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을 지어먹고 일찍 온 밤 속을 걸어 계곡으로 나갔다.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겨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가 든 랜턴에서 뻗어 나오는 빛줄기만이 유일한 빛이어서 아빠 뒤에 바싹 붙어 걸었다. 낮에 설치해 놓은 통발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다. 된장을 퍼 넣은 통발을 계곡물 안에 넣고 고정시켜 놓으면 물고기들이 된장 냄새에 이끌려 통발 안으로 들어왔다가 못 나가게 된다고 했다. 이런 어둠도 통발도 모두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 사방이 마냥 고요한 줄 알았는데 익숙해지니 점점 소리가 일어난다. 졸졸졸 찌르르르 사사삭. 평화로운 밤이다. 그래서 신기한 밤이다.
항상 아빠에게는 도피처가 있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이유로 속에서 열불이 솟아나던 아빠는 그 불을 가족들에게 뿜어대곤 다음날 새벽이면 홀랑 떠나버리곤 했다. 그 장소가 오 년 정도 주기로 바뀌곤 했는데(아빠가 질려서 바뀌는 게 아니라 그곳 주인들이 아빠에게 질려서 바뀌는 거였다.) 내가 열 살 즈음에는 그곳이 포천 산정호수 근처 산장이었다.
아빠가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던 건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기 도피처이자 안식처에 가족을 잘 데려가지 않는 아빠가 그곳에 나를, 나만을 데려가기로 했다. 역시나 나의 의사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여행일이 다가올수록 내 머릿속 상상이 끔찍한 괴물이 되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지니 시시때때로 위도 쿡쿡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아빠와의 여행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아빠 본인의 처신과는 다르게 아빠는 항상 이상적인 가정을 꿈꿨는데 그 쇼에 가족 여행이 어울린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때에만 해도 가족 여행을 한 번도 가지 않는 가족도 많았는데 우리는 일 년에 한두 번은 가까운 데라도 갔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부터 이미 아빠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결국 그 긴장감을 여행 당일 아침에 어김없이 분출해내곤 했다. 아빠를 거슬리게 하는 이유는 많았다. 한 번은 큰아들이 똥을 오래 싸서, 한 번은 작은아들이 양말을 오래 신어서, 한 번은 막내딸이 이상한 옷을 입고 나와서, 한 번은 엄마가 가방에 음식 담는 순서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정말이지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해댄 가족들이 너무 미운 아빠는 온갖 욕을 퍼부으며 “안가!!” 소리를 지르고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나머지 가족들은 나머지 준비를 다 하고 현관 앞에서 아빠를 기다린다. 그러면 역시나 금세 아빠는 방문을 열고 나와 쾅 닫는 제스처로 ‘나 아직 안 풀렸다’라고 표시 내며 신발을 신고 나섰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가족들은 아빠가 잡아 이끄는 대로 생각이 없는 사람들처럼 쫓아다닌다. 아빠 눈치 보고 비위 맞추느라 다들 눈앞에 뭐가 있는지 입안에 뭐가 들어오는지 관심이 없다. 그렇게 해도 처음부터 임파서블한 미션이다. 일박이일 짧은 여행 일정에도 언제나 그렇듯 여러 번 아빠의 벼락을 맞아야 했다.
내가 왜 위까지 쿡쿡 아파가며 긴장하고 있었는지 알겠는가. 열두 살 인생 최고의 시련이라 생각했다. 이 여행은 누굴 위한 여행인가. 나는 왜 그곳으로 끌려가야 한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도 호젓하고 따사로운 산장이었다. 이런 평화로운 곳을 지키는 주인아주머니를 또 아빠가 얼마나 괴롭혔을까. 아주머니는 지금 얼마큼 아빠가 싫어졌을까. 나를 앞세우고 아주머니에게 웃기지도 않는 농지거리를 던지는 아빠를 부끄러워한다. 착한 아이인양 착하게 인사하고 아주머니에게 칭찬받는다. 이런 아저씨 딸 치고는 괜찮은 것 같나요.
넓은 산장 한쪽, 춘향이가 탔을 법한 나무 그네가 절벽으로 끝나는 길에 있었다. 절벽 아래에는 산정호수와 산정호수를 둘러싼 명성산이 보인다. 두터운 나무 가지에 기다란 줄로 매달려 있는 나무판자 대기에 올라선다. 무릎을 굴러 그네를 움직인다. 그네가 올라간다. 내 아래로 절벽 밑 절경이 펼쳐진다. 그네가 내려간다. 내가, 아빠가 있는 산장으로 내려간다. 계속 박차고 올라간다. 그대로 물결에서 빛이 반짝이는 세상 속에 머물고 싶지만 그네는 자꾸 내려오기만 한다.
저녁밥을 짓는 아빠를 도와 상 위를 가득 차린다. 바리바리 많이도 싸왔다. 상 위에 항상 함께 하는 술병도 술잔도 함께이다. 빈 술병이 한 병에서 더 늘어나지 않았다. 별 말도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곤 상을 치우고 밤이 펼쳐진 계곡으로 나갔다.
통발 안에는 이 계곡에 이렇게 물고기가 많았나 싶게 작은 물고기들이 많이도 들어와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나 가짜 먹이에 속은 물고기들이 불쌍하면서도 이상했다. 아빠는 물고기들을 보여주곤 통발을 풀어버렸다.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시 랜턴 빛에 의지해 숙소로 돌아왔다. 아빠는 씻고 잘 준비를 한다. 더 술을 마시지 않는 아빠가 어색하다. 별 말도 아무 일도 없이 조용히 잠이 들었다. 정말 신기한 밤이다.
그대로 아빠가 언성 높이는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한숨 자러 들어가자 엄마와 오빠들이 방으로 쫓아와 궁금반 걱정반 표정으로 여행 후기를 캐묻는다. 틀림없이 얼떨떨한 얼굴이었을 모습으로 말한다. 아-무- 일이 없었다고. 그리고 차마 그들에게 말하지 못한 후기, 재미있었어요. 그래도 그건 왠지 배신 같으니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아빠의 도피처는 다시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아빠에게 질린 아주머니와의 언쟁이 있었다. 그리고 내게 포천은 잊힌 곳이 되었다.
정작 산정호수는 둘러보지 못했던 열두 살의 여행지를 다시 찾았다. 갑작스럽게 잡은 여행이었다. 산장 절벽 그네 아래로 내려다보던 산정호수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이제 따라 잡기 힘들 정도로 뛰어가는 아이를 계속 불러 세우면서 남편과 나는 산정호수와 호수에 둘러쳐 있는 명성산에 빠져들었다.
저녁밥을 먹고 호수 앞에 조명 설치물을 보자며 밤길을 나섰다. 가는 길이 어둑어둑해 핸드폰 플래시로 겨우겨우 걸어간다. 반짝반짝 꼬마전구들이 애를 썼지만 그다지 마음을 끄는 게 없다. 시끄러운 조명 설치물과 달리 밤 호수는 어둠 그 자체로 침잠한다. 평화로운 심심함이 좋았던 그때의 산장을 떠올린다.
여행을 다녀오고 아이는 종종 산정호수 이야기를 한다. 둘레길 걸은 거, 밤에 호수 보러 나간 거,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식당 바깥 조명 아래에서 춤췄던 거, 아이는 좋았던 기억을 손가락으로 꼽아가며 다시 가보자고 한다. 산정호수의 기억이 내게서 아이로 옮겨간다. 둘 다 좋은 추억이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