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의 심장에 박혀버린 <단 한 사람>
"넌 임마, 멀쩡하게 생겨서 왜 맨날 혼자냐?"
"응? 글쎄다. 그 이유를 정확히 몰라서 혼자인 게 아닐까나."
"……야, 잠깐만. 나 눈가에 습기가 차는 것 같은데."
농담처럼 주고 받았지만, 사실 K는 왜 L이 혼자인지 그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그런 이유. 그래서 안 믿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더라?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기획해줘야 하나. 아니지, 좀 더 최신 트렌드에 맞게 <SNS는 사랑을 싣고> 같은 걸로 해야…… 뭐 그런 생각.
그 날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L의 눈에는 별다른 색깔이 없었다. 그건 무슨 감정이었을까. 당시에는 생각해본 적 없던 의문이 이제서야 생겨난다.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하면, 화 내려나? 아냐, 이해할 거다. 내가 아는 L이라면. K는 그렇게 생각하며 친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임마,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
"좋지. 팔은 좀 치워라. 무겁다."
생각해 보면, L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다만 K가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길다고 생각했을 뿐. 그걸 눈치챘던 걸까. 당시 L은 대충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급마무리 했었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K는 문득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 이야기 말인데."
"음? 무슨 이야기?"
"왜, 그 있잖아. 너 예전에 잠깐 만났었다던 그 여자 이야기."
"아~ 그거? 그게 왜?"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K는 잠시 망설인다. 사실 L에게 소개팅을 주선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늘 한 번 만남 이후 애프터가 없었을 뿐. 왜 연락을 하지 않는지 이유를 물었을 때 심히 당황스러웠던 L의 대답. 두근거리지를 않아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K는 그 이야기를 다시 묻는 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때 너무 대충 들은 거 같아서. 한 번 더 이야기해줄 수 있냐?"
"뭐야, 재미없다는 반응을 온 몸으로 보여줄 땐 언제고?"
"그거야 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네가 혼자 읊어대서 그런 거지. 오늘은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러지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
오가는 술잔과 함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역시, 그때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고 K는 생각한다. 세상에,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수 년 전에 몇 달 정도 만났던 사람만큼 두근거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애를 못하다니. 이 자식, 무슨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지금껏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놈인가? 어쩐지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진짜 완전 조상님급 어르신이라거나……
K는 L을 잘 안다. 아니, 그동안 그렇다고 믿었다. 알고 지낸지 몇 년 정도 됐을 때, L은 이미 온갖 밑천(?)을 다 보여줬었다. 정말 단순하면서도 뇌가 퓨어한 녀석이다. 만약 저 모든 게 연기라면, 내면에 다른 성격을 숨기고 있는 거라면, 장담하건대 이 놈은 칸의 레드카펫을 충분히 밟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
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럴 듯한 포장일 수도 있다. 그 동안 거절을 하도 많이 당하다보니 스스로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느 쪽이 자기 진심인지 정말 모르는 걸 수도 있고.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은 다시 처음으로 향해간다. 그래, 이 놈은 그냥 말 그대로 못 잊는 거다. 너무 단순해서 그때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감정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뤠~서! 한 번쯤 다시 만나봤으면 좋겠다 이거지."
"큭큭큭큭, 진짜 대단한 열남(烈男) 나셨네. 그렇다고 계속 이러고 살 거냐?"
"흐음? 그~을쎄. 뭐,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 이 대책 없는 새끼. 에라이, 자식아. 술이나 받아라."
어느덧 테이블 위에 쌓인 술병이 꽤 된다. 방금 시킨 것 같았던 한 병도 벌써 마지막이다. L은 채워진 술잔을 곧장 비워버린다. 그 순간 K는 친구의 눈가가 유난히 붉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서야 그때 L의 눈에 떠올랐던 색깔이 어떤 감정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취했나 보다.
K가 아는 L은, 늘 별 생각 없는 듯 무덤덤하면서도 이따금씩 엉뚱한 면모를 보여주는 친구다. 모든 걸 체념한 듯 울적해 보이면서도 근거도 없는 자신감은 줄줄 흘러넘치는 친구다. 이 삭막한 세상에 여전히 감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남아있음을 믿는,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그런 친구다.
"그만 가자. 취했다."
"그런가? 오~케이. 그럼 가야지."
어떤 식으로든 상관 없다. K는 그저, 이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남은 한 잔. K는 더 이상 마시면 힘들어질 것 같아 그대로 놔둔 채 일어선다. 잔 속의 투명한 찰랑임을 바라보며, 기왕이면 L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짤막한 기도를 해본다.
비틀비틀
두 친구가 술집을 나선다.
비틀비틀
두 친구가 함께 길을 걷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oOlPv_ef-2w
난 영원이고 싶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
날 아껴주었으면 나만 바라봤으면 하는
날 외롭게 하는 가까이 있어도 보고 싶은
그 외로움만큼 더 그립게 하는 사람
난 너를 사랑해 이렇게 사랑해
천천히라도 좋으니 내게 맘을 열어
난 여기 있을게 그저 널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내 맘을 받아줘
오직 너의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난 추억이 되기 싫은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
늘 곁에 있고 싶은 십 년이 지나도
날 아프게 하는 끝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그 아픔만큼 나를 또 행복하게 하는 사람
난 너를 사랑해 이렇게 사랑해
천천히라도 좋으니 내게 맘을 열어
난 여기 있을게 그저 널 바라보면서
언젠가는 내 맘을 받아줘
오직 너의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