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 이렇게 살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 책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있다. 하지만 막힌 기분이다. 무얼 말할 수 있을까. 무얼 말해야 할까. 내가 원하는 말은 무엇이고 그들이 원하는 말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할 말이 있는가. 그런 게 내게 있을까. 진정 있을까. 속 알맹이 없이 동어반복을 하는 건 아닌가. 고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처럼 할 말을 다하고 동어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죽음 전에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얇고 얄팍한 머릿속을 뒤져보고 있다. 내게 남아있는 게 무언지 찾기 위해서.
요즘엔 책을 읽어도 진정 내 것이 되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영화를 보아도 그러하다. 예전보다 무미건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얼 생각하고 무얼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항상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차던 날들이 낯설다. 오늘 글은 의문문 투성이다. '까'와 '가' 뒤에 물음표를 꼬박꼬박 적어 넣었다면 엄청난 물음표의 글이 되었을 거다.
항상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고갈된 기분이 드는 걸까. 아, 그래. 익숙한 것만 하고 있어서다. 새로움을 찾아서 어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 내 삶은 너무 단조롭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귀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스타일이라 게으르다고 스스로 생각해왔는데 주변에서 나를 지켜본 사람들은 아니라고 한다. 뭘 계속한다고. 그래, 그 계속하는 거에 집안일이 없을 뿐(ㅋㅋ 특히 청소).
삶의 자극이 되어줄 새로움이 없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자꾸 과거를 헤집어가며 쓸데없는 후회를 해대며 번민을 안고 있는 걸 거다. 괜히 나이를 헛먹었네 하면서 뒤를 보고 있다. 살아가는데 하등의 쓸모없는 짓거리, 나를 갉아먹는 짓거리.
이렇게 너무 바람직한 소리로 글을 마무리하려는데 아이가 나타나 엄마는 왜 책도 나왔는데 글을 쓰고 있냐고 묻는다. '그러게.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속마음을 감추고 대답한다. "그렇다고 안 써? 글은 원래 매일 쓰는 거야." 그랬더니 아이가 그럼 자기도 이젠 매일 글을 쓰겠단다. 한참 글 쓰다가 때려치운 이후론 몇 달 동안 글 한 번 쓰지 않았던 아이인데 갑자기 자극을 받았나 보다. 그러면서 자기 글의 제목을 알려주었다. "안 작가의 오프닝". 제목에 걸맞은 동작을 앞에서 보여주면서 말이다.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빠빠빰! 그나저나 제목이 쏙 마음에 든다. 안 작가의 오프닝. 날름 아이의 멋진 작명을 가져다 쓰기로 한다. 우선 이 글의 제목으로. 진짜 시작을 앞둔 오프닝. 그런 기분이 드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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