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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Oct 09. 2020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학생식당에서

“조금 더 달라고요, 먹을 수 있다니까요?”


    나는 그날도 식판을 들고 배식 담당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좀 전에 내 일행인 남자인 친구가 말 한마디 안 했음에도 밥으로 산을 쌓아 주었다. 나에게 준 밥은 번쩍이는 식판 바닥을 다 가리지도 못했다.


    “더 달라고 가져가 놓고 괜히 남겨서 버리지 말고. 다 먹으면 다시 받으러 오라니까? 내가 준다니까?”

    만만치 않은 상대다. 말을 주고받을 때마다 내가 하는 말 보다 반 옥타브 올라가고 데시벨이 껑충껑충 커진다. 밥 좀 더 달라는 말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며 버틸 일인가. 나도 물러서기 싫어졌다.

    “제가 먹는 양 보다 적으니 더 달라고요, 이것보다 더 먹는다고요!”

    같은 돈 내고 먹는데 왜 내가 이 사정을 해야 하나. 목소리가 높아진다. 왜 얘는 알아서 더 주고 왜 나는 달라고 해도 안주냐고 항의하자 아주머니가 말을 던졌다.

  쟨 남자잖아! 조그만 게 어디서 목소리를 높이고 그래!


    커다란 학생식당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아주머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충격받았다. 첫 번째, 성별에 의한 처사라는 것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다니. 저렇게 쉽게 한 단어, “남자잖아”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 하다니. 두 번째, 조그맣다니, 조그맣다니, 조그맣다니. 막상 그렇게 말하며 나를 훑어보는 아주머니 눈 위치는 나보다 아래였는데. 나이 이야기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에나 들었을 공격력에 어이가 없어 반격을 못했다.


    반격 의지를 잃고 말을 잃고 쪼그라들어 멈춰 있던 나를 이때다, 하고 옆에 서 있던 학생이 밀어내었다. 미는 대로 힘없이 밀려 나왔다. 남자라는 이유로 밥을 많이 먹게 생겼다는 오해를 받고 넘치는 양의 밥을 받은 남자인 친구는 나를 측은하게 보며 “나 이거 다 못 먹어. 너 덜어줄게.”라며 선심을 썼다.


    “왜 나는 안돼?”에 대한 대답, “오빠들은 남자잖아.”라는 말을 들으며 커온 나는 그 날, 똑같은 돈을 내고 똑같이 줄을 서서 밥을 받는 학생식당에서 그 똑같은 말을 들었다. 밥을 조금 더 달라고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의 속마음이 그 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아무렇지 않고 뻔뻔하게 표출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말을 내가 거기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차이가 아닌 차별을 차별인지도 모르고 말을 내뱉던 시절이었다.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적도 없었고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난 화두였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지금 우리 사회에 급한 일이 너무나도 많다고 무시당하던 일이었다. 


    학교 내에서 가장 대놓고,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으로 느껴지는 곳이 학생식당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남자 학생들, 특히 건장한(남자다운) 남자 학생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공짜 김치가 필요하거나 동아리방에 젓가락이 떨어지면 건장한 남자애들을 학생식당에 파견했고 그 애들은 자율급식대에서 김치와 젓가락을 쟁취하여 의기도 양양하게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가 아니더라도 아주머니들이 좋아할 법한 남자애들은 자취방에서 먹을 김치를 마구 담아갔고, 아주머니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라면을 파는 코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픈되어 있는 주방에서 라면 조리 담당 아주머니가 라면을 한꺼번에 열 개를 끓이면서 라면을 담을 그릇을 바 위에 주르륵 올려놓았다. 한꺼번에 끓인 라면 열 개를 손대중으로 정확하게 나누는 일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킨 순서대로 라면이 나가지만 시킨 순서와 나가는 라면 그릇 순서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주머니의 절대 손은 라면을 받아가는 학생에 따라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인다. 라면이 많이 들어간 그릇이 사라질 때마다 소리 없이 지켜보던 일군의 학생들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지켜보고 있으나 마나 항상 내게는 더 들어간 그릇에 뺏긴 덜 들어간 라면 그릇이 돌아왔다. 더 들어간 그릇의 주인은 언제나 건장한 남자 학생이었다.


    아주머니들에게는 밥을 엄청 많이 먹고도 돌아서면 금세 배고파하는 아들이 있을 거다. 아마 그럴 거다. 그래서 나가서 배곯지 않을까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아들 대신 아들을 생각나게 하는 남자 학생을 보면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거다. 그러면 그 아주머니들에게 딸은 없었을까. 물론 딸도 있었을 거다. 그 당시 그 아주머니들의 연령대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 아이가 최소한 둘, 아들 하나, 딸 하나는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성별에 따라 낳고 안 낳고를 결정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면 그 집 딸들은 나와 같았을 거다. 넌 여자니까 그런 거 하면 안 돼. 넌 여자니까 오빠에게 양보해야지. 넌 여자니까 엄마 도와야지. 넌 여자니까 오빠 밥 차려줘야지. 난 그 아주머니들의 딸이 아니었는데. 학생식당이 집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예전보다 확실히 더 많이 공론화되었고 조금씩 세상은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딸들은 너의 경험과는 전혀 다르다고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고 말하는 아빠들과 엄마들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한다. 똑같은 양의 밥을 받고 라면을 받는다고 해서 훑어보는 눈초리가 사라진 건 아니다.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인용하자면 “우리는 아직 차별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더 발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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