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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15매]

by 이한얼






그 상자는 정해진 이름이 없다. 단지 누군가 붙여준 이름만 있을 뿐이다.


두 손으로 간신히 받쳐 들 만큼 작은 상자는 단촐하다. 원래 있었는데 지워진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직사각형의 표면은 아무 무늬도 없다. 다만 꺼끌꺼끌하지 않고 매끈한 나뭇결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탔을지 짐작케 한다. 뻑뻑하게 열리지 않는 뚜껑을 힘겹게 열어보면 내부는 더 깔끔하다. 가운데 칸막이를 기준으로 양쪽에 각각 무언가를 담을 수 있다. 예전 내가 상자를 받았을 때는 작은 불꽃과 나침반이 있었다.

열아홉의 문턱에 갓 들어섰을 때까지는 말 그대로 보통의 나날이었다. 가정과 사회가 공들여 만들어준 울타리 안에서 지극히 무난하고 평화로웠기에 자신의 삶이 안온함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별안간 세상이 우르르 무너졌다. 울타리를 납작하게 으깨는 압력에 영문도 모른 채 함께 짓눌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폐허 한복판에 서있었다. 그때부터 무엇이 힘들게 했는지, 누가 힘들게 하는지, 왜 힘들지도 모른 채 그저 잠시의 체온과 애정의 자취만 쫓고는 했다. 그렇게 모르는 골목에서 눈을 뜨고 처음 밟아보는 계단에서 잠이 들던 와중에 나는 당신을 만났다. 상자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그때였고, 이건 누구에게 받지 않은 이상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내게 이걸 준 당신도 분명 다른 이에게 받았을 것이다. 이제는 물어볼 수 없게 됐지만.

당신은 나보다 키도 작고 가냘픈 체구였지만 차량 방지턱에 앉아 올려다본 뒷모습은 산처럼 거대해보였다. 가슴속에 단단한 심지를 품고 자신을 불살라 주변을 밝히는 사람. 모든 기준점을 잃은 나는 신념이 가득한 당신의 눈빛에 금세 매료되었다. 당신의 뒤를 쫓아다니면서 작은 행동과 말 한 마디마저 흘리지 않고 모조리 가슴 속에 쓸어 담았다. 많은 것을 묻고 또 되물었고, 그때마다 정답이든 아니든 당신은 자신감에 찬 생각을 되돌려줬다. 그러며 내가 당신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길들여졌음을 깨닫기도 전에 그것은 이미 내게 건너와 있었다. 불꽃과 나침반만 덩그러니 들어있는 작은 나무 상자. 이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누구에게 받았는지. 불꽃은 알겠다 쳐도 나침반은 무슨 의미인지 어느 것도 묻지 못했다. 그때 당신은 이미 내 곁을 떠났으니까. 그저 당신이 있던 자리에 앉아 상자의 모서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유추할 뿐이었다.

그때부터 내게 작은 상자는 두 손으로 받쳐 들어야 할 만큼 무거웠다. 당신에게 이걸 받았을 때부터 한 순간도 고맙지 않은 적이 없지만 동시에 나는 괴로웠다. 내가 이걸 받아도 되는지. 된다면 받을 수 있는지. 왜 내게 이걸 준 건지, 의문들이 수시로 나를 괴롭혔다. 내 마음 한 구석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상자의 무게를 느끼며 지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그를 만난 것은 당신을 보내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첫만남에서 유난히 웅크린 어깨와 퀭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며 당신이 떠올랐다. 당신의 눈에 그때의 내가 혹시 저렇게 보였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잘 따랐다. 마치 헤어진 피붙이처럼 나를 대했고, 많이 의지하고 기대했으며, 무엇보다 예전 내가 그랬듯이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을 물어왔다. 내가 당신처럼 잘 대답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기대만큼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신념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의 기댈 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대답을 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신념과 사상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리고 내게 많은 것을 묻는 아이들 중 오직 그만이 내가 밖으로 흘리는 행동과 말을 마치 자기 것처럼 집어 삼켰다. 마치 어린 나무가 쉬지 않고 자라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눈빛은 또렷해졌고, 영혼의 그릇이 점점 넓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쯤 깨달았다. 내가 그 어린 나무에게 깨끗한 물인지 아니면 썩은 거름인지 자성해보기도 전에 이미 내 상자가 그에게 복사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내가 가진 상자가 더 이상 무겁지 않음을. 마지막으로 그것도 깨달았다. 지금 그가 품은 상자가 나만큼 가볍지 않음을. 상자를 받은 후부터 그는 내내 울면서 웃는 얼굴이다. 종종 고맙다고 말하지만 가끔은 내가 밉다고도 했다.

상자는 인의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고 싶거나 받고 싶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주고 싫거나 받기 싫다고 아니 가는 것도 아니다. 건너갈 것이 건너가야 할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고, 나도 당신도 그도 우리 모두는 거대한 물결의 한 방울이자 동시에 물살의 진의,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전달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고 아마 당신도 그랬을 듯이, 그도 언젠가 가벼워진 상자를 한 손으로 든 채 누군가에게 고마워하고 누군가에게는 미안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에게 건너간 상자의 내용물을 바꿔 넣는 것뿐이다. 불꽃은 모두의 것이지만 나침반은 당신에게 받은 나만의 것이니 대신 노트 한 권, 언젠가 그의 30대, 50대, 70대를 그리며 전해주고 싶은 말들로 채운 작은 종이 뭉치를 넣어 두었다. 그는 다음 이에게 노트 대신 무엇을 넣어 넘길지 궁금하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대물림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대물림에는 생물의 유전적 대물림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에 없던 아이를 낳아 애정과 의지와 시간을 통해 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이 인간의 생물적 훌륭함이라면, 누군가의 토양에서 살아온 나의 지난 역사와 지금의 신념과 미래의 행동이 누군가의 사상적 토양이 되는 것, 그래서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빛날 사상을 품은 그가 훗날 다른 이의 토양이 될 때까지 아직은 못 미더운 그를 믿어주고 성장 중인 그를 기다려주며 내가 살아가는 행위로 그를 지켜보는 것, 그런 사상적 대물림이 인간의 인간적 훌륭함이 아닐까.

오늘도 그 상자는 내 마음 서랍에 고이 자리하고 있다. 안에 들은 불꽃과 나침반도 여전하다. 언젠가 그 불꽃이 시간의 끝자락에서 사그라지는 날이 온다 해도, 내가 이어준 다른 상자의 불꽃은 그때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만으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여러 의의 중 하나는 온전히 채우고 떠난다는 위안이 되기를.


그 상자는 정해진 이름은 없다. 오직 스스로 붙인 이름만 있을 뿐이다.




- 현대수필 202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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