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란 말로 이행시를 적는 이벤트를 하는 페이지의 댓글을 보았다. 추석이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가, 즐거운가 따위의 말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추석이 얼마나 힘들고 짜증 나는 행사인지, 그런 행사 따위 하지 않고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그런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소취하는 마음으로 주고받는 인사인 건가. 물론 추석이어도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은 추석을, 명절을 스트레스받는 연례행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성묘를 간 지 꽤 되었다. 그게 신경이 쓰이셨는지 부모님이 다 함께 성묘를 가자 했다. 부모님 생각에 맞춰드리자 싶어 그러자 했다. 본의 아니게 같은 시기에 나도, 친정 다른 가족들도 코로나에 걸려 성묘 가는 시기를 늦췄다. 추석 전 원래 잡혀있던 성묘 일정에 남편을 데려갈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양가 행사에 함께 참석은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굳이라는 물음표가 드는 행사에는 본인만 참석한다. 그러다 보니 성묘 관련 이야기가 오간 것 자체를 남편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그제인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일이 있었단다, 보고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성묘 문화로 넘어갔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성묘 문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성묘란 무엇인가. 정신이 빠져나간 육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는 건가. 돌아가신 가족이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곳에 남아있는 거라고는 사랑하는 가족의 아주 작디작은 흔적뿐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정해두고 명절에 가야 하는 걸까.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더 의미가 있는 거 아닌가.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행처럼 찾아오는 명절을 죽은 자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건가. 자, 우리의 힘든 명절을 나눠줄게요. (명절에라도 가야지라고 한다면 평소에는 안 가는 건가. 명절에만 의무에 대한 의지로 찾아간다면 원래 취지와 너무 달라지는 거 아닌가.) 아니, 명절에 꼭 성묘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명절이 행복하고 즐거운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건가. 그래서, 추석이란 무엇인가. 그래서, 명절이란 무엇인가. 좋은 뜻은 다 사라지고 각자 정해진 역할에 맞춰 연기를 하는 연극 같은 며칠, 그것 외에 무엇이 있는가.
와, 쓰고 보니 완전 부정적이고 재수 없다. 명절과 추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그리고 죽은 자의 흔적을 존중하고 성묘 가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욕이 나올 수도 있겠다. 맞다. 우리 아버지가 이 글을 본다면 분명 욕을 할 거다. 우리 아버지는 명절과 추석을 사랑하고 성묘 가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고 보니 이건 차마 부모님에게 전하지 못하는 생각을 한풀이처럼 떠들어대는 것에 다름 아닌 글이다.
한풀이하는 김에 좀 더 떠들어본다면, 그나마 다행인 건 나와 함께 사는 짝은 나와 생각이 같다는 거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한참 싸울 거리가 될 거다. 나나 남편은 우리 아이가 자식이라는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일을 의무적으로 하게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를 위해 우리의 뼛조각이 있는 곳을 찾아오고, 제사를 지내고 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바란다면 모를까. (설마.) 바라는 게 있다면 한 번씩 떠올려주고 사진이나 봐주기를. 아니, 그것도 바라지 않는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있는 자에게 바라는 게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구구절절, 그럼에도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낄낄낄.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도 소취해 본다.
김영민 교수의 명문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추석이면 가족보다 김영민 교수가 더 떠오른다.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아버지가 “손주라도 한 명 안겨다오”라고 하거든 “후손이란 무엇인가”. “늘그막에 외로워서 그런단다”라고 하거든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가족끼리 이런 이야기도 못하니”라고 하거든 “가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에 관련된 이러한 대화들은 신성한 주문이 되어 해묵은 잡귀와 같은 오지랖들을 내쫓고 당신에게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칼럼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p61
Photo by Ali Morri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