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매]
태반이 즐거운 가운데 약간의 불편함이 끼어드는 기분은 참 묘하다. 특히나 즐거움의 원인은 명확한 반면 불편함의 연유를 모를 때는 더더욱 그렇다. 마치 이번 여행처럼 말이다. 나는 낯선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내내 행복했음에도 알 수 없는 찜찜함도 함께 느끼고는 했다. 주로 한낮 공원에 여유롭게 앉아 와인을 즐기는 현지인 곁을 지나갔을 때 그랬고, 혹은 역 앞에서 입맞춤으로 상대를 배웅하는 어느 연인을 봤을 때도 그러했다.
나는 지금 다른 나라 기차역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다. 30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에 문득,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긴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 계단에 다다른 작은 체구의 여행자는 힘든 기색으로 커다란 캐리어를 들어올린다. 그 모습에 내 다리가 움찔 떨렸다. 고민으로 엉거주춤하는 사이, 어디선가 커다란 배낭을 멘 여행자가 불쑥 나타나 캐리어를 잡는다. 둘은 한두 마디 나누며 계단을 오르더니 내 근처에서 서로 손을 흔들고는 각자 방향으로 흩어진다. 서로 초면인 것이 분명하다. 그 모습에 잠시 잊고 있던 불편함이 다시 가슴을 채웠다. 한국에서 나는 기차역 계단에서 모르는 이의 캐리어를 대신 들어준 적이 없다. 간혹 비켜주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지하철 시간에 쫓겨 계단까지 내몰린 유모차에는 고민 없이 손이 갔지만 여행 가방만은 그러지 않았다.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으니 눈에 띄지 않았다는 쪽이 더 정확하겠다. 주로 언제 이런 감각을 느꼈는지 나는 안다. 마치 재채기 전에 간질간질한 상태처럼, 무엇인가를 깨닫기 직전에는 블록이 어긋난 자리에 들어간 것처럼 마음이 불만족스러움을. 나는 근처를 돌아보려던 걸음을 돌려 계단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 여행자가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온다. 다른 여행자가 선뜻 따라 붙어서 대신 들어준다. 계단 위에서 고맙다는 말에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갈 길을 간다. 어느 여행자가 캐리어를 들고 또 올라온다. 다른 여행자가 대신 들어주려고 한다. 여행자는 웃으며 괜찮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다른 여행자는 역시 별일 아니라는 듯 끄덕이고 먼저 올라간다. 내 곁을 지나가는 얼굴은 이상하게도 불쾌한 표정이 아니다. 거절한 여행자 역시 으스대는 얼굴이 아니다. 30분 동안 그런 모습들을 지켜봤다. 캐리어를 대신 들고, 나눠 들고, 스스로 드는 면면을 살피는 내내 이상하다. 도움을 주는데 왜 으스대지 않지? 도움을 받는데 왜 불편해하지 않지? 거절을 당했는데 왜 불쾌해하지 않지? 거절을 했는데 왜 뻐기지 않지? 나였다면 도와주고 싶어도 오지랖일까, 주변에서 쳐다볼까, 수작 부린다고 오해할까, 방금도 이런 걱정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엉덩이만 들썩거렸는데. 상대가 거절하면 마음이 상할 테고 호의를 곡해한다면 기분이 나쁠 텐데. 여기 여행 온 나와, 마찬가지로 여기 여행 온 저들은 뭐가 다른 걸까.
30분쯤 ‘여행자의 계단’을 지켜보던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간다. 그리고 마침 계단을 오르려던 여행자의 캐리어를 잡는다. 불쑥 등장한 덩치와 손에 잠시 놀란 듯했지만 상대는 금세 웃는다. 그리고 고맙다고 한다. 그게 '땡큐'였는지, '메르시 보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순간 안개가 말끔히 개는 기분이다. 계단을 올라 가벼운 여행 인사말로 상대를 배웅하고 다시 벤치에 앉고 나서야 지난 며칠 동안 교묘하게 괴롭히던 불편함이 문득 사라져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눈치를 보며 살았구나.
아니라고 생각했음에도 사람들 시선에 많이 붙잡혀 있었나 보다.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의지도 자유인데. 기존의 악습, 주변의 눈치, 사회의 습관처럼 자신이 그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러고 있는 타인을 직간접적으로 공격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한 거구나.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다가가 도와줄까 묻는 행동이 부당한 피해일 리가 없다. 그럼 그건 자유다. 도움이 필요해서 받아들이거나, 필요 없어서 거절하는 행동도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럼 어느 응답도 자유일 것이다. '수락이든 거절이든 응답하는 일'이 권유받은 입장에서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는 의무인 것처럼. 반면 거절했음에도 계속 권하거나, 거절당했다고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는 행동은 부당한 피해니 자유가 아니다. '거절을 수긍하고 물러나는 일'이 권한 입장에서 상대 자유를 존중하는 의무인 것처럼. 그렇게 권유와 수락, 거절과 응답이 모두 나란하다면 이 일련의 과정은 각자의 자유와 상대의 자유에 대한 의무만 오롯이 마주하는 장소다. 그런 자리에 타인의 비난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여기 이 공간에 두 사람이 있다. 힘이 필요한 일에 힘이 부족한 이와 남는 이가 있다. 그렇다면 한쪽이 시혜를 내린다는 생각 없이, 큰 은혜와 민폐 없이, 과한 감사와 생색 없이, 마치 삼투압 하듯 힘은 이동할 수 있다. 이 섭리는 이상하지 않고, 대단하지도 않다. 빙판에서 미끄러지려는 이를 잡아채거나 사람 가득한 엘리베이터에서 층수를 대신 눌러주는 감각과 유사하다. 건장하고 체력이 넘치는 나도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에게 다른 종류의 힘으로 도움 받듯이 말이다. 허나 이런 당연한 일이 마치 간혹 있는 대단한 일처럼 된다면 그 사회는 어딘가 구멍이 나서 물이 새고 있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는 힘임에도 다른 걱정으로 인해 망설이게 된다면 함께 사는 타인과 편히 부대끼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남은 길은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에게 매몰되는 길뿐일 것이다.
그 후 지금까지 역에서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는 이가 보이면 다가가서 대뜸 손잡이부터 잡는다. 나는 지금 여행자도 아니고 여기가 그 ‘여행자의 계단’이 아닌데도 대부분 고맙다고 말한다. 오지랖일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매번 부드러운 미소여서 어느새 모든 계단은 여행자의 계단이 된다. 물론 간혹 괜찮다며 거절당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는 스스로를 보며 나의 계단이 아직은 온전하지 않구나 싶다가도, 이 역시 즐거운 과정일 테니 결국 웃게 된다.
2008.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