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운동을 한다.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본다. 남편 점심을 간단히 차려준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 다음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맞이한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간식을 준비하고 빨래를 한다. 아이가 돌아오면 간식을 먹이고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시간차를 두고 저녁들을 먹이고 아이 목욕과 잘 준비 보조를 하고 책을 읽는다.
참 별 거 없는 하루다. 그런데 하다 보면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진 않는다. 반복에 반복. 이런 하루가 반복되는 게 참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엔 그랬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거라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들어갔고, 남편은 끝나지 않는 재택근무를 한다는 것. 그 사이 독립잡지들에 글을 싣고 에세이 책을 내고 소소하게 알바도 하고 점역교정사 자격증도 따고 5km이긴 하지만 마라톤도 해봤는데 뭐 한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오늘의 기록은 어제의 기록이고, 내일의 기록이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무언가의 불안, 무언가의 우울이 끝나지 않는 기분이다. 무언가를 하는 동안은 잊고 있던 불안과 우울이 그 무언가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기어나온다.
불안하면 일찍 일어나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행동했다는, 그래서 점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한 방송에서 본 사람의 일화가 모두에게 통할까. 나는 일찍 일어나면 하루종일 겔겔댈 뿐인데.
책을 읽는 건 재미있지만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책에서 내가 무얼 가져가느냐가 중요하지. 요즘엔 책에서 내가 무얼 가져가고 있나 싶어 책에 대해서도, 그래서 책 관련 내용을 올리는 인스타그램에도 영 시들하다.
내가 무언가 하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던 남편이 내가 그냥 허실 삼아 던져본 자영업에 대해 냅다 저질러보라고 갑자기 충동질한다. 남편도 육아에 예전만큼 내 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태도가 좀 달라진 거겠지.
올해가 가기 전에 무언가 결정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아무래도 나이 때문일 거다. 여성 취업 관련한 기관에서 상담했을 때에도 더 나이 먹기 전에 해야 한다고, 더 나이 먹으면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건 나를 받아들일 회사에서 뿐 아니라 취업을 하려는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라 했다. 그런데 손에 잡히는 게 없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해왔던 모든 일이 제로가 된 기분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려니 그저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