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사랑Talk #4. 손 끝의 온도

이쯤 되면 셀프디스 하는 기분도 들어서 타이핑이 좀 망설여집니다

by 이글로

그 시절, 통학용으로 쓰던 내 자전거에는 뒷좌석이 달려 있었다.

요즘은 그리 흔치 않은, 사람보다는 짐을 위한 공간으로 쓰곤 하는 그 쇳덩어리(?) 말이다.

집 마당에서 혼자 꾸역꾸역 이걸 달 때는 과연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빨라도 밤 10시부터가 시작일 수밖에 없었던, 굵고 짧은 그 아이와의 시간에 참 많은 도움이 돼 주었다.


뒤에 앉은 그 아이가 내 허리를 잡았던가……?

아마 그랬을 거다.

허리 말고는 딱히 붙잡을 데가 없었……을 테니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거의 0.1t을 바라보던 체중과 그로 인한 '배둘레햄' 때문에 자존심에 셀프디스를 먹인 뒤, 그 기억과 느낌을 통째로 들어내버린 게 아닐까 싶다.

좀 아깝네, 솔직히.


자전거에 그 아이를 태우고 돌아다닌이 꽤 여러 번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건 천변을 달렸던 어느 하루 뿐이다.

그 추운 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위로 달리면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니 가만, 그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차갑고 딱딱한 뒷좌석에 손수건 하나라도 깔아준 적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새삼스레 스스로의 무심함에 한 번 더 혀를 내두르게 되는 순간. 휴우……



그 아이는 추위를 많이 탔고, 손발이 꽤나 차가운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따뜻하다며 내 손을 종종 잡아'줬었지'……

마디도 굵고 손가락 길이도 짧아 콤플렉스였던 내 손이지만, 그 때만큼은 참 좋았었다. 행복했었다.

겨울이 가까워오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의 어느 날, 함께 걷던 거리 어딘가에서 그 아이가 그랬다.

"네 손 되게 따뜻하다. 겨울에는 나랑 자주 좀 만나야겠다"고.

말만으로도 좋았었다. 행복했었다.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자기 손이 너무 차가워 미안하다 했지만,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람.

그 손에서 내가 느낀 감촉은 오직, 부드러움과 자그마한 따스함 뿐이었는데.

그 아이가 미안해하던 차가움 같은 건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손 끝을 타고 전해지던 작은 전율은, 심장으로 올라가 두근거림을 만들었다.

내겐 유달리 크게 느껴졌던 박동은, 다시 온몸을 한 바퀴 돌아 따스한 파장을 이뤘다.

그저 손 끝이 닿은 것만으로 빚어진 마음 속 선율을, 그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

언젠가 단둘이서만 마주하게 된다면, 쪽팔림을 무릅쓰고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기억이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관한 기억들 중 비교적 또렷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거나 다소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것도 있을 게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건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시절.

그 색깔이 더 바래지기 전에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어 시작한 글이다.

기억 자체가 몇 개 되지 않았기에 그리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하나를 적다보면 또 하나가 떠오르는 기이한 일이 며칠째 반복되는 중.


솔직히, 하나하나 되짚을 때마다 스스로도 '유난 떤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데, 무슨 옛날 시골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플라토닉 러브 스토리라도 되는 듯 과장해서 묘사하는닐까.

만약 누군가 그렇게 비판한다 해도 딱히 반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 그 시절의 '현실'이 내 '추억'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거라는데는 나도 동의하니까.



다만 분명한 건, 그때의 내가 느낀 손 끝의 온도와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손 끝의 온도 만큼은 언제까지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

매일 늦은 밤까지 '어떻게 하면 더 오글거리게 쓸 수 있을까' 따위의 괴랄한 고민을 하는 이유다.


그 시절의 모든 기억이 콩깍지였든, 사춘기의 환상이었든, 혹은 또다른 무엇이었든 상관 없다.

지금 난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주길 바라는, 그 시간 속을 거닐며 무척 행복하니까.






어떤 사랑Talk #1. 어느 미련함에 관하여

어떤 사랑Talk #2. '처음' 만난 그때

어떤 사랑Talk #3. 진한 흔적을 남겼어...

어떤 사랑Talk #4. 손 끝의 온도

어떤 사랑Talk #5. 완 - '오늘의 사랑'을 향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떤 사랑Talk #3. 진한 흔적을 남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