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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거나 묻은 관계

[27매]

by 이한얼






관계 중에는 단지 오래 되었을 뿐, ‘묻은 관계’가 있다. 서로 그만 보자고 합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연락처 목록에 이름이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하지 않게 된 그런 관계 말이다.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지만 하기 전부터 이미 안다. 이 연락을 받은 상대가 당황할 것임을. 선뜻 받기를 망설일 것임을. 마음 같아서는 안 받고 싶지만 쉬이 그럴 수 없고, 그래서 연락을 받으면 실제 마음보다 훨씬 반가운 척 할 것임을. 그러며 동시에 여러 가정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임을 안다. 결혼, 영업, 급전 등등 무엇이 되었든 그 목적이 그리 반갑지 않을 것도, 만약 목적이 없으면 없는 대로 왠지 찜찜할 것도,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정상인답게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지만 실제 만나서 밥을 먹는 일은 아마 없을 것도, 연락을 받은 상대도 연락을 한 나도 서로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살면서 세 가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서로 등 들리고 연락을 끊은 ‘죽은 관계’, 종종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얼굴을 보는 ‘산 관계’, 그리고 이 ‘묻은 관계’까지. 내가 살면서 만난 모든 이는 저 세 부류 중 하나에 넣을 수 있다. 물론 고정은 아니다. 얼굴을 보다가 그만 볼 수도 있고, 안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다. 연락을 하지 않다가 어떤 이유로 다시 연락이 왕성하게 닿기도 하고, 인연이 끝났다 여겼다가도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평균적으로는 늘 ‘산 관계’를 유지할 만한 대상은 많지 않다. 성격 문제기도 하고, 서로의 바쁨이 이유이기도 하다. 반대로 ‘죽은 관계’조차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와 큰 갈등이 생겨서 절연을 결심하고 통보하는 일 또한 잦지 않고, 또 잦아서도 안 되니까. 그러니 대부분의 관계는 저 ‘묻은 관계’에 속하게 된다. 묻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금세 다시 살릴 수 있는지, 아니면 깊이 묻은 지 오래 지나서 이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지,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어제 근 1년 만에 군대 지인들을 만났다. 한 지인은 작년에 퇴사하고 몇 달쯤 쉬고 있을 때 꽤 자주 봤지만 재취업 이후 다시 몇 달은 보지 못했다. 다른 지인은 작년에 만난 후로 종종 통화와 카톡만 했을 뿐 1년 만에 얼굴을 봤다. 장소와 시간은 보통 함께 사는 이가 많을수록 우선권을 가진다. 혼자 사는 나보다 연인과 둘이 사는 지인이, 둘이 사는 지인보다 부인과 아이와 사는 다른 지인에게 맞춘다. 오늘도 아이를 키우는 유부남이 사는 동네에서 만났다. 날짜도 시간도 최대한 그 지인에게 맞췄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대로 그 몇 시간을 쪼개서 나와 준 애아빠에게 더 고맙지. 천호동 어느 훠궈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학교, 직장, 군대, 종교, 여행 등 한시적으로 같은 집단에 속해있을 때 친해졌다가 시간이 지나 이제 서로 겹치는 부분이 사라진 모든 관계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만나서 예전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지 않으면 관계가 오래 간다>라는 법칙이다. 우리가 쌓은 추억의 대부분은 예전 함께 소속되어 있을 때의 일이다. 군생활 중에 있었던 일. 내무실에서 웃기고 화나는 기억이거나, 훈련 중에 억울하고 힘들었던 사건이거나, 공통된 지인에 대한 이야기 등등. 그런 추억은 몇 번을 다시 반복해도 쉽게 질리지 않고 오래 재밌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도 지금껏 몇 번이나 했던 이야기를 마치 처음인 것처럼 하고 여전히 같은 부분에서 웃으니까. 다만 그 이야기 중간 중간에 다른 이야기, 요즘 경험을 공유하거나 새로 쌓는 추억이 없으면 관계는 끝의 정해진 철로를 달리는 기차가 된다. 추억이 워낙 깊고 다양하여 죽을 때까지 그 철로가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다만 분명한 것은 실시간으로 새 철길을 까는 관계는 아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학교 동창이든, 직장에서 사적으로 친해진 이든, 군대 선후임이든, 여행지에서 만났던 이든, 우리가 빛나는 시간을 공유했고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가졌기에 함께 하지 않게 됐어도 계속 얼굴을 봤겠지. 그렇게 만나면 예전 추억을 말할 때는 다들 떠들썩하다. 마치 인디언 막대기를 쥐고 기다리는 것처럼, 얼른 말하고 싶어서 상대의 말이 끝내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추억 여행이 끝나고 요즘 어찌 지내는지, 서로 생활은 어떤지, 취미가 무엇인지, 이렇게 현실 쪽으로 돌아왔을 때도 대화가 여전히 활발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5년이든 10년이든 결국 서서히 안 보게 됐다. 연락처에는 그대로 남아있고, 우리가 나눈 추억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유가 없다면 연락할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반면 요즘 어찌 지내는지, 무슨 취미가 있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 뭐가 좋고 뭐가 나쁜 중인지, 현실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하다가 중간 중간 예전 추억이 불쑥 떠올라 다 같이 와하하 웃는 관계라면, 우리는 점점 ‘묵은 관계’가 된다. 오래됐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묻히지 않고 여물어가는 중이라는 뜻이다. 최소한 우리가 예전 추억 말고는 할 말이 없어서, 점점 서로의 지금에 관심이 떨어져서, 이제 결혼식을 치렀으니 더 이상 볼일이 없어서 연락처 목록에만 있을 뿐 연락을 안 하게 되는 ‘묻은 관계’는 되지 않는다. ‘묵은 관계’와 ‘묻은 관계’를 나누는 결정적인 요인은 단 하나, ‘상대의 현재가 궁금한지’다. 그리고 상대의 현재를 궁금해하게 만드동기도 단 하나, ‘지금 상대가 그때와 얼마나 같은지’다. 만약 시간의 흐름과 나이 차이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만 있을 뿐 상대의 본성과 내실 자체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나는 당연히도 상대의 현재가 궁금해진다. 그럴 수밖에. 내가 예전에 상대를 보며 느꼈던 매력과 친해지고 싶어졌던 이유가 지금 상대에게도 고스란히 남아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매력적이어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처음 만나는 것보다 낫다. 노력과 시간, 그리고 운이 따라줘야 이제부터 쌓을 수 있는 신뢰와 추억을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어제 만난 이 군대 지인들이 고맙고 좋다. 둘 다 후임임에도 전역 후 잊지 않고 나를 찾아준 것도 고맙고,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몇 번이나 찾아와서 좋다. 나는 관계에 그리 친절하고 매끄러운 사람이 아닌데도, 그에 충분히 맞춰줄 만큼 마음이 넉넉한 이들이라 감사하다. 우리는 여전히 군대 시절 이야기를 하며 빵빵 터진다. 다만 그 이야기보다 먼저 현재 어찌 사는지, 하는 일은 잘 되는지, 애를 키우고 여자친구를 만나는 과정이 어떤지, 이번에 다녀온 출장과 여행은 어땠는지, 간김에 작은 선물은 뭐하러 샀는지, 영화가 어떻고 드라마가 어떻고 세상살이가 어떻다며 내내 떠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단지 자연스레 소멸되게 나두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가끔 기름칠을 하듯 의무적으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편하다. 맛있는 것을 먹는 도중에 다른 맛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앞과 곁에 앉은 이에게 먹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따듯한 이들이라 고맙다. 하긴, 고작 스물이나 스물하나밖에 안 된 어린애가 군대라는 별세계에 끌려와 강압적인 환경에 갇혀서 욕먹고 억지로 일을 하면서도, 공식적으로 무기와 차량보다 덜 중요한 취급을 받는 공간에서조차 좋은 인간성을 보인 이들이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만나면 응당 더 드높고 말끔한 영혼일 수밖에 없지.


오늘 훠궈에 새우와 한치를 넣다가 불쑥 ‘주꾸미 샤브샤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에 한 녀석이 ‘4월에서 5철 초까지가 제철이라, 맛있을 때 한얼이한테 꼭 먹여주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그 순간 마음이 따듯해졌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주꾸미 샤브샤브를 이미 맛있게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각자 가정이 있고 사는 일에 치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또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전역 직후 종종 먹으러 갔던 신림 백순대가 되었든, 아니면 말이 나왔던 천호 주꾸미 샤브샤브가 되었든, 아니면 차를 조금 타고 나가 평창 송어회를 먹든. 누군가 아주 멀리 이사를 가는 등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18년 전 모두가 적인 것만 같았던 좁은 내무실에서 맺어진 이 인연은 앞으로도 오래 갈 것 같다. 자신이 힘들고 벅찬 순간임에도 남에게 기운과 위로를 주던 이들이니 최소한 자기 사정으로 인해 관계없는 남에게 패악질을 부리는 얕고 옹졸한 영혼은 아니었다는 뜻이고, 그 점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영혼을 좋아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이쯤 되면 만나자마자 서로의 밑바닥부터 봤음에도 오래 이어지는 관계는 인생에 드물고 귀하다는 것을 깨달을 나쎄기도 하고.






2025. 0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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