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엄마는 맨 싼 것만 먹을 줄 아냐

by 유이경

오빠들은 한 귀퉁이에 서서 엄마를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면 저 재미진 장면을 함께 보자고 불렀다. 엄마가 하는 거라고는 거실에서 티브이 보면서 나물을 다듬는다던지 바닥을 닦는다던지 소파에서 전화를 한다던지의 보통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 낄낄거렸다.


최고는 옥수수였다. 밤 10시, 드라마의 시간이 되면 누군가 아직 안 들어온 자식을 기다리며 엄마는 소파에 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다가 졸음이 사르르 오면 스르르 몸을 뉘었고 그러면서도 옥수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니, 입에서 놓지 않았다. 졸면서도 엄마는 옥수수를 먹었다.


크는 내내 조용하던 엄마가 변했다. 엄마의 갱년기 때문이었는지, 첫째 아들의 대학 입시에서 풀려난 해방감에서였는지 엄마는 점점 몸이 둥글둥글 입체적이 되었고 그만큼 성격도 둥글둥글 입체적이 되었다. 좋으면서도 어렵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보기만 해도 웃기기 시작했다. 오빠들과 만나면 첫 번째 화제는 단연코 웃긴 엄마였다.


엄마는 옥수수를 좋아했다. 엄마 친구들도 그걸 알아서 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옥수수를 보내왔다. 엄마는 소쿠리 한 가득 옥수수를 쪄놓고 먹으면서 엄마의 엄마,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최고의 요리사는 할머니였다.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맛있게 해 주셨는지, 옥수수도 얼마나 맛있게 쪄주셨는지. 나도 할머니의 옥수수를 먹어봤지만 나에게 최고의 요리사는 엄마였다.


우리 집 삼 남매는 의미보다 관습에 치우친 전통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하지도 않는 제사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하루는 또 셋이 모여 조상들은 왜 하나같이 음식 취향이 똑같냐고,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차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아버지 제사상에는 회를, 엄마 제사상에는 옥수수를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 엄마의 동의를 구했다. (엄마와 우리 삼 남매는 이런 이야기를 꺼리지 않는 편이다.) 엄마가 한 마디 했다.


“나는 옥수수만 좋아하냐?”

“아, 엄마 닭고기도 좋아하지. 닭고기 추가.”

내 이야기에 엄마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나는 맨 싼 것만 먹을 줄 아는 줄 알아?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건 언제나 아버지였다. 오빠들이었다. 나였다. 그 음식을 만드는 건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는 매일 세 끼 메뉴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식탐이 많은 아버지 덕분에 매일 상은 칠첩반상에 국이 한 종류, 탕이 한 종류 함께 올랐다. 매일 매운탕, 고기탕 종류를 먹고 싶어 하는 아버지 덕분에, 아버지 식성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자식들 덕분에 엄마는 항상 국물을 두 개 준비했다. 이전 끼니에 먹은 것들까지 집에 상비되어 있는 국물 종류가 네댓 개는 되는 이상한, 끼니때마다 무얼 먹을지 주문받는 식당 같은 집이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음식 가리는 게 많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엄마를 위한 음식 하나를 만들지 않아도 군말 없이 밥을 먹었다. 엄마가 엄마를 위해 요리한 건 옥수수 정도였다.


엄마의 말이 잊히질 않았다. 엄마는 옥수수와 닭고기를 제일 좋아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볼 생각 한 번 없이 그렇게 정해놓고 있었다.


평생 아버지의 감시와 눈살에 갇혀 집에 묶여 살던 날씬하다 못해 가냘펐던 엄마는 동글동글해진 몸으로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온갖 동창 모임들과 온갖 동네 모임, 온갖 (정작 우리는 연락도 하지 않는) 자식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 종교 모임. 이름도 헷갈리는 그 많은 모임의 삼분의 일은 엄마가 총무였다. 모임별로 통장들을 모아놓고 기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신기하고 안쓰러웠다.


외출이 많아지면서부터 엄마는 먹는 것에 취미를 붙였다. 나는 변한 엄마와 엄마가 먹어보지 못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점을 다니기 시작했고 엄마는 새로운 맛에 항상 호기심으로 대했고 즐거워했다. 나와 함께 갈 법한 음식점에 친구와 다녀와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털어놓을 때면 엄마는 어린아이 같았다. 말로만 음식 가리는 게 없이 다 잘 먹는다는 아버지와 달랐다. 아버지는 외식을 할 때면 회 아니면 국밥 종류만 찾는 사람이었고 그것마저도 집에서 먹는 게 낫다고 비싸다고 구시렁거렸다. (집에서 먹는 그 나은 음식을 만드는 건 엄마의 노동에서 나온 공짜니까.)


평생 돈에 벌벌하던 아버지에게 묶여 돈 백 원을 아껴가며 쓰고 그마저도 아버지에게 가계부를 검사받던 엄마가 근교로 오리 진흙구이를 먹으러 다니고 고급 레스토랑에도 가보기 시작했다.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고 화덕에 구운 피자가 맛있다며 레스토랑을 내게 추천해 주기도 했다.


지금이라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제대로 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확실히 아는 건 엄마가 옥수수와 닭고기만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는 오리 진흙구이도, 피자도, 아메리카노도, 라씨도, 한정식도, 오마카세도, 타이 커리도, 칼국수도, 빵도 좋아한다. 그리고 엄마의 메뉴는 아직 (코로나 19 때문에 자체 휴무 중이기는 하지만ㅜㅜ) 변화무쌍하게 증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