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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Jun 13. 2019

엄마의 어머니, 오래된 이름

대문을 따고 들어서는데 현관 밖으로 큰소리가 삐져나왔다. 뭐야, 왜 벌써. 학교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었다. 익숙하다고 무덤덤하기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내내 가슴이 쿵쾅 요동친다. 시끄러운 소리는 평소와 달리 거실이 아닌 내 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린 내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역시나 익숙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연극이 낯선, 손님이 있었다. 외할머니. 얼마 전 시골에서 올라온 내 외할머니(이하 할머니라고 표현하겠다)가 그 아수라장 속에 있었다. 무방비하고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밤이 되면 허리까지 내려오는 빛나는 은회색 머리칼을 어깨 앞으로 넘겨 정성 들여 빗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틀어 올렸던 머리에서 비녀를 쭉 빼면 머리칼이 스르륵 아래로 흘러내렸다. 경건하게 앉아 머리칼을 빗는 할머니 모습에서 아름다운 위엄이 느껴졌다. 어린 내 눈에 할머니가 신성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 같이 보여 숨을 죽이고 말없이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에 작은 머리, 그 위에 항상 머리칼 한 올 빠져나오지 않게 틀어 올렸던 할머니의 쪽머리. 그 쪽머리 안에 이렇게 길고 풍성한 머리칼이 숨어있었다는 게 경이로웠다.

      할머니를 바라보다 나는 문득 할머니에게서 여자를 발견했다. 나의 할머니만이 아닌, 엄마의 어머니만이 아닌, 태고적부터 여자였을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왜 그 아수라장 속에 당연히 할머니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 상황 속에서 엄마가 아닌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언제나처럼 아빠는 소리를 지르면서 엄마를 때리고 있었고 엄마는 무방비하게 맞고 있었고. 할머니는 덜덜 떠시면서 사위를 붙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도 할머니 품에 달려가 안기고 싶었다. 사촌들이 할머니에게 안기고 무릎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는 걸 붉은 눈으로 흘겨만 보는 내가 싫었다. 엄마의 어머니여서 더 그랬을까. 할머니가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내 강아지’ 운운하며 예뻐한 적이 없어도 나는 항상 할머니가 좋았고 어려웠다. 할머니에게 나는 많은 손주들 중에 하나-아니,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을 데려가 고생시키는 남자의 아이였을 수도-였겠지만 나는 엄마의 어머니, 딸의 딸이라는 이유를 갖다 붙여 할머니와 나의 관계를 격상시켰다.



      평소에 말소리도 조용조용 걸음걸이도 차분하신 분이 역정을 내실 때가 있었다. 손주들이 밥을 남길 때였다. 본인은 작은 체구를 유지하느라 그런지 간장종지만큼 드시면서 고봉밥이 익숙하지 않은 도시 아이인 내가 산처럼 쌓인 밥이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슬그머니 수저를 내려놓으면 그렇게 벌컥 역정을 내셨다. “한참 클 나이에 것도 못 먹어서 어쩌려고 그랴!” 그러면 고분고분 남은 밥을 한 술 한 술 열심히 입 안에 욱여넣었다. 밥그릇이 다 비어지면 그제야 흐뭇해하셨다.



      엄마가 말하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동화책이나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자상하신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여동생을 끔찍이도 아끼는 오빠들과 누나 바보들인 남동생들. 화목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여유로운 사람들. 엄마 이야기를 옛날이야기처럼 들으며 아빠에게 물려받은 이름 앞 성씨를 냅다 떼어 버리고 엄마 같이 순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이름 앞에 붙은 그 성씨를 내 이름에도 달고 그들 사이에서, 그들의 일원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엄마가 시시때때로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엄마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그 작지만 큰 품에 안겨보고 싶었다. 그렇게 어딜 가나 어른들이 내게 붙이는 ‘주눅 들은 아이’가 아닌 떼도 쓰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사고도 치는 보통의 아이가 되고 싶었다.



      비현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다 나는 불현듯 놀랐다. 아빠 때문이었다. 아직도 아빠에게 놀랄 일이 남아있었다니, 그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짓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이었구나. 정말 대단하다. 장모 앞에서 장모의 딸을 때리는 사위라니.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이런 건가. 어린 마음에서 증오가 솟아올랐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자신 앞에서 때리는 사위에게 소리 한번 욕 한번 못하시고 할머니는 그저 힘없는 손짓으로 아빠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 번 달려가 안겨 보지도 못했던 나의 할머니가, 나의 엄마가 틈만 나면 자랑하던 엄마의 어머니가 우리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표정을 하고 울고 있었다. 어머니 앞에서 처절한 마음으로 맞고 있을 엄마 보다 나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불쌍하면서도 우리 가족만의 치부를 남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런 기분을 느낀 내게 배신감을 느꼈다.   



      며칠 뒤 할머니는 시골로 돌아가셨다.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셨을까. 요즘 같은 시절이 아니던 그때 딸을 집에 데려가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또다시 폭력이 되풀이될 집에 딸을 놓고 가면서.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셨다. 평소 성정대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예쁘고 얌전한 아이로 돌아갔다. 할머니의 머리칼이 짧게 잘렸다. 엄마는 머리가 짧아진 자신의 어머니를 붙들고 울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가 된 할머니의 머리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은회색 머리칼은 빛을 잃어 잿빛이 되었다.



      몇 년이 더 지나고 나는 어른이 되었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시골집에 장례를 치르러 갔다. 할머니가 쓰시던 방에 들어가니 한켠에 할머니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눈에 익은 할머니의 비녀도 함께 있었다.  


      숙모들과 엄마는 음식을 왁자지껄 준비하고 삼촌들과 손주들은 마당에 자리를 마련했다. 준비해놓은 자리 한가득 이웃과 친지들이 모였다. 반가워 인사하는 모습들이 정겨웠다. 한 번씩 곡을 하지만 않으면 꼭 기분 좋은 잔칫집 같았다. 우리 고운 할머니, 고운 사람들의 배웅받으며 잘 떠나시겠구나.



      할머니와 함께했던 물건들이 하늘로 올라간다. 삼촌들이 물건들을 태우는 걸 나는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도록 불길을 바라보며 찌꺼기 같이 남은 내 인사도 함께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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