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게 뭐다냐

by 유이경
나는 예순셋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사실이 낯설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보부아르의 말 중에서 p436




최근 두 곳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알기도 했고 모르기도 했는데 두 곳 모두 젊은이(난 아직도 '젊은이'란 표현이 어색하다. 이 말은 나는 '젊은이'가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는 거니 말이다.)들이 많았다. 그 가수는 젊은이들이, 젊은이들만 좋아할 거 같았지만 그 밴드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언뜻 보아도 나와 비슷한 연령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어쩌다 발견하면 아직 미성년인 아이의 보호자로 온 사람이었다. 누구 하나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괜히 뚝딱거렸다.


문제는 이거였다. 내가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걸 자꾸 떠올린다는 것. 나는 아직 내가 나이 들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인정하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남들 보기엔 그 나이로 보인다는 것.


예전에 할머니들이 마음은 소녀 때 그대로라고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그렇지 뭐 끽해야 10년 전 정도로 생각하시겠지 했다. 이젠 그 말이 진심이란 걸 믿는다. 난 소녀까진 내려가진 않지만 삼십 대 초반에 멈춰있는 느낌이 든다.


그때가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남들처럼 난 십 대가 즐겁지 않았으니까. 그때가 먹고사는 걱정 없이 행복했다는 그 말이 내겐 해당하지 않으니까. 삼십 대 초반에 홀로 나와 살면서 그제야 모든 걱정과 근심, 공포를 내려놓고 살 수 있었으니까. 그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도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그때 형성된 생각과 성격으로 아직 버티고 있는 거 같다. 그래서 자꾸 내가 그때 나이라고 착각하는 것인 듯하다.


평소엔 '뭐 어때, 먹어가는 나이 따위 신경 안 쓰고 그 나이처럼 살면 되지.' 한다. 그러다 콘서트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게 되면 깨닫는다. 그리고 얼마나 그들과 내 생활공간이 겹치지 않는지도 알게 된다. 평소 내가 아는 사람이든 아니든 마주치는 길거리의 얼굴들은 대개 아이와 아이가 중심인 나이대들이다. 아니면 더 나이가 든 노인분들이거나. 낮의 주택가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그러하다. 그러다 어쩌다 이 동네가 아닌 유흥가의 밤거리를 가거나 핫하다는 동네의 주말 낮거리를 가거나 콘서트를 가거나 하면 마주치는 얼굴들의 달라진 연령대에 놀라게 된다. 어색하단 표현이 정확할 거다. 평소에 마주치지 못하는 얼굴들. 그 얼굴들에게서 깨닫게 되는 내 나이에.


그럴 때엔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한 챕터,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을 떠올린다. 보부아르도 자신의 노화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 같은 미생이 무얼 알겠는가. 보부아르의 말에서 위안을 느끼면서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는 에릭 와이너의 말에 무게감과 희망을 얻는다. 그러면서 이건 에릭 와이너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나이 듦의 문화가 없고, 나이 든 사람들이 절박하게 매달리는 젊음의 문화가 있을 뿐"이기 때문에 내가 나이 듦에 조금은 전전긍긍하는 거라고 항변한다.


에릭 와이너처럼 "애매하게 나이 든" 여자인 나를 지나 "확실하게 나이 든" 여자가 되면 뭔가 달라질까. 아니, 여전히 소녀 마음을 간직한 할머니들처럼 삼십 즈음의 마음을 간직한 할머니가 될 뿐일 것 같다. 뭐, 보는 이와 나 사이의 괴리는 있겠지만 그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