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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Sep 26. 2019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항상 나는 내가 엄마와 친했다고 생각했다. 함께 쇼핑하고 맛집에 가고 영화도 보고 산책도 다니는 엄마와 딸. 딸 키워 놓으니 친구 같다는 그 말에 딱 들어맞는 관계. 내 눈에나 남들 눈에나 우리는 그렇게 보였다. 나름 뿌듯했다. 근데 우리가 원래 이랬었나. 아. 예전 일들을 까맣고 잊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서로의 친구에 대해,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 건, 우리가 친해진 건 내가 어른이 된 이후부터였다. 




    어릴 때 나는 엄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에게 엄마는 안갯속에 있는 것 같이 막연한 사람이었다. 함께 살고 있고 나의 가족이고 나의 엄마이지만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다른 가족들과 지내는 모습이나 집안일을 하는 모습들을 나는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하곤 했다. 그렇게 엄마를 항상 보고 있어도 여전히 엄마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가족들, 그리고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가족 안에서 아내라는, 엄마라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역할 속에서 엄마 자신은 없었다. 간혹 무너져 혼자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에 대해 모른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기억하고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아빠와 시댁 뒤치다꺼리에 항상 몸도 마음도 바쁘고 힘들었던 엄마에게 자식들, 특히 막내는 눈에 들어오기 힘들었을 거다. 



    엄마가 그나마 기억하는 건 거의 오빠들에 관한 것이었다. 너희 큰오빠가 어릴 때 노래를 정말 잘 불렀는데. 너희 큰오빠가 달걀 프라이를 해주면 어떻게든 더 큰 거 먹겠다고 쳐다봐서 혼나곤 했었어. 너희 작은오빠가 어릴 때 맨날 육백만 불의 사나이 흉내 낸다고 드드드드 하고 다녔었는데. 동네에서 유명했어. 넌 기억 안나지? 엄마가 이렇게 간혹 미소를 띠며 떠올리는 이야기들은 내가 태어나지 않았거나 너무 꼬맹이어서 함께 추억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 시절까지는 그래도 엄마가 참을 만했었을까. 






    엄마가 변하기 시작한 건 자식들이 모두 어른이 되고부터였다. 엄마의 역할을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심히도 우리 가족 모두 모르게, 엄마만 알고 지나간 갱년기였기 때문일까. 

  아빠에게 반박 한번 못하고 당하기만 하던 엄마가 아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아빠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빠 감시 때문에 나들이 한번 못 나가던 엄마는 몇십 년 만에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모임들을 만들고, 일주일에 네 번 꼴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웃기 시작했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얼굴이 피어나자마자 엄마 얼굴에 주름살이 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가 “예전에 친구들이 엄마 보고 엉뚱하다고, 재미있다고 했는데.”라고 말을 흐린 적이 있다. 무슨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인가. 세대 차이인가. 엄마 친구분들이 참 좋으신 분들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엄마 말이 진심으로 믿어졌다. 어릴 때 부르던 노래라며 엉터리 일본말 노래에 맞춰 공 튀기며 다리로 넘기를 하기도 하고, 아직 살아있다며 너는 이길 수 있다며 나와 길에서 오십 미터 전력 달리기 경주를 벌이기도 하고, 늦은 밤 드라마를 보며 졸다 깨다 하면서 옥수수를 먹기도 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모두 처음이었다. 어릴 때에는 왠지 어렵기만 하던 엄마였는데 이제 나와 오빠들은 엄마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야밤의 졸린 옥수수가 늘어날수록 엄마의 몸은 둥글둥글해졌고, 엄마의 마음도 둥글둥글해졌다. 엄마는 엄마 말대로 웃긴 사람이었고 우리는 엄마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아는 데 이십 년이 넘게 걸렸다. 






    엄마가 변하면서 나는 엄마와 친구가 되어갔다. 엄마는 내게 친구들과의 에피소드에서부터 아빠 때문에 힘든 이야기까지 시시콜콜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고, 나도 어색하지만 엄마에게 내 친구들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꼴 보기 싫은 회사 상사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오빠들은 모르는 엄마와 나만의 비밀이 생겼고 오빠들을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와 가까워질수록 그동안의 마음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은 풍경을 보면, 좋은 영화를 보면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투덜거림이 점점 달갑지 않아 졌다. 엄마와의 비밀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나에게 여과 없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제 조금 지친 것 같다.



    그걸 느낀 건 더 이상 엄마에게 오는 전화벨 소리가 반갑지 않으면서부터다. “엄마!!”하고 받던 목소리가 이제 “응, 엄마, 왜요?”하고 시무룩 바뀌었다. 엄마도 나의 변화를 눈치챘다. 전화를 하면 바로 자신의 용건을 요약해 빨리 브리핑한다. 내가 전화를 잘 받는 것 같으면 이야기를 더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면 용건만 갈무리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효녀가 아닌 게 틀림없다.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친구와 점점 멀어진 것처럼 나는 점점 엄마와 멀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 때 보았던 엄마는 엄마로서 완벽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감정을 잃어버려서 더 완벽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짜증 한 번, 소리 한 번 지르지 않던 사람이었다. 내 아이에게 지금 할머니는 완벽한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주고 함께 신나게 놀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자기에게 완벽한 사랑을 주는 완벽한 할머니. 아이는 할머니가 참 예쁘고 좋다고 한다. 나도 저런 감정으로 엄마를 바라봤었는데. 엄마에 대한 마음이 복잡 미묘해진 지금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그 감정이 부러울 때가 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오고 전화를 끊고, 나는 죄책감이 든다. 엄마에게 또 먼저 전화하지 않았고, 엄마에게 바쁘다고 했고, 전화를 빨리 끊게 했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역전되기 마련이라지만 나 스스로 그런 관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지 않다. 엄마에 대해 예전만큼 궁금해하지 않는 나 자신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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