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매]
우리 카페의 직원들은 그를 ‘얼 씨’라 불렀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그의 이름 끝자임을 알게 됐다. 첫 출근에 본 그의 첫인상은 딱딱했다. 곰 같은 체구에 무뚝뚝한 표정, 그리고 용건만 간단한 말투였으니까. 그런 그와 친해진 건 의외였다. 한 달쯤 지나 일이 좀 익숙해졌을 때 가져간 과자를 손님들에게 나눠준 일이 있었다. 다른 손님만 주긴 뭐해서 말 한 번 제대로 나누지 않은 그에게도 작은 그릇을 내밀었다. 평소처럼 딱딱하게 대꾸할 줄 알았는데 웬 걸, 그는 처음 보는 친근한 웃음으로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얼떨떨한 기분에 교대하는 직원에게 그는 어떤 손님인지 물어봤다. 직원은 딱 이렇게 말했다. 놔두면 무해하고 먼저 다가오지는 않지만 이쪽에서 친근하게 대하면 세상 그런 푼수가 없다고. 다음 날에 그는 오자마자 귤 두 개를 내 손에 쥐어줬다. 친근한 어조로 내 옷차림에 대해 칭찬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는 오전 한가한 시간에는 카운터에 기대서 그와 두 시간씩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는 카페에 오래 머문다. 나와 대화를 하거나 다른 일행이 없는 한 항상 뭔가를 쓰거나 읽고 있는데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보통 마감 전에는 나가던 그가 웬일인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얼 씨, 하고 부르니 화들짝 놀라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퍼뜩 시계를 보고서 미안한 듯 웃었다. 근데 표정이 묘했다. 늘 보던 장난스런 표정이 아니라 왠지 낙담한 눈빛이었다. 짐을 챙긴 그는 서둘러 카페를 나갔다. 왠지 찜찜한 마음으로 마감 청소를 하던 중에 콘센트에 꽂힌 노트북 충전선을 발견했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어차피 그쪽 방향이니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편한 차림이 아닌 1시간 전에 봤던 그 복장과 가방 그대로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여기서 뭘 하냐니 별을 세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곁에 앉았다. 그는 내게 미지근하게 식은 캔 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아까 소나기가 잠시 지나갔어도 여름밤은 춥지 않은데 그는 왜 따듯한 커피를 두 개나 쥐고 있었을까. 흐린 밤하늘을 나란히 올려다 보다 물었다.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해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척 하더니 자신은 시간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눈치가 빠르진 않지만 어째선지 거짓말 같았다.
"시간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은데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는 약점을 들켰을 때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잠시 후 그가 그랬다. 카페에 오래 다니는 동안 서른쯤의 직원을 알았고 대부분 친하게 지냈지만 내가 제일 무섭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커피 잘못 내렸다며 혼내고 음식 흘리고 먹는다며 놀리던 건 당신인데. 그러니 내 동그란 눈이 무섭다고 했다. 구덩이를 가리려고 짚을 덮어놓으면 그걸 자꾸 차버리는 눈이라고. 그러고 그는 충전선을 들고 촐싹거리는 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도 그를 오래 봤다. 밖에서도 종종 만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마치 나무처럼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인데 나이테의 무늬를 자세히 보려 하면 능선 너머의 나무처럼 아른거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저 사람은 왜 매일 여기 있을까. 단골이니 그런 영역을 떠나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족하고도 나름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왜 항상 여기에 있을까. 사람이 매일 카페에 못처럼 박혀 있으려면 어떤 심정이어야 가능할까.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 때문에 헤매는 중일까. 헤매고 있다면 그는 지금 돌아오는 중일까. 돌아오는 중이면 그는 결국 어디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족들이 있는 집? 아니면 이 카페? 그도 아니라면 또 다른 어디일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는 매일 카페에 오지 않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닐 때도, 직장을 다닐 때도 1년 중 360일을 오던 그가 한 달에 한 주 정도만 얼굴을 비췄다. 거제도로 이사 갔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변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웬 섬인지 물었더니 여기서 가장 먼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기쁜 얼굴로 그랬다. 드디어 가구 세 개를 전부 가졌다고. 뭐냐고 물으니 침대, 소파, 그리고 책상이라 했다. 그게 없어서 섬으로 간 거냐고 물으니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한 해가 더 지났을 때,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비췄다. 원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집이 커져서 기쁜 마음으로 2인용 소파를 마련했다는 말에 축하할 일이지만 그렇게 기쁠 일인가 의아했다.
또 한 해가 흘렀고, 그는 다시 매일 카페에 오기 시작했다. 서울로 이사 왔다고 했다. 가구는 모두 안녕하냐고 물으니 집 크기가 반절이 된 바람에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편하게 누워 자는 곳, 편하게 앉아 쉬는 곳, 똑바로 앉아 일하는 곳까지 지켰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커피 테이블도, 큰 텔레비전도, 심지어 세탁기까지 포기해야 했지만 그것들이 있으면 자신을 자신으로 온존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침대와 소파와 책상이 없다고 내가 아니라니 이해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요즘 일찍 가는 것과 관계있냐는 물음에 그는 그저 웃었다. 그 말대로 그는 요즘 온지 두 시간도 안 돼서 짐을 챙겨 나갔다. 이제야 평균치지만 예전에 비하면 와서 인사만 하고 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독립을 준비하며 그를 만났다. 혼자 오래 산 사람에게 조언을 얻을까 싶었는데 그는 여전했다. 빈집에 우선 세 가지, 오늘을 내일로 무사히 이어붙일 공간, 정서를 다독이고 보존하는 공간, 그리고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공간을 가장 먼저 배치하라고 했다. 그러고 남는 자리에 냉장고든 에어컨이든 두면 된다고. 혼자 살든, 둘이 살든, 가정을 이루어 아이들과 함께 살든 집을 꾸리는 순서는 언제나 같다고. 자기는 그러고 싶다고 했다. 사람 수 만큼의 침대가 있고, 그 만큼의 소파 자리가 있고, 그 만큼의 책상이 있고, 그 만큼의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 거라고, 그런 집이 없으면 지어서라도 살 거라고 했다. 그래서 함께 살지만 혼자 편히 눕고, 누구는 책을 보고 누구는 휴대폰을 하는 등 각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편히 앉아 동일한 기억과 정서를 쌓고,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똑바로 앉아 어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그러면서도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누구의 노크도 받지 않고 자신의 샤워기 아래서 울 수 있는 그런 집. 형편이 안 된다면 최소한 침대와 거실의 소파 자리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식과 정서의 보장은 가정을 가족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아이를 집 밖으로 내몰지 않는 마지막 방지턱이라고.
“왜 서양 영화에서 보면 아이에게 벌을 줄 때 ‘네 방으로 들어가!’라며 가족이 있는 거실에서 격리시키잖아.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상 같지만.”
그러며 그는 웃었다. 막 독립을 시작하는 내게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니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편해보여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수필 오디세이 202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