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택시를

by 유이경

택시를 타자마자 들리는 음악이 Lana Del Rey의 Video Games였다. 반가운 마음에 택시 운전사에게 아는 척을 할 뻔했다. 다행히 말을 꺼내기 전 아저씨가 라디오를 틀어놓은 걸 눈치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비에 젖은 낯선 밤거리를 창문으로 안전하게 건너 보았다. 평소 택시를 타면 이어폰을 끼지만 오늘은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집어넣었다. 차창에 빗방울이 맺혔다가 흘러내리는 걸 한참 바라보다 보니 노래가 바뀌었다. 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 원래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이 밤에 참 잘 어울린다 싶었다. 비 오는 날엔 비트 있는 노래보다 잔잔한 노래를 선호하는 뻔한 편견으로 택시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여유롭게 비와 음악을 음미했다. 이런 순간이 참 오랜만이었다.


주말, 외출을 했다. 조금씩 뿌리던 빗방울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이 거세졌다. 운 좋게 내 앞에 선 택시에 올라탔다.


시간이 많지 않아 탄 택시인데도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벌써, 싶어 진다. 좀 더 동네를 볼 수 있는 길로 가면 좋겠지만 택시는 역시 누구라도 택할 고속화도로를 이용해 이동한다. 높은 벽 위로 보이는 건 즐비한 아파트들 뿐이다. 그래도 젖은 차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그리 살풍경하지는 않았다. 어느새 아는 동네로 접어든다.


택시에서 내려 도착한 밤의 거리는 택시를 탔던 동네와 비슷하다. 어두우면서도 반짝인다. 비와 상가들의 조명들이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닥의 물기가 상가 조명들을 반사해댄다. 반짝이는 불빛들에 마음이 아직 어지러웠다. 좀 전에 봤던 영화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해서이다.


영화는 적당히 좋았다. 충분히 좋았다. 보았다는 것 때문에 좋았다. 거의 십 년 만에 서울 중심가로 나가 독립영화를 보았다. 지금 사는 동네에 불만이 있다면 하나,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너무 멀다는 것.


영화에 푹 빠져 이십 년을 보내고, 잊고 십 년을 보내고, 예전만큼의 열정은 아니지만 조금은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영화 보는 시간들을 갖고 싶다. 그 시간들을 사랑하고, 투자하고 싶다. 오랜만의 나들이를 하면서 느낀 건 예전의 감상이었다. 예전에 이렇게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녔었지, 모르는 동네를 영화 하나 보겠다고 돌아다니곤 했었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 영화를 보면 마음껏 푹 절어서 정신을 놓고 있었지, 이런 날에 영화를 보면 잠이 들어서도 마음을 떨치지 못했었지.


그때만큼의 마음을 돌려받을 생각은 없지만 영화를 좋아하고, 찾아보고 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도 말이다. 불편함이 있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라도 관심 있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싶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무상하게 거리를 걷고 그러다 힘들면 택시를 타고 돌아오고 싶다. 그 날들 중에 하루에는 비가 오기도 하고, 운 좋게 좋아하는 노래가 딱 흘러나오는 그런 택시를 타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Photo by Jorge Salvado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