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매]
상상 속 여행지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나는 날씨가 화창한 날에 좋은 사람과 멋진 장소를 여행한다. 차가 막히지 않고, 발목을 접지를 일이 없으며, 일행과 다투지도 않는다. 계획한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가져간 모든 물건은 적재적소에 쓰이며, 좋은 추억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떤 여행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비가 와 여행을 망치는 상황을 그리는 사람은 드물다. 멋진 여행지를 상상해보라 했을 때 맑은 하늘 대신 비바람에 먹구름인 풍경을 떠올리는 사람도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는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얼핏 염세적이고 비관적으로 보일 듯한 그대는 사실 누구보다 인간의 저변을 직시하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상상치도 못하는 상황을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이 절망 아래 엎드려있듯이, 염원이 두려움 안에 파묻혀있듯이, 절망과 두려움을 드러내는 그로 인해 사람들은 희망과 염원을 다시 그려낼 수 있을 테니. 다만 그는 힘들 것이다. 기쁨의 저편에 서서, 염원을 그저 멀리서만 바라보며, 그를 좇는 뒷모습들을 조금은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절망 안에 있을 그대라도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염세와 회의로도 가릴 수 없는 희망과 염원.
그가 쓰는 글은 분명 어두운 이야기일 것이다. 절망을 전하는 이야기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염원을 품고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것 없이 쓰인 이야기는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탁한 이야기가 된다. 그런 글을 읽는 이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그저 두렵고 절망스러울 뿐이다. 읽는 이에게 희망 대신 좌절을 택하게 한다. 그렇기에 그에게서 나오는 글은 읽는 이를 좌절시키는 탁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두운 이야기여야 한다. 그것을 읽은 이가 부정하게 하고, 반발하게 하고, 희망을 가지고 염원하게 해야 한다. 내용이 발랄하건 재밌건, 분위기가 찬찬하건 음울하건 상관없다. 글을 쓰는 그는 희망을 직접 제시해선 안 된다. 섣부른 염원도, 주관적인 기대도 안 된다. 그걸 찾아내는 건 읽는 이가 할 일이다. 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을 해냈을 때, 그가 드러낸 어두운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가 희망을 발견했을 때, 그때서야 그는 자신에게 ‘괜찮은 글을 썼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희망을 다른 이에게 전했다면, 어둠 속에서 찾아낸 일시적인 빛이 아닌 어느 순환의 시작이 되면, 그때는 스스로 ‘세상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칭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그 모든 과정은 그에게 힘들 것이다. 쓸 글을 혼자 볼 것이 아니라면 더 그렇다. 세상에 글을 드러낸다는 것은, 남들이 글을 읽는다는 것은 일종의 고문과 같으니까. 내가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적은 그의 영혼에서 스며 나오는 즙, 영롱하고 끈적끈적하며 비릿한 쇠 맛의 액체를 한 방울 맛볼 수 있음을 뜻한다. 놀랍도록 신기하고, 허무하게 세속적이며,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개인, 하나의 우주, 제멋대로 출렁이는 호수에 머리 위의 은하수를 잠시 비춰볼 수 있음이다. 종이를 넘길수록 그는 낱낱이 해체되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 조각조각 난 그가 있다. 내 세포 사이사이, 관절과 근육, 망막과 눈꺼풀, 내장과 핏줄이 만나는 곳에 끼어들고, 그것들은 순식간에 내가 된다. 남이 따라서 조합할 수 없는, 본래 가지고 있던 본연의 색은 빛을 잃으며 나로 포함된다. 지금껏 익히 흔하게 밥을 먹고, 길을 걷고, 타인과 대화를 하며 겪었던 과정과 한 치 다르지 않게 나는 그를 흡수한다. 그는 나에게 정의된다. 그의 안에서 하나로 온전하던 별은 내 별무리 사이에서 길을 잃고 파묻힌다. 홀로 성스럽던 빛을 꺼트리며 무리로 타락하는 일로 무리가 홀로 잔잔한 빛을 내도록 돕는다. 우주는 그렇게 꽃잎 속으로 잠이 든다. 별이 빛으로, 밤하늘이 새벽으로, 호수는 손바닥으로, 사상은 연료가 되어, 신성이 점멸하며 어제를 위한 내일이 된다. 오늘이 춤을 추듯 흔들린다. 켜켜이 쌓여있던 종이가 책이 되고 수액이 되며 먹이가 되어 다시 풀잎 소리가 되듯이, 그의 영혼은 점점이 갈려 조금씩 세상에 흩뿌려진다.
대신 그런 사소한 단점을 받아들인 그는 조촐한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얀 바탕에 한 자씩 의지를 새기는 쾌감, 유리창을 깨끗이 닦은 듯 점점 맑아지는 풍경이 주는 행복감, 주변을 머무는 것과의 기묘한 일체감, 귀로 들어오는 여러 소리가 음악이 되는 차분한 고양감, 미지근한 물에 잠긴 듯한 정신이 빠르게 또렷해지는 각성, 그리고 헝클어진 몸과 마음이 차곡차곡 다시 맞춰지는 그 안도감까지.
그쯤 되면 그는 어엿한 글쓴이가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주변 모든 것이 망가진 채 몸이 피폐해지고 마음이 무너졌을 때 그 순간을 견디는 방법이 남들보다 한 가지 더 생긴 것이다. 하얀 종이에 글씨를 새기든 종이의 껍질을 벗기든 오늘을 내일로 이어붙일 자신만의 수단과 과정을 마련한 사람이 된다. 날이 밝는 대로 이 종이 뭉치를 불태우고 죽자며, 그 핑계로 지금 좁고 낮은 방에서 험난한 새벽을 넘길 수 있을 그라서 다행이다.
오늘도 상상 속 여행지에서 비가 내리는, 글을 쓰는 모든 그들의 밤에 평안함이 깃들길.
- 좋은 수필 2020년 12월호
- 2021 좋은 수필 제3회 베스트 에세이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