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경 Jul 30. 2019

주말의 요리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종종 엄마 대신 아빠 입맛에 맞춰 요리하다가 집을 나와 내 입맛대로 요리하다 보니 재미가 쏠쏠했다. 요리책도 사고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레시피를 검색해 레시피 노트도 만들곤 했다. 특히 엄마가 안 먹어본 음식 중에 맛있을 것 같은 음식을 골라 적어놓고는 주말이 되면 하나씩 어깨를 우쭐대며 엄마에게 해드렸다. 그 첫 요리로 선택한 음식이 묵밥이었다. 묵과 채소를 좋아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딱일 듯했다.



    강원도 음식이랬던가. 육수를 내고 있는 내내 상 앞에 앉아 궁금해하는 엄마와 큰오빠에게 멸치 육수에 도토리묵과 채소, 김치, 밥을 넣어 말아먹는 요리라고 하니 둘의 고개가 모로 눕는다. 엄마와 큰오빠와 나, 셋이 살기 시작한 지 일주일 된 주말이었다.







    큰오빠와 나 모두 사회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은 돈이 얼마 없었다. “너희 집, 부자잖아.” 그렇지. 근데 엄마는 부자였던 적이 없다. 없는 돈을 모아 그래도 깔끔한 방이 두 개, 거실 겸 부엌이 있는, 고지대에 있어 저렴한 방을 구했다.



    “그래도 너희 아빤 돈이라도 벌어오잖아.” 아빠에게 입은 상처를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이 친구도 그런다. 자기 아빠는 폭력에 바람에 돈까지 안 벌어오는데, 너희 아빠는 폭력 말고 괜찮지 않냐는 말이다. 그러면 나는 말을 잃는다. 처음도 아닌 반응인데 나는 또 마음을 잃는다. 상처를 비교하며 슬퍼해야 하나. 이런 나를 그나마 낫다고 부러워하는 친구를 보고 털어놓은 나를 후회한다.



    ‘돈이라도 벌어오잖아.’ 이 말이 아빠가 항상 엄마와 우리들에게 공격으로 쓰는 말인 걸 친구는 몰랐겠지. 반항 한번 못하는 엄마를 인질 삼아, 그리고 돈의 위력을 무기 삼아 우리 삼남매를 마음대로 하려는, 그래서 입은 내상을, 입을 다문다.







    우리들이 모두 돈벌이를 시작했는데도 계속되던 폭력에 내가 먼저 두 손 들고 집을 나왔고, 곧 엄마와 큰오빠가 함께 나왔다. 작은오빠는 그래도 아빠에게 연민을 느낀 것인지 부모의 이혼이 가져오는 문제들이 싫었던 건지 둘 다였는지 아빠 옆에 남았다.



    엄마는 나와서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매일 한숨을 쉬었다. 그런 엄마 얼굴에 순간이라도 미소가 나와주기를, 주말 점심 밥상을 준비하면서 바랐다. 아이가 입을 벌려 음식을 먹을 때 그렇게 웃음이 나고 좋다는데, 나는 지금 내 아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볼 때 보다 그 시절 엄마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볼 때 더 웃음이 났다.



    육수 안에 넣을 오이랑 김치, 도토리묵도 잘하지도 못하는 칼질로 썰어댄다. 요리할 때마다 입만 살아있는 큰오빠는 역시나 내 칼질에 불만이 많다. 야, 이제 그 정도 했으면 칼질 늘 때도 되지 않았냐? 왜,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괜찮아졌는데. 엄마가 편을 들어주는 척하더니 채 썰 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 어째라 말이 많아진다. 엄마, 몰라서 그렇게 안 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게 안된다고~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답답하게 느리게 불규칙한 탁, ......탁, 탁, ...탁 소리에 그래도 하나둘 준비되기는 한다.







    가난한 동네에서 우리 집은 이층 양옥집을 세 하나 주지 않고 살아서 친구들은 우리 집을 부잣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엄마나 우리는 항상 돈이 없어 쩔쩔맸다. 남들이 생활비로 이백 만원을 쓸 때 엄마는 백만 원을 받아 썼다. 그것도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꼭 며칠씩 늦게. 그러다 보면 생활비를 받는 날짜는 일주일이 훌쩍 넘어가 있고 그 사이 엄마는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 하며 돈을 꿨다. 우리는 정해진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돈이 필요해 아빠에게 말하면 꼭 대답하지 않고 일주일 내내 우리가 똥 마려운 개새끼 마냥 쳐다보며 구걸해야 우리가 말한 돈의 반 정도를 주었다. 친구들이 우리 집 보고 부자라는데 엄마나 우리들은 왜 이렇게 쪼들릴까, 왜 이렇게 끔찍한 기분을 안고 돈을 받아야 하는 걸까 싶었다.






    재료들을 종류별로 그릇에 총총히 담고 육수를 붓고 자른 김을 올려 묵밥 완성. 처음 접하는 음식에 엄마도 큰오빠도 나도 말이 많아진다. 원래 이런 맛 맞아? 맛이 희한해. 몰라, 나도, 하하. 뭔 묵을 밥이랑 같이 먹어. 신기하다. 간은 뭐로 했어? 맛 감별사들 총출동. 나도 긴가민가 이게 맞는 맛인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워진 우리들만의 집이 잠시 즐거워진다. 그냥 보통의 어느 집 같았다.








    집 앞 시장에서 묵밥을 오천 원에 판다. 엄마는 여전히 아빠와 산다. 엄마는 내게 주말에 엄마 아빠 보러 집에 오라고 하고, 나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는 여전히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불쑥불쑥 소리를 벌컥 지른다. 자신처럼 될까 봐 결혼하지 않는 큰아들을 떠올릴 때마다 욕한다. 항상 네 하는 작은아들이 한번 아니오 라고 하면 죽일 듯이 욕한다. 내가 드라마에 나오는 딸들 같지 않다고 마뜩잖아하며 욕한다. 기운이 예전 같지 않을 뿐 여전하다. 우리가 살던 집은 지금 누가 살고 있을까. 시장에서 묵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전 05화 엄마의 나들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