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내게 고양이와 청소, 글쓰기에 관한 광고를 보여준다. 나는 그 광고들을 열심히 본다. 맞다, 세 가지 광고에 나는 진심이다. 알고리즘과 진심이 내게 월척을 선사했다.
글쓰기에 관한 유료 강의 광고였다. 글을 쓰다가 막연한 막막함에 후진과 머뭇거림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혹했을 내용이었다.
강의는 세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듣다가 다시 듣기로 들어야지 했는데 세 시간을 꽉 채워 열심히도 들었다. 세 시간 동안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설거지를 하고 틈틈이 아이 질문에 대답하고 목욕하고 나온 아이 머리를 말려주고 잠을 재웠다. 그러면서도 강의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고 같은 마음으로 들어온 사람들과 채팅을 했고 강연자에게 질문을 했다. 오래간만에 바짝 날이 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 일이 있다.
매일 써라.
이번 강의에서도 역시나 나온 이야기다. 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언제나 이 이야기를 들으면 뼈를 맞는다. 슬금슬금 꾀가 나서 일주일에 한 번 쓰고도 만족하는 요즘의 나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그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단어가 있다. 독자. 출간 기획서에서 뜬구름처럼만 존재하던 타깃이라는 존재. 누구를 위한 글인가. 한 번도 제대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기획서는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있어 보이는 단어들을 끌어모은 것 그 이상은 없는.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던 지점이 바로 독자였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나의 독자는 내내 나였다. 몇 년 전 글을 쓰기 시작했던 마음을 돌려 보았다. 나의 욕망은 내가 글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독자는 나였다. 거기까지는 좋다. 다만 이제 내 욕망이 변했다는 것, 이제 나의 글쓰기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내 마음속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머무른 응어리가 되었다.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존재로서 ‘독자’를 생각해 본다. 내가 수많은 책들의 독자인 것을 떠올린다. 나는 어떤 책을, 어떤 글에 매력을 느끼는지 다시 내 글들을 낯설게 본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천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 마음을 가볍게, 그리고 성실하게 새롭게 써 나가야 할 글들을 생각한다는 것. 나는 항상 열심히 해온 무언가의 잘못을 알아내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는 것에 묘한 기쁨을 느낀다. 내 잘못을 깨닫는데 흥분된다니, 변태인가. 사실 이 흥분은 지난날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앞날에 대한 흥분이다. (그리고 난 계획을 짜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유형...)
원래 시작할 때는 누구나 신이 난다. 금방 무언가 될 것 같아서, 정말 이게 맞는 것 같아서. 하지만 이건 현실 자각 타임이 오기 전까지의 짧은 착각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아, 실행을 미루고 싶다. 이 짧고 강렬하고 무용한 기쁨을 좀 더 끌어안고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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