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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Dec 02. 2015

어떤 사랑Talk #3. 진한 흔적을 남겼어...

솔직하게 쓴다고 썼는데 당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내가 거기 가서도 너 안 잊으면,
그땐 받아줄래?



미치고 팔짝 뛸 만큼 오그라들 것 같은,

하지만 10여 년 전 어느 날,

실제로 입 밖에 냈던 멘트다.


고르고 골라 준비했던 멋진

(그땐 그렇다고 생각했던) 말들?

다 소용 없었다.

현실은 결코 내가 예상했던 대로,

원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그 당연한 사실을 그땐 몰랐고,

게다가 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만큼 노련하지도 못했다.  

…… 지금이라고 딱히 다를 건 없지만.


어렵게 한 토막 끄집어낸 용기였건만,

원하는 것을 얻기엔 부족했던 듯 싶다.

세상의 온갖 어두운 기운은 모두 제 것인 양,

우울한 감정을 줄기줄기 뿜어내던 소년.

그 아이가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던 건,

외모는 둘째치고 내 마음이 너무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홀가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창피했다.

그래서 꺼낸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인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가장 진심을 내보여야 할 그 순간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잘못이 아니건만,

그땐 왜 그리도 자신이 없어 횡설수설 말을 돌리고 허둥댔던 걸까.


그 이후로, 밤 10시에 맞춰 버스 정류장에 나간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의 순서가 워낙에 뒤죽박죽인지라 나조차도 확신하기가 어렵다.

아마 내 소심한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일부러 피해다니지 않았을까.

그 비 내리던 밤을 꼬박 새워 기다리고도 인사 한 마디 전하지 못했던 건, 미련하리만치 자신감이 부족했던 남자에게 딱 어울리는 결말이었을지도.



해가 바뀌었다.

2006년 2월 12일.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살았던 정든 집을 떠나 자취방을 구했다.

그 후로 10여 년 동안 난 그 아이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같은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어졌다면 재미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건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 현실은 항상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곤 하니까.

 

낯선 곳에서 시작한 새로운 관계들.

집을 떠나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날의 절박했던 마음을 꼭 붙들고 있기란 녹록치 않았다.

'오매불망 한 사람만을 마음 속에 담아두는 순애보' 같은 걸 감당하기엔, 애초에 내 그릇이 충분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그 아이가 남겨놓은 흔적이 꽤 강했던지,

어쩌다 한 번씩 생각날 때가 있었다.

만약 그 아이가 이 글을 본다면 억울해 할 일이겠지만,

어쨌거나 내겐 아픔으로 남아버린 진한 흔적.


가끔 불 꺼진 텅 빈 방에 들어가기 싫어질 때,

술 생각이 간절해 함께 잔을 기울일 친구를 찾을 때,

그러다 결국 시간 맞는 사람을 못찾아 혼자서 술잔을 비워야 했을 때……

그럴 때마다 아픈 흔적은 갑작스레 떠올라 날 흔들어놓았다.

술만 들어갔다 하면 휴대폰으로 민폐를 일삼던 시절,

그 아이의 연락처를 몰랐던 건 정말…… 다행이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 2년 간의 대학생활 동안,

술로 인해 만들어진 흑역사는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그토록 닮기 싫어했던 아버지의 술버릇을 고스란히 빼다박았던 탓에, 인간 관계는 늘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갔었다.

물론, 애정 전선도 그리 맑지 못했고.


복학 이후로는, 최대한 납작 엎드려 살았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은 했다.

여전히 모난 곳이 많던 사회성 덕분에 그 와중에도 흑역사는 끈질기게 페이지를 채워가고 있었지만,

다행히 예전에 비하면 많지는 않았다.

아마 그 시절 나를 알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주변도 없고, 딱히 재미도 없고, 그냥 일만 하는 사람' 정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그 아이가 남겨준 흔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툭툭 찾아오곤 했다.

언젠가 명절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을 때, 그 아이가 생각나 집 앞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는지, 그 곳엔 아예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더라.

그 아이를 떠올릴 수 있는 마지막 조각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그제서야 미련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조곤조곤 거절의 이유를 말해주던 그 아이의 목소리를 난 왜 그냥 듣고만 있었을까.

그때 어떻게 말했어야 했는데.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아직 이 도시에 있긴 한 걸까.

뭐,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들과 함께. 


그리고 ……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체념도 함께.






어떤 사랑Talk #1. 어느 미련함에 관하여

어떤 사랑Talk #2. '처음' 만난 그때

어떤 사랑Talk #3. 진한 흔적을 남겼어...

어떤 사랑Talk #4. 손 끝의 온도

어떤 사랑Talk #5. 완 - '오늘의 사랑'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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