷을 볼 때마다 이 등신 같은 짓거리를 하게 됐지만.
누군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쿡쿡 쑤셔서 도무지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표정을 감춘 채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방에 틀어박혔다. 그러고보니 그 날, 문을 닫을 때 아무런 소리가 안 났던 것 같기도...... (그때 봤겠구나, 이 어린 노무 자식...)
울고 또 울고,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 소리만으로 끅끅댈 즈음에야 통증이 멎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던 그녀의 잔상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음... 저번보다는 좀 짧았나? 아닌가? 잘 모르겠다. 시계 보면서 우는 건 아니니까.
적어도 내 방 안에서는 자유다. 그녀를 떠올릴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이제 됐어. 아프지 않아. 살다보면 또 언젠가 생각나겠지만, 이 정도라면 견뎌낼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지워가면 되는 거다.
"삼춘, 삼춘, 피 멈췄어."
"응?"
"이거 봐바. 이제 피 안 나."
"그러네. 이제 안 아파?"
"응! 안 아파. 삼춘, 고맙습니다~"
눈물자국을 씻겠다며 일어서는 조카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줬다. 그래, 피 나던 생채기가 나아가듯 그렇게 조금씩 지워가면 되는 거다. 그럼 언젠가 마음 속 그 자리에도 새 살이 돋아날 거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꼭 그렇게 될 거다.
https://www.youtube.com/watch?v=-O7vdLDvrJc
갑자기 걷다가 멀쩡히 웃다가
생각납니다
꼭 잊을 만하면 괜찮을 만하면
그댄 다녀갑니다
가시라도 박힌 것처럼 불에 덴 것처럼
아파옵니다
꼭 아물 만하면 견뎌낼 만하면
돋아납니다
그리워서 보고파서
삼켜내 눈물에 짓물러버린
나의 상처 위에도
새 살 돋아나는 날이 올까요
그대가 아주 잊혀질 날이 올까요
항상 어긋나기만 했었던 사랑이라서
내가 잊으면 돌아올까봐
잊을 수도 없죠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게 참 알 수 없는 게
사랑입니다
꼭 닿을 만하면 익숙할 만하면
떠나갑니다
이제 다시 못쓸 만큼
허물어져버린 아프디 아픈
나의 가슴 속에도
새 살 돋아나는 날이 올까요
그대가 아주 잊혀질 날이 올까요
항상 어긋나기만 했었던 사랑이라서
내가 잊으면 돌아올까봐
잊을 수도 없죠
새 살 돋아나는 날이 온대도
그대가 아주 잊혀질 날이 온대도
한 사람에게만 길들여진 가슴이라서
그대 아니면 어떤 사람도
안을 수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