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나들이

by 유이경


엄마와 함께 시장에 다녀오는 길은 너무 멀다. 우리 모두 양손이 무겁다. 엄마는 한시라도 급히 두 손에서 그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싶은가 보다. 내가 어디에 오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뛰다시피 하며 가고 있다. 나는 멀어져 가는 엄마 모습이 무섭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그러기엔 내 나이가 부끄럽다. 엄마. 나는 이제야 골목에 들어섰는데 엄마는 끝자락에서 코너를 돌려고 한다. 엄마! 그제야 엄마가 멈춰 돌아선다. 두 손의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지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짐을 잔뜩 담은 검은 비닐봉다리가 기우뚱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롭다.






“시장 가자.”


엄마가 부른다.


시장에서 엄마를 따라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트 여왕이 두려워 정신없이 뛰어가는 토끼처럼 개미굴 같은 시장 길을 엄마는 잘도 이리저리 빠른 걸음으로 다니며 구매 목록의 물건들을 채워 나간다. 딴청 피우는 시간을 제멋대로 가지다가는 엄마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복잡한 시장판 곳곳에는 알뜰살뜰히도 온갖 좌판이 다 늘어서 있다. 대부분이 엄마를 위한 좌판이지만 곳곳에 나를 위한 좌판들도 있다. 붕어빵, 꽈배기, 어묵꼬치, 떡볶이, 호떡... 엄마 뒤를 졸졸 쫓아가면서도 고개는 그 맛있는 지뢰들에게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그중에서도 포슬포슬 뭉실뭉실하니 꼭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만 같아 보이는 그 하얀 솜사탕. 솜사탕에 얼굴을 파묻고 포근한 곰인형 맛을 한 입 삼키면 마치 구름빵을 먹은 것처럼 둥둥 몸이, 아니면 마음이라도 떠오를 듯하다. 사실, 그때까지 솜사탕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 더 어릴 때에는 솜사탕이 우리 동네에 등장하지 않았고, 솜사탕이 시장에 들어온 이후로는 “다 큰 애가 무슨!”하는 핀잔으로 엄마의 지갑이 굳게 닫혀 있었다. 빙글빙글빙글 끝도 없이 돌아가는 솜사탕 기계에 눈을 박고 있으면 토끼를 쫓아가다 빙글빙글 떨어지는 앨리스가 된 것처럼 상상만으로도 이상한 모험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토끼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지만 않으면 말이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솜사탕 기계 옆 채소가게에서 흥정인지 싸움인지 모를 대화를 나누며 기어이 오백 원을 깎아낸다.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나를 볼 틈도 없이 엄마는 이제 급히 생선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오로지 목록을 끝장내겠다는 투지에 불타오르는 엄마에게는 솜사탕도, 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화 벨소리가 울린다. 아빠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 어딨어.” 엄마 시장 갔어요.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렇게 말한다. 아빠가 몇 시 몇 분에 전화를 걸었는지 적어놓는다. 다시 울릴 아빠의 벨소리가 몇 분이나 남았는지 보며 초조하게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가 집에 없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시간별로 아내 소재 확인 전화하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아빠 덕분이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거의 항상 집에서 나를 맞아주었다.



역시나 엄마는 시장에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는 엄마 양손에 들린 건 넘칠 듯 한가득 차 있는 검은 비닐봉다리들이다. 엄마 짐을 받아 들고 아빠에게 전화 온 시간을 이야기한다. 엄마는 짐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전화기 앞에 앉는다.








“엄마, 빨리 가자!”


아이는 아침부터 신이 났다. 시장에 빨리 가자고 성화다. 시장에서 신나는 이벤트를 한다고 유치원 선생님에게 들은 아이는 주말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시장에서 나눠준 파란색 물고기 모양 장바구니를 팔에 끼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현대화 작업을 마쳐 쭉쭉 뻗은 시장의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시장보다 잉어빵이며 어묵꼬치며 떡볶이며 호떡이며 만두며 부각이며 입에 넣으면 즐거운 것들이 더 즐비하다.




아이는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기꺼이 차례를 기다린다. 솜사탕을 공짜로 나눠주는 이벤트 줄이다. 줄을 서 있다가 아저씨가 잠시 십 분만 쉰다고 했는데도 아이는 지치지 않고 기다린다. 드디어 아이 손에 쥐어진 하얀 솜사탕. 캐릭터도 아니고 하물며 분홍 파랑 노랑 솜사탕도 아닌 소박한 하얀 솜사탕. 내가 어릴 때 보던 모습 그대로다. 아이는 그래도 좋다고 신나서 붕붕 날으며 걸어간다. 얼굴이 솜사탕 범벅이 된 채로 아이는 재잘재잘 쉬지 않고 까불어댄다.




아이의 맑은 얼굴을 보면서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진득진득한 솜사탕을 얼굴 한가득 묻히고도 솜사탕에 열중하는 나를 바라보며 웃는 듯 찡그리는 엄마를 상상해 본다. 그건 분명 몸이, 마음이 둥둥 떠오르는 기분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