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매]
신축년 늦겨울의 어느 날, 새벽 네 시 육 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날씨만큼 건조하다. 현관 앞 너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다. 단정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입 꼬리를 늘어트리고 줄줄 우는 것처럼 보였다.
"들어와, 배고파?"
널 마주한 내가 물은 것은 이 두 마디, 반면 너는 한 마디뿐이었다.
"배 아파."
그로부터 한 시간 전, 너와 통화 중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수신대기로 돌려놓고 받아보니 경찰이었다.
"지금 통화가 됐어요. 만나기로 했어요."
내 말을 들은 상대는 따듯하게 대꾸했다. 다행이다, 잘 얘기해 보고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 달라. 그렇게 추운 거리를 통과해 집 아래까지 온 그들은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너와 통화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오 분 전, 너에게 세 번째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과 별개로 ‘나 벌써 신고했는데’라는 답장을 보냈다. 부디 이것이 그 걸음에 걸림돌이 되길. 다행히 너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는 비현실처럼 고요했다. 바람소리나 기계소리는커녕 사람이 숨을 쉬고 움직일 때 나는 기본적인 인기척조차 없이 조용했다. 너도 나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광막한 우주 어딘가에서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시간만 가만히 흘러갔다. 목구멍이 바싹 말라붙었다. 첫말은 무엇으로 할까. 나 역시 예전 언젠가, 지금의 네가 서있는 그곳에 서본 사람인데 과연 무슨 말이 통할까. 귓가를 맴돌다 일편이라도 그 좁고 어두운 구멍 안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신고했어?"
오히려 네 쪽이 먼저였다. 그렇다고 답하니 다시 전화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네가 말했다.
"참 밉다."
내려놓는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네가 손끝으로나마 간신히 뭔가를 잡아채는 소리처럼 들렸다. 순간 코끝이 알싸해졌다.
"어디야, 갈게."
"아니, 내가 갈게."
네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로부터 십오 분 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번호 세 개를 눌렀다. 이미 늦은 게 아닐까. 늦으면 어떡하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가 조급해질수록 받는 목소리는 더 건조해졌다. 그 순간은 조금 야속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상대의 배려임을 안다. 실제 상대가 담담하게 물어볼수록 나도 조금씩 차분해졌으니까. 너의 성별, 나이, 머리길이, 체형, 피부가 하얀 편인지 등을 답하던 나는 주소에서 처음으로 말이 막혔다.
"사는 동네는 아는데 정확한 주소는 몰라요."
우선 휴대폰 위치추적을 하고, 서로 사는 동네가 다르기에 내가 사는 동네에서 경찰관을 보내겠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하라는 말에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사십 분 전, 모르는 이에게서 문자 한통을 받았다. 자신을 너의 지인이라 소개한 상대는 방금 너에게서 온 문자에 내 번호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네가 안 좋은 생각을 하는 듯하다고 했다. 나는 대번에 그럴 리 없다고 단언했다. 내 삶을 가장 가까이서 봐온, 다른 이도 아닌 너라면 더더욱. 지인은 네게 받은 문자를 그대로 복사해서 보내줬다. 내용을 거듭 읽을수록 아랫배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죽겠다고 미리 말하는 사람, 실패하고 뒤늦게 말하는 사람, 결국 성공한 사람까지 다양하게 봐왔다. 어찌 내 주변으로 모이는 것처럼 유독 많았고, 그들과 평생을 부대끼며 새벽에 버스고 기차며 많이도 타왔다. 생전 처음 와보는 지방에서 일출을 보고, 일몰을 등지고 혼자 갔던 길을 둘이서도 숱하게 돌아왔다. 다시 문자를 들여다봤다. 지금 너는 처음인 장소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선을 지나면 돌아올 수 없음을 알지만 스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50대50, 똑바로 선 막대가 어느 쪽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바로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의 요청으로 착신이 금지된, 다시 걸고, 또 다시,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그때 떠올랐다. 네 주소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거제고 원주고 수차례 우리 집에 왔지만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음을.
그로부터 십분 전, 너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집과 일자리를 정리하고 멀리 떠난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너는 몇 차례 그렇게 지방으로 떠났고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나와 보지 않다가 다시 보는 일의 연속이었다. 네 배터리가 다 떨어졌구나. 벌써 그럴 때가 되었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때 너는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다시 지금이다. 너는 우리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 어딘지 모르겠으나 한 시간 전 네가 있던 곳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일 것이다. 맞은편에 앉은 나는 웅크린 채 자기 발끝을 보고 있는 네 정수리를 멀거니 보고 있다.
"어디까지 갔다 왔어?"
간만에 내가 물었다.
"당신이 준 노트, 버렸어."
간만에 네가 답했다. 그에 누구도 말을 덧대지 않았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상자를 버리려면 내용물부터 비우는 게 순서니까. 그리고 내가 너를 아는 것보다 몇 배는 나를 잘 아는 너이기에, 내가 등을 보인 이의 허리를 붙잡는 것은 오늘뿐이라는 것도 분명 알 것이다.
나는 네가 살았으면 한다. 왜 살아야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답을 모르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살아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확률과 우연만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에게는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유를 알 때까지 이유를 모른 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고, 계속 살다가, 언젠가 더 살고 싶어도 강제로 숨을 놓칠 때까지 스스로 그만 두면 안 된다고, 십 수 년 동안 너에게 몇 백번, 나에게 몇 천 번 반복했던 그 이야기.
‘나는 산다. 괴로움도 슬픔도, 고뇌도 절망도 모두 삶 위에서.’
다만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오롯이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기에 다른 이를 끝까지 붙들 수 없다. 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타인의 생사에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없으니까. 단지 바람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상대가 내 시야와 손끝이 닿는 범위에 있다면 단 한 번만 상대를 잡는다. 멀어지려는 등허리를 끌어안고 근거 없는 신념으로 와 닿지 않을 설득을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고, 해도 되는 딱 그만큼만.
신축년 늦겨울의 어느 날, 너는 내게 문자를 두 개 보냈다. 처음인 1과 한 번뿐인 1. 그러고 한 시간이 지나 문자를 하나 더 보냈다. 네 마지막 문자는 먼저 갈 테니 신발은 부탁한다는 2였을까, 아니면 돌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으니 조명을 들어달라는 9였을까. 너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나 역시 결국 알게 되는 날은 오지 않기를 바라고.
- 인간과 문학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