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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Dec 04. 2015

어떤 사랑Talk #4. 손 끝의 온도

이쯤 되면 셀프디스 하는 기분도 들어서 타이핑이 좀 망설여집니다

그 시절, 통학용으로 쓰던 내 자전거에는 뒷좌석이 달려 있었다.

요즘은 그리 흔치 않, 사람보다는 짐을 위한 공간으로 쓰곤 하는 그 쇳덩어리(?) 말이다.

집 마당에서 혼자 꾸역꾸역 이걸 달 때는 과연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무리 빨라도 밤 10시부터가 시작일 수밖에 없었던, 굵고 짧은 그 아이와의 시간에 참 많은 도움이 돼 주었다.


뒤에 앉은 그 아이가 내 허리를 잡았던가……?

아마 그랬을 거다.

허리 말고는 딱히 붙잡을 데가 없……을 테니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거의 0.1t을 바라보던 체중과 그로 인한 '배둘레햄' 때문에 자존심에 셀프디스를 먹인 뒤,  기억과 느낌을 통째로 들어내버린 게 아닐까 싶다. 

좀 아깝네, 솔직히.


자전거에 그 아이를 태우고 돌아다닌 날이 꽤 여러 번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건 천변을 달렸던 어느 하루 뿐이다.

그 추운 날 울퉁불퉁한 보도블럭 위로 달리면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니 가만, 그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차갑고 딱딱한 뒷좌석에 손수건 하나라도 깔아준 적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새삼스레 스스로의 무심함에 한 번 더 혀를 내두르게 되는 순간. 휴우……



그 아이는 추위를 많이 탔고, 손발이 꽤나 차가운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따뜻하다며 내 손을 종종 잡아'줬었지'…… 

마디도 굵고 손가락 길이도 짧아 콤플렉스였던 내 손지만, 그 때만큼은 참 좋았었다. 행복했었다.

겨울이 가까워오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의 어느 날, 함께 걷던 거리 어딘가에서 그 아이가 그랬다. 

"네 손 되게 따뜻하다. 겨울에는 나랑 자주 좀 만나야겠다"고.

말만으로도 좋았었다. 행복했었다.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면서 자기 손이 너무 차가워 미안하다 했지만,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람. 

그 손에서 내가 느낀 감촉은 오직, 부드러움 자그마한 따스함 뿐이었는데.

그 아이가 미안해하던 차가움 같은 건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손 끝을 타고 전해지던 작은 전율은, 심장으로 올라가 두근거림을 만들었다.

내겐 유달리 크게 느껴졌던 박동은, 다시 온몸을 한 바퀴 돌아 따스한 파장을 이뤘다.

그저 손 끝이 닿은 것만으로 빚어진 마음 속 선율을, 그 아이는 알고 있었을까?

언젠가 단둘이서만 마주하게 된다면, 쪽팔림을 무릅쓰고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기억이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 관한 기억들 중 비교적 또렷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거나 다소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것도 있을 게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건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시절.

그 색깔이 더 바래지기 전에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어 시작한 글이다.

기억 자체가 몇 개 되지 않았기에 그리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그게 아니더라.

하나를 적다보면 또 하나가 떠오르는 기이한 일이 며칠째 반복되는 중.


솔직히, 하나하나 되짚을 때마다 스스로도 '유난 떤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다지 오래된 이야기도 아닌데, 무슨 옛날 시골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플라토닉 러브 스토리라도 되는 듯 과장해서 묘사하는 건 아닐까.

만약 누군가 그렇게 비판한다 해도 딱히 반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 그 시절의 '현실'이 내 '추억'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거라는데는 나도 동의하니까.



다만 분명한 건, 그때의 내가 느낀 손 끝의 온도와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손 끝의 온도 만큼은 언제까지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간직하고 싶다는 . 

매일 늦은 밤까지 '어떻게 하면 더 오글거리게 쓸 수 있을까' 따위의 괴랄한 고민을 하는 이유다.


그 시절의 모든 기억이 콩깍지였든, 사춘기의 환상이었, 혹은 또다른 무엇이었든 상관 없다.

지금 난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답게 남아주길 바라는, 그 시간 속을 거닐며 무척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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