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매]
현관 앞에 택배 상자가 있다. 들여다본 주소는 어느 전자제품 매장의 것이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노트북이다.
새 노트북이 왔다. 이십 대 초반부터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모든 순간을 함께해준 첫 번째 이후로 두 번째이다. 그간 사람으로 치면 아흔 살이 넘어 골골거리는 모습을 보며 조금만 더 힘내라며 수시로 모니터가 꺼지고 작동이 멈추는 너를 달래 왔다. 언젠가는 헤어지겠지만 우리 좀 더 같이 있자.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렇게 아등바등하다 보니 너는 아홉 살이 되었다.
너 노트북 바꿔야겠네. 빈말이라 넘겼다가 불쑥 받게 된 선물에 사실 나는 한동안 울적했다. 주변 물건에, 특히 정해놓은 몇 개의 사물에 생물 이상의 애정을 쏟는 성격이라 그렇다. 나갔다 들어오면 신발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다 식탁 다리에 발가락이 부딪치면 아팠겠다며 사과를 한다. 운전이 끝나면 스물세 살이 된 뜨듯한 보닛을 두드리며 고생했다고, 글을 쓰다 갑자기 모니터가 꺼지면 조금만 더 힘내라며 격려를 하곤 한다. 아직 만물을 사랑하는 위인은 되지 못했지만 범신론 쪽에 한쪽 발가락을 담그고 있는 사람으로서 모든 물건에는 신까지는 아니어도 일종의 령이 있다고 믿어왔다. 의지와 정념, 욕구와 애정처럼 생물이 가진 기운을 오랫동안 투사한 사물에는 결국 방향성을 가진 에너지가 깃든다고 여긴다.
만약 어느 종교의 법도처럼 전생이 있고, 내가 억겁의 과정 속에 일편의 삶을 사는 중이라면 그 모든 생이 반드시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순차적 시공간에만 의거하여 차례대로 이루어질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현재 현생을 사는 나의 전생은 과거이었을 수도, 그 전의 생은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같은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동시에 두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의 전생이었을 수도, 내가 증오하는 누군가가 나의 후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상에 ‘나’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럼 단지 의자라고 함부로 다루려다가도 손이 멎고, 길거리의 돌이라고 쉽게 차려다가도 발을 멈추게 된다. 책장을 만들다가 망치로 손가락을 찍어도 예전 내가 망치였을 때 사람이던 너를 찍었나 보다며 머쓱하게 웃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이 있듯이 사람과 사물 사이는 어떨까. 내가 전생에 반드시 인간이었을까. 설령 그때 인간이었다 한들 그 전과, 그 전은 무엇이었을까. 몇 백대를 거치고 몇 겁 전의 나는 여전히 인간이었을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 때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어느 때는 인간이었기도 했을 것이고, 때로는 사물이었다가 또는 식물이었다가 동물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타성과 맺는 연이 어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적용된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물이었을 때 다른 사람과 맺은 것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호연이기도 혹은 악연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반대로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다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와 만나 그리 긴 시간 함께하며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었던 그 사물이 어찌 나와 연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나는 실제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일상은 이런 관계로 가득하다. 역지사지, 사필귀정, 선악후선, 물아일체 등의 개인적인 깨달음 역시 나와 그들이 전체의 일부이자, 일부의 개별이자, 개별의 전체라는 전제 하에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로 새 노트북을 받고 처음 느낀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심지어 누군가를 배신한 것 마냥 알싸한 맛이 났다. 그것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첫 친구와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고, 나를 만나러 온 새 친구를 온 마음으로 반겨주지 못한 무안함이기도 했다.
새것이던 네가 낡아가는 동안 어리던 나는 이만큼 자라났다. 삼인행필유아사라고, 내가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어가는 존재라면 너는 나의 수많은 선생 중 하나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낸 스물세 살의 자동차, 깜빡해서 안 끼고 나가면 내내 몸 상태가 안 좋은 열네 살의 반지, 종일 마주 앉아 온갖 감정을 받아주는 아홉 살의 노트북, 그리고 흐름 속에서 나와 함께 늙어가는 모든 것들. 우리가 만나고, 하루씩 시간을 보내고, 하나씩 이별할 준비를 하며 나는 너희로 하여금 세상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왔다. 그 깨달음은 단순히 의자와 같은 물건에만 한정되지 않고 돌과 같은 무생물,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이 없(다고 느껴지)는 다른 식물, 그리고 이성적인 교류가 없(어 보이)는 다른 동물, 그리고 인격이 없(다고 취급하)는 다른 인간으로 점점 확대되었다. 즉, 내가 아닌 남이라 규정한 상대를 어찌 대할 것인지. 안이 아닌 밖이라 인식한 대상을 무엇으로 취급할 것인지. 그것은 반대로, 나는 남에게 어떤 식으로 대우받고 싶은지에 대한 과정이었다. 세상 어떤 존재도 취급하는 대로 취급받는다는 섭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어쨌든 나는 무사히 두 번째 노트북을 받았다. 아직 마음이 혼란하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하자는 심정으로 며칠 묵혀둔 택배 상자를 뜯었다. 전원을 뽑는 첫 친구에게는 그래도 조금만 더 고생해달라고, 새로이 전원을 꽂은 새 친구에게는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반갑다고 첫인사를 건넸다. 이제 앞선 친구가 하던 일을 이 친구가 천천히 넘겨받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조만간, 늘 그려왔지만 한편으로는 오지 않기를 바랐던, 그동안 수고했고 고마웠다는 말을 할 날이 올 것이다.
- 한국수필 20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