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싸놓았던 짐은 서너 박스에 불과했다. 짐을 실어주러 온 친구 차에 두 번 왔다 갔다 하는 걸로 이사 준비는 끝났다. 보통은 어떤 하루가 특별한 날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하지만 그 날은 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로 정한 날이었다. 친구와 이사할 동네로 가면서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떠들어댔지만 나는 들떠 있었고 들뜬 만큼 두려웠다. 아무 문제없이 척척 잔금을 치르고 이사를 마치고 친구와 밥을 먹고 헤어지고 하루가 순조로웠다. 그동안의 삼십 년과는 다르게 살아갈 첫날 치고는 너무 쉬운 하루였다. 불을 끄고 방에 누웠다. 고요했다.
이사 간 곳은 서울 봉천동에 있는 원룸이었다. 나 혼자 누우면 딱 맞는 크기의 작은 방이었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부엌에는 조리대 없이 가스레인지와 개수대만 덜렁 있었다. ‘요리는 무슨, 라면이나 끓여라’라는 듯 겨우 면만 차린 부엌이었다. 부엌 공간 맞은편에는 냉동고가 겨우 있는 원룸형 냉장고, 싸구려 컴퓨터용 책상, 뒤가 뚱뚱하게 나온 옛날식 조그만 티브이, 한 칸짜리 장롱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부엌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려면 가스레인지와 책상 사이를 지나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발끝을 들고 배에 힘을 주어야 했다. 방 오른편에는 필요한 것들만 겨우 놓여있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나는 그 방이 그렇게 좋았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문을 열면 티브이가 바로 보여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 방에서 나는 소꿉놀이하듯 살았다. 주말에는 시장에서 사 온 깨를 볶고 마늘 껍질을 벗기고 빻았다. 그냥 볶은 깨와 간 마늘을 사면 되는데. 굳이 엄마한테 배운 대로 깨는 약한 불로 계속 휘저으면서, 마늘은 갈지 말고 빻아서 준비했다. 출근하는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회사에 가져갈 도시락을 만들었다. 전날 미리 재료만 준비해 놓으면 순식간에 만들 수 있는 볶음밥을 자주 싸갔다. 온갖 양념을 혼합해 그때마다 다른 맛을 냈다. 혼자 만들고 혼자 먹고 혼자 내린 결론은 ‘아, 볶음밥 전문 식당 차려야겠는데.’ 저녁에 퇴근하면 볶아놓은 깨를 넣은 나물을 하고, 빻아놓은 마늘을 넣은 국을 끓였다. 내키는 대로 이상한 조합들도 만들어 봤다. 미역국에 소면사리를 삶아 넣고, 두부와 우유를 갈아 콩국수랍시고 국수를 말아먹고. 맛이 어떻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이 마냥 즐거웠다.
회사에서 퇴근 시간만 기다렸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동료들 퇴근을 늦추던 내가 칼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붙어있던 회식 자리에서도 1차만 끝나면 살살 집으로 도망갔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상사는 집에 꿀이라도 발라놨냐며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떠 봤다. 다들 내가 이제 혼자 산다는 걸 아는지라 자꾸 의심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티브이를 켜놓고 저녁을 해 먹고 치우고 씻고 티브이를 조금 더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무 일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내 꿈이 참 소박했다는 걸 실감했다.
이사를 결심한 날은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지나고 나서야 특별한 날이 되는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아버지는 그날도 피차 기억도 나지 않을 일을 핑계 삼아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한 차례 발작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내가 아버지에게 불과 며칠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한 번만 더 이러면 집 나갈 거예요.” 그때 아버지는 나를 무시했다. 나는 다른 가족들처럼 아버지에게 결국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적금 통장의 잔액을 확인하고 며칠 후 방을 보러 나갔다. 방을 계약했고 그 다다음 돌아오는 토요일 친구의 차에 짐을 실었다. 그게 내 첫 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