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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5. 2015
어떤 사랑Talk #1. 어느 미련함에 관하여
소심하게 흘려보낸, 10여 년 전 비 내리던 밤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보고 싶다'는 표현을 떠올릴 만큼 내 감정을 속속들이 알던 시기도 아니었다.
휴대폰? 없었다.
나에게도, 그 아이에게도.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믿기 힘든 옛날 얘기 같지만, 그땐 그랬다.
그리 모범생도 아니었던 내가
'휴대폰 사지 말라'는 교칙은 왜 그리 미련하게 지켰던지
...... 그토록 후회될 수가 없었다.
몇 번 만나며
알게 된 집전화번호로 걸면,
으레 그 아이의 할머니가 받으시곤 했다.
"집에 없다"든가 "잘못 걸었다"
매번 돌아오던 비슷한 대답.
밤마다 몇 시 즈음, 집 근처 정류장으로 나가는 습관이 생겼다.
그 아이가 스쿨버스를 탄다면,
그 곳에서 내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공률이 그리 높진 않았다.
버스가 정확히 몇 시에 지나간다는 보장은 없었기에.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날, 횡단보도를 건너며 바라보니 스쿨버스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리지 않았다.
초조
함
.
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나 멍한 채로 있었을까.
어느 순간,
그 아이의 집 앞에 서 있
던 나
.
이건 뭐......
되돌아보니 정말 무슨
연애
소설에나 나올 듯한 이야기 같네......
소심했던 나는 집 문을 두드려볼 용기도 내지 못했다.
그 늦은 시간에, 단지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라고 말할만큼 당돌하지도 못했다.
차선책. 그 아이의 집 건너편에 우두커니 서 있기.
미용을 배우는 아이였기에,
혹시 학원 같은 곳에 들렀다가 조금 늦게 오는 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시계가 없어 몇 시인지 알 턱이 없었다.
무료해지면 이따금씩 달이나 별을 올려다보며 중2병스러운 감성만 만끽하고 있었을 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도 안 가지고 나왔고, 딱히 비를 피할 곳도 없는 상황.
그냥 서 있었다.
그 시절 성격을 떠올려보건대,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심정이었을 거다.
아마.
부슬부슬 내리던 물줄기는 점점 굵직해지더니,
곧 그야말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전 처량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맞아보니 의외로 괜찮더라.
물에 빠진 생쥐마냥 흠뻑 젖었어도,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무척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오직 그 나이였기에 가능했던 희대의 삽질이 아니었을까.
시간은 어떻게든 계속 흘렀다.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다.
밤하늘을 구경하기도 하고,
발 밑의 돌멩이들을 툭툭 차기도 했다.
이따금씩 누군가 지나가며 흘끔거릴 때면 괜스레 딴청을 피우기도 하고......
하긴, 의심스럽게 보이기에 충분한 몰골이었지.
경찰이 봤으면 스토커로 잡혀갔을지도 모르고...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어도,
최소한 여고생 혼자 돌아다니기엔 이미 한참 늦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그대로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어느 순간,
비가 그쳤다.
갑작스레 쏟아졌던 것만큼, 갑작스레 그쳤다.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진하디 진한 곤색 대신 푸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비춰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끼익-
길 건너편, 수시로 확인하던 바로 그 집.
대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아이였다.
여느 때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모습.
그때의 감정은 뭐였을까?
지금도 여전히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그건, 홀가분함이었을까?
아니면 안도감 같은 거였을까.
그 날의 내가 몇 학년이었는지,
그때가 정확히 몇 월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 하나 할 것 없던
시간토막을,
비오는 긴 밤을 대체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이른 아침, 난 그 아이를 부르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아서.
지난 밤 집에서 잘 쉬었음을 확인했고, 별일 없이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는 뒷모습을 봤다.
그거면 됐다, 나는.
내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리고 휴대폰이 없던 두 고등학생의 10여 년 전 만남도 딱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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