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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얼 Aug 30. 2022

세 번째 손






  하얀 파도는 넘실거리지 않고 고요히 흘러간다. 노란 바구니를 실은 배는 그보다 늦게, 하지만 꾸준히 떠밀린다. 깜깜한 바다를 건너는 느릿한 목소리. 나 여기 있어, 나 여기야. 들뜬 공기를 내뿜듯 주변을 물들인다. 이쯤 부르면 한 번은 뒤돌아볼 법도 한데, 바구니는 잔잔히 노를 젓는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하다 이내 촘촘히 멀어진다. 흘러간다. 언제까지고. 앞으로. 저리로.

  아마 한나절이나 지났을까. 저 멀리 동이 틀 무렵에 배는 완만한 섬 옆까지 간다. 잠시 멈추나 했는데 앞머리부터 파묻히듯 섬 너머로 가려진다. 마치 품에 안긴 작은 아이처럼, 새벽녘 잎에서 흙으로 떨어진 이슬처럼, 맑은 울림이 낮고 동글게 멀어지는 것처럼, 노란 바구니는 말간 빛무리만 점점이 남기며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안다. 다시 여기로 오지 않음을. 섬에서 섬으로, 또 다른 섬으로 끝없이 나아가겠지. 한 번의 돌아봄도 없이.

 

  너는 고등학생이다. 왜 벌써 고등학생이니. 뭘 했다고 아장거리던 너는 없고 길쭉한 네가 되었을까. 너의 교복은 왠지 크고 엉성하다. 옷감도 나쁘지 않고 박음질도 괜찮은데, 너와 안 맞는 크기도 아닌데 그래도 입은 게 아닌 걸친 것 같다. 내 낯섦과 네 멋쩍음이 거울 너머로 교차한다. 내 눈엔 그보다 더 커도, 혹은 작아도, 혹은 아주 딱 맞아도 전부 예쁜데 훌쩍 지나간 시간이 선뜻 벌어지려는 내 입을 자꾸 붙잡는다. 어때? 이상해? 간격을 둔 두 마디를 듣고 나서야 아니야, 예뻐. 축축한 소리를 토한다.

  가끔은 사무치게 예전 네가 그리울 때가 있어. 갓 태어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그 생경함이라든가, 혹은 뜨끈한 발을 내 팔뚝에 얹은 채 잠이 든 그 눈코입이라든가 말이야. 아장거리는 뜀으로 내게 달려와 풀썩 내 종아리를 끌어안는 그 몸짓도, 온몸으로 너를 빈틈없이 끌어안았을 때 내 등에서 느껴지는 네 팔의 압력도, 내 허벅지 위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수를 놓던 그 목소리도 말이야. 사진도 동영상도 많이 찍어 뒀지만, 그래서 종종 하릴없이 옛 모습을 돌려보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왠지 마음에 들어차지 않아. 지금의 너는 여기 있고, 예전의 너도 이 안에 있는데, 그런데도 이제 그 당시의 너를 직접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때때로 나를 크게 낙담시키고는 해. 이상하지. 이런 행복한 좌절감이라니. 또는 불안하지 않은 조급함이라니. 지금 네 모습도 금세 사라질 텐데. 그럼 또 십 년 후의 나는 여기에 있는 너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네가 이른 저녁으로 치즈 닭갈비가 먹고 싶다고 하면 나는 아직 입학도 하지 않은 그 교복을 입힌 채로 불판 앞에 앉힐 거야. 하얀 셔츠에 점점이 빨간 기름을 묻혔더라도 나는 네 울상을 보며 크게 웃을 거고. 그리고 매운지 발갛게 땀 난 얼굴로 치즈를 길게 늘어트리는 너를 보며 생각했겠지. 이렇게 계속 자라나는구나. 이제 정말 그 시간은 돌아올 수 없구나. 보송보송한 솜털에서 나는 냄새도, 뒤뚱거리며 걷는 걸음에서 느낀 태양 같은 만족감도, 그 시절의 너를 다시 한번 만지고, 비비고, 냄새 맡을 수는, 이제는 없구나. 너는 앞으로도 더 자라고, 계속 크고, 이렇듯 내 앞에 층층이, 켜켜이, 그리고 꾸준히 너의 발자국을 찍으며 나아가겠지. 네 세계가 커지고, 덩달아 내 세계도 커지고, 내 세계에서 너의 존재감을 끝없이 늘려갈수록 나는 그에 한없이 밀려나겠고, 그런데도 원 없이 만족하는 내가 있고, 기쁨의 마차를 타고 따듯한 종소리를 울리며 너를 마중하고 또 언젠가 배웅하는, 그래, 네 앞에 그런 내가 있구나. 너는 없었지만 생겼고, 일부였지만 전부가 되고, 동시에 나는 너의 일부가 되고, 그중에 나는 네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너는 내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 영역을 축소하는 내가 있구나. 그 안에 커졌지만 작아지고 헛헛하지만 단단해진 네가 있구나. 이상하다. 네가 자라기 전 내게 육아란 내가 너를 키우는 일이었는데, 내가 자라고 난 후에 돌아본 육아는 네가 나를 키울 수 있도록 내가 곁에서 조금 도울 뿐인 일이 되었어. 너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너로 인해 내가 더 자라났으니까. 네가 피어난 자리만큼 곧 내 세상이 넓고 찬란하게 부풀었으니까. 아이고 예뻐라. 필요하다면 발꿈치뼈라도 몽땅 빼주고 싶은데 거기 그 하얀 셔츠에 빨간 국물이 웬 대수겠냐. 가서 빨아주거나 새로 사주면 되는걸. 걱정 말고 맛있게만 먹어. 양 볼에 한껏 집어넣고, 눈을 감고 음미하면서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그 미소로, 그 존재로 이 귀한 시간을 온통 장식해주렴.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다. 장마가 끝난 다음 날, 어느 때보다 하늘이 맑다. 밤바다처럼 까만 하늘에 하얀 구름은 파도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노란 달은 바구니처럼 더 천천히 떠밀려간다. 뽀얀 달무리를 별 사이에 촘촘히 남기면서. 동이 틀 무렵에야 푸른 산 너머로 달은 얼굴을 박는다. 마치 너처럼, 내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처럼. 그리고 사라진다. 내내 흘리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갛게 사라진다. 좀 더 보고 싶어도 달은 온 길을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내게서 멀리 나아가기만 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여정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너도 그러하겠지. 알던 너는 곧 다른 너로, 그리고 마치 새로운 네가 되어 계속 자라나듯이.

  산 너머로 사라지는 달을 보며 네가 보고 싶었다. 그래, 온 길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안다. 이제 와 그걸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은 오직 하나, 이만치 왔던 길처럼 나머지 그 여로에서도 아프지 마라. 부디 건강해라. 혹여나, 만약, 살면서 어딘가 어쩔 수 없이 아파야 한다면, 그럼 내가 떼어줄 수 있는 곳만 아파라.

  나는 너의 세 번째 손을 잡고 있는 사람.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쥔 부모 외에 네가 맘껏 쥘 수 있는 또 다른 손이자, 살다가 한 손이 부러지고 다른 한 손에 힘이 빠져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질 수 있는 마지막 손이니까. 그것만 잊지 말기를.

  나 여기 있어. 나 여기야. 소란한 아침, 들뜬 공기에 나의 목소리만 이명처럼 잔잔히.




 - 문학 수 2023년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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