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내.”
서너 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아빠가 말한다. 이 아빠는 지금 아이에게 빙의되어 있다. 목소리가 얇고 높아진 데다 발음이 허술하다. 그래 봤자 어른의 목소리지만 아무튼. 미아내는 앞에 서 있는 또래의 아이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또래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엄마가 말한다.
“갠차나.”
아이의 손을 잡고 있으면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오는 것인가. 이 엄마 역시 아이에게 빙의된 것이 틀림없다.
아이의 부모들은 종종 아이에게 빙의당한다. 아이는 엄마 아빠 마음속으로 들어가 평소에는 너무도 멀쩡한 성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요상하게 바꿔놓는다. 발음까지 완벽할 수는 없지만 비스무리하게 뭉개진다.
그새 아이가 90% 이상 완벽한 발음을 하게 되었다고 잊었던 광경을 건널목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보았다. 내로남불. 분명 나도 저렇게 행동했었는데 그새 낯설고, 웃겼다. 나도 저렇게 보였겠지.
아이들의 부모들은 서로 어색한 사이다. 분명 별 문제 아닌 사소한 트러블이었을 거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상대방이 나를 뭐라고 보겠어. 면피부터 해야 하는데 아이를 붙잡고 설명하고 아이가 말귀를 알아먹고 입으로 내뱉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상대방 보는 앞에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원래의 완벽한 성인의 목소리로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말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다. 상대방은 분명 어쩔 줄 몰라하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테니까.
이럴 때 부모들이 택하는 손쉬운 방법. 잠시 정신줄을 놓고 아이에게 영혼을 맡긴다. 그러면 입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가 지금 아빠의 입을 빌어 너에게 말한다. 미아내라고. 평소 나라면 미야내라고 할 테지만 성인의 몸을 빌자니 평소 목소리가 백퍼 나오진 않는다, 양해해라,라고.
별 거 아닌 장면을 건널목 앞에서 즐거이 바라보았다.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지 않다. 아이들이 특히 많은 우리 동네에서 이런 빙의야 너무 흔한 일이니까 말이다.
아이는 목소리를 꾸며낸 아빠가 신기한 건지 재미있는 건지 빤해 쳐다본다. 그러다가 아빠를 따라 한다. 미야내라고. 평소 아이가 하는 말 그대로, 중얼거리고 뭉개지는 말이더라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무슨 상황인 건지 백퍼 이해하지는 못했더라도. 미야내. 그러면 오는 핑퐁의 말은 개챠나. 앞의 아이도 엄마를 따라 말한다. 이 아이도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는 게 틀림없다. 말은 했는데 시선은 엄마에게만 가 있다. (사실 엄마가 아이 등을 툭툭 치고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완성되지 않은 발음이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상황을 누그러뜨리는 데에 일등공신이다. 멋쩍은 듯 괜히 아이들의 부모들이 어색하게 웃는다. 옆에서 몰래 보던 나도 그들의 웃음이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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