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매]
1. 나는 언제부터 스포츠를 혐오하게 됐더라.
스무 살 이전에는 뛰어 다니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학교가 끝나면 도장에서 겨루기를 하거나 혹은 자전거를 타고 한강이 이어지는 한 어디까지 달려갔고, 학원이 끝나면 텅 빈 축구장에서 친구들과 3대3으로 축구를 하거나 혹은 지쳐서 신물이 올라올 때까지 혼자 뛰고는 했다. 몸 안에서 기운과 열기가 끝없이 솟는 느낌이라 채 발산하지 않으면 잠을 설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하루가 나름 단조로웠다.학교-끝나면 뛴다-학원-끝나면 뛴다-씻고 책을 읽는다-잠. 초, 중,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내 하루는 온통 이것뿐이었다. 책을 읽는 시간과 뛰는 시간. 정과 동의 균형과 조화.
2. 그러다 열아홉이 넘은 어느 날부터 몇 년 전까지, 나는 스포츠를 혐오하며 살았다. 조기 축구를 하는 사람이 해외 축구를 보는 것이나, 골프 라운딩을 나가는 사람이 LPGA를 챙겨 보는 것이나, 테니스 동호회에 속한 사람이 국제 경기를 챙겨 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만 스스로 하지 않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며, 화를 내고 눈을 못 떼어서 주변에 피해까지 끼치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경기 보러 가야 해서 투표하러 가지 못했다는 이들을 보며 더욱 의아했다. 그러다 보니 변변한 응원팀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당시에는 누군가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하는 것과 보는 것 중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먼저 묻었다. 둘 다 좋아한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답하며 ‘이 사람은 그냥 스포츠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보는 것만 좋아한다고 하면 똑같이 ‘그렇구나’ 하고 답했지만 속으로 조금은 비웃었다.
3. 나는 여전히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의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둘 중 그나마 나은 것은 차라리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골프, 테니스, 당구, 심지어 바둑, 포커 등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비록 이스포츠지만 나 역시 어느 순간 응원팀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저런 생각이 없어졌다. 그동안 내가 너무 편협하게 생각했구나, 나의 안 좋은 기억과 노이로제 때문에 타인의 열정과 자유를 멋대로 매도했구나, 하고 거듭 반성하게 됐다. 여전히 경기장을 가야 해서 투표를 안 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사람은 직접 만나는 일은 살면서 잦지는 않으니까.
4. 그러고 보니, 내가 어쩌다 이스포츠 경기를 챙겨보게 됐더라.
시작은 어느 명절이었다. 큰집, 장남, 장손. 언제나 명절의 우리 집은 어른도 애들도 많았다. 그런 복작거리는 집에서 애들을 데리고 피난하던 곳은 피씨방이었고. 그러다 어느 해부턴가, 매년 피씨방에서 전통민속놀이를 했었는데 그 해에는 애들이 별로 안 내키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나와 적게는 다섯, 크게는 열댓 살씩 차이가 나니까 하는 게임이 달라서였겠지. 서른이 넘고 나서는 거의 게임을 하지 않았던 나는 할 수 있는 게임이 민속놀이뿐이었지만 아이들은 다른 게임을 한창 즐길 때였다. 나 하나에게 다 맞추라고 할 수 없지. 차라리 내가 게임을 배우는 게 낫지. 요즘 게임을 안 하는 것뿐이지, 예전에 즐기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게임 자체를 못했던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서른초반에 난데없이 처음 해보는 게임의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해 명절에는 애들에게 신나게 얻어 터졌고. 오랜 만에 게임을 했더니 느낌이 다르더라. 투사체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며 머리는 ‘아 저걸 피하고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어어… 어?’ 하다가 그대로 얻어맞는 느낌이 참 신선했다.
5. 앞서 말한 저 게임은 조금 하다 말았다. 어려운 만큼 재밌는 요소도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게임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모 안부를 물어오는 짐승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성격 상 앞담화에는 웃어도 뒷담화에는 발광하는 사람이라 화면 너머에서 건너오는 욕설을 참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지금 내게 욕을 하는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스트레스였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나나 싶을 때쯤 우연찮게 그 게임과 관련된 프로게이머를 TV에서 보게 됐다. 내가 이 게임을 하기 전부터 이름을 알 만큼 아주 유명한 이였다. 방송으로 본 잠시였지만 그의 말투, 눈빛, 표정과 자세, 그리고 내용을 듣던 나는 불쑥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그때 알았다. 모든 스포츠가 경기가 재밌기 때문에만 입문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어느 선수가, 나아가 어떤 사람 자체가 좋아서 그가 하는 영역 자체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구나. 그는 어리지만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그 이전에 뛰어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멋진 신념을 가지고 꾸준함으로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는 중인 말 그대로 ‘프로’였다. 그를 오래 보지도 않고 오래 알지도 못했지만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수록 나는 그 선수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선수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이스포츠의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직접 하지는 않지만 보는 것을 좋아하는’ 스포츠팬이 되었다. 이전에 내가 그리 혐오하고 비웃었던 그런 사람이.
6. 갑자기 이 이야기가 왜 나오게 되었을까.
며칠 전, 국제 결승전에서 나는 화면을 통해 그 선수를 보고 있었다. 그는 17년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결승전에서 아깝게 졌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국제 경기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많은 커리어와 비교할 수 없는 경력을 쌓은 선수가, 개인적으로 구설수도 논란도 없이 10년째 자신의 일을 매진하는 중인 대단한 선수가, 같이 데뷔한 선수들이 이미 은퇴하고 사라진 지금에도 어떤 노력을 했는지 여전히 세계 최정상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 선수가, 단지 어린 나이에 많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모자라고 불쌍한 이들에게 온갖 비방과 욕설과 매도를 당하는 것을 몇 년 동안 지켜보면서, 나는 내가 이렇게 이 스포츠에, 나아가 이 선수에게 몰입할지 몰랐다. 그가 다시 최고의 자리에서 우승컵을 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며, ‘내 여정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라며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입증하는 환한 그 미소가 보고 싶었다. 4회 우승이고 역사적 기록이고 나발이고 솔직히 모르겠고, 필요 없고, 나는 그냥 그 선수의 그 미소가 보고 싶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구설수 없이 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이 하지 못하는 일이기에 가치가 있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은 응당 마땅한 보답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이로서, 나는 그가 우승하고 웃기를 바랐다. 작년에 아깝게 이루지 못했지만 올해는 꼭 이룰 것만 같았다.
근데 졌다. 진 것은… 뭐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상대가 잘했으니까. 상대가 부당한 방식으로 우리의 승리를 훔쳐간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단지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뒤흔든 것은, 끝난 직후 그의 모습이었다. 패배가 결정된 순간 그 선수는 가장 먼저 자신 좌우로 앉은 네 명의 동료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중 한 명은 양 손을 바르르 떨면서 정말 서럽게 울고 있었고. 자신보다 여섯 살에서 여덟 살이 어린 동생들의 모습을 본 순간 그가 정면을 바라보며 지은 그 표정이 내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본인도 이제 고작 스물일곱인데, 그 업계에서는 노장이고 베테랑이지만 밖에서 보면 아직 어린 나이인데, 본인도 속상하고 아찔할 텐데, 주변 동생들부터 확인한 후 눈물을 참고 머리를 긁고 마른 손마디를 애써 매만지는 모습이 슬펐다. 대신 슬플 수 없지만 마치 그러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지금 내가 아무리 시청자로서 속상해봤자 본인들 만큼일 수가 없고, 내가 아무리 팬으로서 아쉬워봤자 당사자들 만큼일 수가 없는데 어찌 내가 그 어린 선수들에게 아쉬운 소리 한 토막이라도 할 수 있을까. 지능이 모자라 공감능력도 부족하지 않은 이상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속에서 여러 감정이 휘돌지언정 ‘애들아 고생했다’, ‘고생 많았다 너희가 최선을 다한 거 내가 봤다’ 그 말 밖에 하지 못했다. ‘다음에 잘 하자 응원한다’, ‘속상하겠지만 너무 무너지지 마라’ 그런 말만.
만약 상대가 다른 나라 팀이었으면 그들을 미워하며 이 마음을 좀 달랠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상대 팀도 우리나라 팀이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와 동창인 선수도, 그 팀이 어려울 때 내내 팀을 지키며 버텨온 선수도 전부 호감 가는 선수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축하한다 너희 노력해온 것도 다 봤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7. 나는 내가 혐오하던 스포츠에 이렇게 몰입할 줄 몰랐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고, 후유증이 남을 만큼 누군가를 열심히 응원할 줄도 몰랐다.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꼬박꼬박 새벽에 일어나고, 심박수 120을 넘나들도록 주먹을 쥐어짜고, 이기고 나서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를 줄도 몰랐다. 각자의 열정은 선 밖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법인데, 내 열정은 존중 받기를 원하면서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열정은 그간 얼마나 매도해왔던지. 그것을 깨닫고 나니 지금 이쪽을 보며 ‘스포츠도 아니고 고작 이스포츠’라고 매도하는 그들이 한 편으로는 이해갔다. 내가 이것을 깨닫기 전에는 모자란 인간들이었는데, 깨닫고 나니 욕하는 그들 역시 그냥 모지리가 아니라 단지 ‘예전의 나 같은 사람들’이 됐다.
8.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이 허하고 속상하다. 그 선수가 우승한다고 나에게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 삶에 이점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그 선수가 우승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의 성공은 분명 내게 직접적인 이득은 없겠지만 내게, 나아가 내가 바라보는 내 삶에 간접적인 영향을 있을 거라 여긴다.
9. 어쩌면 이것이 스포츠의 존재 의의 아닐까. 이것만을 위해 스포츠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빼고는 스포츠가 무엇인지 논할 수 없는, 그런 것.
2022. 11. 09.
10. 얼마 전 메시가 우승컵을 드는 순간, 많은 사람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함께 울고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아마 예전에 나였다면 그들이 무슨 마음인지 절대 이해하지 못했고,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제는 충분히 공감된다. 월드컵은 한 경기도 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간다. 내 선수가 우승했다면 내 얼굴도 저들과 같았을 테니.
편견에서 벗어나 편협함을 걷어낼수록 내가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이리도 늘어나는구나 싶었다.
11.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2022.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