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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Dec 10. 2015

어떤 사랑Talk #5. 완 - '오늘의 사랑'을 향해

언젠가 다시 '과거의 이야기'로서 풀어놓을 수 있기를

비오던 날의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고향에 내려온 뒤  무척 단조로운 삶을 누려온 지도 어느새 3개월이 되는 시점이었다.

집 - 헬스장 - 카페... 산속 암자에 들어가 살라고 해도 그다지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패턴.

어쩌다 한 번씩 서점에 들르거나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를 제외하면 정말 입산해도 될 뻔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11월 17일 화요일 밤 12시.

전날 결방한 탓에 2회 연속 방송을 했던 <육룡이 나르샤>가 끝난 후, 부리나케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지스타2015 참관을 위해 부산에 다녀온 이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뒀던 초등학교 때 친구였다.


어린 시절 하교 방향이 같아 자주 붙어다녔던 친구였는데, 서로 다른 중학교를 간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게 어느새 16년 전 이야기다.

새벽에 술을 마시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만난 코찔찔이 시절 친구.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오랜만에 만났지만 할 이야기는 차고 넘치게 많았기에 어색하지는 않았다.

둘 모두가 간직한 기억, 한 쪽만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은 자연스레 오갔다.


다른 기억나는 친구가 있냐며 서로 이름들을 읊다가 문득, 마음에 묻어뒀던 그 이름을 꺼냈다.

쿵쾅쿵쾅, 심장이 빠르게 뛴다.

마주 앉은 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연락처가 있다"며 자연스럽게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간신히 "오랜만인데 보자."는 건조한 한 마디만 겨우 끄집어냈다.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전화 너머에서는 흔쾌히 그러겠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거짓말처럼, 10여 년의 시간을 지나, 그렇게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는 길에 같이 데려오겠다며 친구는 술집을 나섰다.

입구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바로 그 순간, 그 아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술에 만취했을 때 이따금씩 떠오르던 그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짧았던 머리가 좀 길어졌고, 무척 야윈 편이었던 그때에 비하면 적당히 살이 붙은 정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우물쭈물했던 듯하다.

내 기억이 세월을 따라 변한 건지,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아이가 안 변한 건지......

그렇게 '그 아이'는 '그녀'가 되어 다시 내 앞에 앉았다.


.

.

.


이후의 이야기는 잠시 멈춰두려 한다.

본래 말로는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고, '그 아이'에서 '그녀'로 호칭을 바꾸는 데만 해도 내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호칭이 바뀌었다는 것.

즉, 여기서부터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라는 것.

그동안 써왔던 과거의 '어떤 사랑Talk'은 이쯤에서 잠정 휴재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난 사람을 대하는 일에 서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어느 한 쪽의 일방통행일 수 없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현재의 관계와 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단지 내 욕심을 채우고자 기록으로 남겨둔다면, 혹여 훗날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여기서 쉼표를 찍는 가장 큰 이유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불현듯 한 번씩 떠올라 그리워했던 대상을 다시 만난 지금, 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 마음에 충실해보려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언젠가, 오늘의 이야기를 '과거'로 되새기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기를 나도 바란다.

과거의 사랑이 아닌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사랑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나도 간절히 바란다.


누군가가 살아온 과거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뻔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이야기였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사랑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겐 과거라는 게 존재해.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아군이든 적군이든... 누구나 복잡하거나 단순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 때론 그 과거를 알게 됨으로써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정반대로 바뀌기도 하고 나쁘거나 좋았던 감정이 더 커지기도 해... 이렇듯 과거라는 건 인생의 결과물이자 한 사람을 증명하는 설명서 같은 거야... 그 중 내 과거는 지독히도 뻔하고 뻔한 삼류 드라마 같아. 그래도... 듣고 싶냐?

-웹툰 <트레이스>, Episode. 장미 3화, 모리노아 진의 말 중-




어떤 사랑Talk #1. 어느 미련함에 관하여

어떤 사랑Talk #2. '처음' 만난 그때

어떤 사랑Talk #3. 진한 흔적을 남겼어...

어떤 사랑Talk #4. 손 끝의 온도

어떤 사랑Talk #5. 완 - '오늘의 사랑'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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