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매]
모 씨와 오랜 인연을 맺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거의 모든 것을 서로 나눴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굳이 언어를 빌려 전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알아채고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그리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던 인연이 풀어지며 그 좁은 세계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튕겨 나왔고 밖에서 본 우리 모습은 안에서 느끼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제야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는 누구와 어떤 것을 보며 무엇을 나누고 있었을까. 상대의 손을 굳게 잡고 있다 여겼지만 안개가 걷히고 나니 상대가 벗어놓고 간 장갑만 쥐고 있던 셈이었다. 소통의 부재. 그것을 깨닫고 나니 자신이 멍청하고 안쓰러워 길을 잃은 채 홀로 울었다. 한시도 허투루 대한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결과가 전부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머리 위 작은 할로겐 조명. 목을 간질이는 건조한 공기. 은은히 풍기는 방향제 냄새. 제목을 모르는 외국 노래. 구색을 갖추기 위해 꺼내놓은 안줏감. 그리고 애정과 걱정을 품은 가 씨와 자책과 회한을 삼킨 나. 그날 좁은 거실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던 모든 것.
나는 가 씨에게 물었다. 소통이란 무엇이냐고. 당신은 내게 말했다. 스스로 찾아낸 답이 자신에게만 정답인 문제를 왜 남에게 묻느냐고. 나는 대꾸했다. 알고 있었는데, 아니 안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모르겠다고.
당신은 나를 향해 컴퓨터 모니터를 돌렸다. 사진 편집 프로그램에는 직사각형의 작은 그림이 하나 떠있었다. 무슨 색이라 말하기 모호한 원색이었다. 이게 무슨 색인지 말해보라고 해서 겨자색이나 어두운 녹색 같다고 했다. 내가 옳게 답했냐는 질문에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 그림을 복사해보라고 했다. 나는 단축키를 눌러 똑같은 그림을 간단하게 만들어냈다.
당신은 겨자색 그림을 삭제하고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슨 색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어두운 청록색 같다고 답했다. 당신은 그림을 화면 아래로 숨기고 방금 것을 복사하지 말고 새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나는 색상표에서 가장 비슷한 색을 찾아 그림을 만들어냈다. 당신이 숨겼던 그림을 꺼내 내 것과 비교해보니 완전히 같지는 않았으나 얼추 비슷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모니터를 완전히 내게 돌려놓고 새로운 색을 만들어서 자신에게 보여주지 말고 화면 아래로 숨기라고 했다. 나는 그림을 하나 만들어서 숨겼다. 무슨 색이냐고 물어서 어두운 하늘색이라고 답했다. 모니터를 가져간 당신은 금세 하나의 색을 만들어냈다. 어두운 하늘색이었고 내가 만든 것과 꽤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내 것을 띄워 나란히 비교해보니 하늘색인 것만 같고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 당신이 그랬다. 처음 복사한 겨자색이 우리가 희망하는 소통이고, 보고 따라 만든 청록색이 우리가 상대와 하고 있으리라 예상하는 소통이고, 듣기만 하고 상상해서 만든 이 하늘색이 실제 우리가 하고 있는 소통이라고. 사람이 가진 소통의 한계지만, 단지 한계일 뿐 잘못이 아니라고 그랬다. 그 후 당신은 다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우리는 조용히 술을 마셨고, 가끔 중요하지 않은 잡담을 했다.
머리 위 작은 할로겐 조명. 물 부족 LED가 깜빡이는 가습기. 날숨에서 풍기는 알코올 냄새. 여전히 모르겠는 외국 노래. 텅 빈 식탁 위 접시. 그리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사람 둘. 술자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들.
새벽이 더 깊어지기 전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택시를 잡아야 했고, 당신을 나를 골목까지 배웅하겠다고 했다. 골목이 끝날 무렵, 당신을 나를 불러 세워 말없이 안아주었다. 나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잘 가라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사람 하나 없는 대로는 가로등과 가로수만 줄지어 한산했다. 빨간불 대신 주황빛으로 깜빡이는 신호등. 바람에 맞춰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림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스쳐가는 차 소리. 새벽 세 시 무렵의 쌀쌀함과 고요함. 모두가 잠든 세상에 나만 잠들지 못한 것 같은 괴리감까지.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서서 언제고 올 택시를 기다리며, 울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으나 눈물이 났다.
당신은 내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평소 나를 유심히 그리고 끈기 있게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내 성향을 알 테고,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질문에 대한 대답 이외에는 다른 말없이, 조용히 안아주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으로 나에게 소통의 한계와, 그럼에도 한계를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소통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굳이 무슨 색인지 알아야만 소통은 아니라고. 우리는 많은 것을 모른 채로, 기껏 알던 것조차 매일 잊어가며 살고 있다고. 알고자 하는 것도 금세 알 수 없고, 알려고 하는 마음도 자주 내려놓고 살아간다고. 그러니 상대를 알고자 노력했다면 한계에 슬퍼하지 말고, 상대를 알기 위해 몸과 마음을 맞대고 부대꼈다면 결과에 자책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그 한계로 인해 상처 받고 좌절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구렁텅이에 떨어진 사람에게 구원의 손을 내미는 것 역시 한계를 가진 그 소통임을 당신은 말이 아닌 두 팔 벌린 몸짓으로 전해줬다. 소통은 알게 된 결과가 아닌 알고자 하는 과정이기에, 결과는 우리의 영역 밖이고 우리가 돌아볼 수 있는 부분은 과정뿐이라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어도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문득, 그때 집으로 돌아오던 택시 안이 생각났다. 요즘 내 주변에 소통의 부재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보여서일지도 모르겠다. 소통은 나이나 시기, 배움이나 함께 한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서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니.
내가 그들에게 그때의 당신만큼, 흩날리는 종이뭉치 위에 올린 돌처럼 단단한 위안을 줄 수 있을까.
- 좋은 수필 202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