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회, 간택당한 자의 기분

by 유이경

주말이면 우리는 식당이나 술집 대신 마트를 털곤 했다. 우리의 먹부림을 얄팍한 호주머니가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매주 샅샅이 마트를 살펴보다가 발견한 냉동 참치회. 이게 괜찮을까 싶었지만 고급 참치회는 포기해야 하는 사정이라 의심을 떨구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괜찮았고 우리는 종종 마트에서 참치회를 샀다. 그리고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고부터 매주 참치회는 우리 카트에 실리게 되었다.


마트 털이가 끝나면 기분도 양양하게 우리의 낡고도 포근한 신혼집으로 돌아와 티브이 앞 어정쩡한 높이의 커피 테이블에 술상을 차리고 어정쩡하게 앉아 영화를 틀고 주말 밤을 보냈다. 그러고 있으면 녀석이 우리 사이에 쑥 들어와 앉았다. 남편은 녀석에게 우리의 일용할 참치회를 잘게 잘라 손 위에 올려 녀석의 콧잔등이 앞으로 내밀었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날름 받아먹고는 다음 것을 내놓으라는 듯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 새처럼 볼속이 나온 가슴을 내밀고 앞발을 모으고 앉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자세를 한 다음에 말이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내밀어 보았다. 고양이들이 생선 좋아하지 않나, 몇 점 남은 참치회 한 번 줘볼까 하면서 말이다. 먹을까 안 먹을까 반신반의하던 우리 앞에서 녀석이 바로 냉큼 받아먹자 우리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맨날 사료만 먹다가 특별식을 먹은 녀석보다 더 신이 났다. 얘 참 비싼 간식 먹네~하면서 예쁘다 예쁘다에 궁둥이 팡팡에 사진 찍기에 야단법석을 떨었다. 신기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즐거워서 하나씩 하나씩 주던 것이 우리에게도 녀석에게도 버릇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신혼집은 좁고도 낡고도 춥고도 포근한 곳이었다. 겨울에는 집에서도 바람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는 따뜻한 겨울용 실내복을 입고도 점퍼를 걸치고 지냈다. 현관문을 열고 복도에 나서면 복도를 막아놓은 벽을 넘어서까지 자란 나무에 손이 닿았다. 그 나무에 봄이며 여름이며 가을이며 겨울이며 새들이 모여 앉아 지저귀곤 했다. 집을 나서 아파트 단지 입구로 걸어가는 인도는 오래된 아파트답지 않게 널찍했다. 색색이 벽돌을 가지런히 얹어 만든 길 양 옆에는 나이 먹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고 나이만큼 풍성하고 길게 자란 가지들이 넓은 길 위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가득했다. 나는 그 길을 사랑했다.


녀석을 만난 곳도 그 길이었다. 점퍼 주머니에서 절대 손을 뺄 수 없는 추위였지만 쨍한 햇볕만은 무참히도 쏟아 내리던 날,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다가 녀석을 발견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얼어붙은 백색의 경치에 노랗게 떨어지던 햇볕을 그 조막만 한 얼굴로 온전히 받고 있었다.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은 고양이 몸의 곡선보다 아름다운 곡선이 있을까. 녀석은 가늘게 뜬 눈에 나른한 표정을 짓고서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을 온몸의 곡선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을 마음으로 찍어 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모습이 평생 잊히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그것을 가름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노랗고 갈색의 줄무늬를 가진 평범한 길고양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녀석이 세상 어떤 고양이보다 근사해 보였다.



녀석은 순순히 내게 몸을 맡겨 함께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녀석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동네 병원에 가니 큰 병원으로 당장 가보라 하며 소개해준 큰 병원에 전화를 걸어 녀석의 상태를 이야기해주었다. 차를 한참을 타고 간 큰 병원에서 녀석은 큰 수술을 했다. 차 사고를 당한 건지 누군가 발로 찬 건지 횡격막이 위로 올라가 있는 데다 폐렴이 심했고 장 또한 정상이 아닌 데다 새끼까지 배어서 이대로 놔두면 금방 죽는다 했다. 새끼나 어미 중에 선택해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는 녀석을 선택했다. 그 큰 수술을 하면서도 병원에서 내내 얌전했던 녀석에게 의사가 이렇게 순한 애는 처음 봤다며 “순이”라는 이름이 어떠냐 제안했다. 내가 그런 의미라면 “군자”는 어떠냐 했더니 의사도, 남편도 미동도 하지 않고 무반응으로 반응했다.


순이는 배에 커다란 수술 자국을 가지고 환묘복을 입은 채 정말 우리 집으로 함께 돌아왔다. 이제 다시 떠날 일은 없을 터였다. 남편은 환묘복을 자꾸 핥아 그 안의 수술 자국까지 자극하는 순이의 그루밍 걱정에 매일 밤 건넛방에서 순이와 함께 자며 보살폈다. 우리는 점프할 수 없는 순이를 위해 원하는 이곳저곳 자리에 모셔다 드리는 서비스도 하며 살피려 노력했다.


몸이 회복하는 것에 비례해 순이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비부비 하며 살갑게 굴던 순이가 실은 전형적인 까칠한 고양이라는 걸 알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가 속은 거 같아. 쟤 자기 살려고 처음에 그렇게 살갑게 군 거였어.”

“맞아! 그 햇볕 아래에서 응? 얼마나 부비부비 하고 말이야. 순순히 따라오고. 얘 병원에서 돌아와서도 장난 아니었잖아. 아직 아프니까 그런 건가!”

“그래, 맞다니까? 우리가 쟤를 선택한 게 아니야. 쟤가 우리를 찍은 거였어. 쟤네 만만하니 괜찮겠어하면서 말이야”

“그래! 그런 거네!”

우리는 분하다고 토로하면서도 행복했다.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비부비는 좋아한다


남편은 우리 집이 좁다고, 낡았다고, 춥다고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좁고 낡고 추운 집에서 셋이 복작거리는 게 좋았다. 주말 밤이면 어김없이 티브이 앞에 차려진 술상 앞에 남편과 둘이 앉고, 그러면 쪼로로 달려오는 순이까지 셋이 되고, 사랑스럽다고 끌어안으면 싫다고 도망가고, 이 좁은 집에 도망갈 곳은 없다 추격전을 벌이고, 우리가 포기하고 앉으면 다시 쪼로로 와서 부비는 그 밤들이 좋았다. 그 밤들의 술상에는 우리가 아닌 순이 때문에 사게 되는 참치회가 있었다. 이제는 세 식구가 아닌 (둘째 고양이에 아이에) 다섯 식구가 되었지만 가끔은 셋이 보내던 신혼이 그립기도 하다. 나의 신혼에는 순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