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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당한 세계의 결말 1

: 한 살, 열다섯, 스물여섯 [20매]

by 이한얼






-1부- 한 살


인생 첫 기억은, 한 살 때다. 물론 한국 나이로는 세 살이었다. 그 기억 안에 담긴 것은 아주 짧은, 마치 열화 된 영화 필름 같은 몇 장면과 감정뿐이다.


예전 할아버지 집은 기역자의 툇마루와 작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한옥은 아니었다. 그저 한옥의 구조를 가진 나무집에 더 가까웠다. 툇마루는 마당으로부터 1미터쯤 혹은 그 이상 되어서, 중간에 디딤돌 역할을 하는 나무 계단이 필요할 만큼 높았다. 그래서 내가 툇마루에서 놀 때면 반드시 주변에 다른 어른이 한 명은 있어야 했다. 두 돌도 안 되어서 이제 뒤뚱뒤뚱 걷는 아이 혼자 두기에는 너무 높았으니까. 폭도 1미터쯤, 그리 넓지 않아서 자칫하면 마당으로 추락(당시 내 키보다 높은 툇마루에서는 그리 틀리지 않은 표현이다)할 수 있었으니까.


툇마루에서 안방과 작은방 사이 기둥에는 온도계가 매달려있었다. 예전에는 흔했던 수은 온도계였다. 수은이 들어있는 몸체가 유리로 되어있어서 지금 온도계에 비하면 취급하기가 퍽 까다로웠다. 실수로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쉽게 깨지니까. 그때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은 유리 조각뿐만 아니라 수은도 있었으니. 그 온도계는 하필 내가 바로 섰을 때 딱 내 이마쯤에 걸려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계속 거기 걸려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후에도 그것을 내 손이 닿지 않은 더 위로 옮겨 달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셨겠지. 지금까지 그 온도계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얼마 전까지는 내 활동 반경 역시 끝방에서 엎드려서 기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으니.


아마 꽤 따듯한 봄철이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정확하지 않지만, 햇살이 따듯하고 나비가 날아다녔다고 했으니까. 당시 나는 툇마루에서 어머니나 할머니의 품에 안겨 마당에 심어놓은 꽃 위로 날아다니는 나비 구경을 좋아했다고 했다. (이 부분은 전해들었다) 그날도 아마 나비 구경을 했을 테지. 때로는 좁은 툇마루를 겅중겅중 뛰듯이 걷기도 했을 테고. 그러다 문득, 낯선 물건이 눈높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 매달려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안에 담긴 (정확히 무슨 색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액체도 함께 빛을 받아 영롱해 보였다. 당연히 손이 가지. 그러자 할머니가 부리나케 말리셨다. 왜? 나는 장남의 큰아들인 장손이니, 사실상 당시 그 집에 살면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나를 보면 항상 활짝 웃고 계셨고, 내가 울면서 때를 쓰기도 전에 칭얼거리거나 꼬물거리기만 해도 아마 원하는 것은 대부분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수은 온도계를 만지지 못하게 하는 할머니에게 붙잡혀 막 소리 높여 울고 몸부림쳤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나를 안아 들어 온도계로부터 멀리 떨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한 듯하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그때부터 툇마루에 앉은 (아마 셋쯤 될 듯한) 몇 사람의 등을 안방 쪽으로 떠밀었다. 그런 나를 보며 할아버지가 막 크게 웃으신 기억이 있다. 이제 와서 보면 ‘요놈 봐라’라는 의미셨겠지. 이후 서른이 될 때까지 할아버지께서 그리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달리 기억이 없다. 아무튼 당시 나는 사람들을 전부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 혼자만 툇마루에 남으면 저 온도계를 맘껏 물고 빨고 할 수 있으리라 여겼나 보다. 두 돌도 안 된 것이 아주 앙큼하기도 하지. 벌써부터 싹수가 노랗다 못해 뇌랗다. 어쨌든 누군가의 등을 밀며 마음대로 안 밀린다고 우는 나와,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고 웃는 어른들 간에 택도 없는 실랑이가 잠시 벌어졌다. 그러다 누군가 그리 제안했다고 들었다. 어디 어쩌나 한 번 보자고. 정말 다 들어가지 말고, 각자 부엌, 끝방, 안방 문 뒤에 숨어서 언제든 바로 달려 나갈 수 있게 한 채로 어떻게 하나 지켜보자고. 아마 그런 제안은 할아버지 말고는 못하셨겠지. 그래서 아무리 밀어도 꿈쩍 않던 등이 갑자기 편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안방으로 밀어붙이는 동안 어느새 할아버지와 어머니도 눈앞에서 사라져 계셨다. 다들 어디 숨었을 테지만 당시 나는 ‘성공했다!’라는 달성감이 있었다. 아직도 그 감각이 떠오른다. 어찌 보면 내 첫 성취감은 아닐지 몰라도, 내가 기억하는 첫 성취감일 것이다. ‘가족들을 모두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라고.


그리고 다음 기억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화들짝 놀란 감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 그리고 깜짝 놀라서, 게다가 혼날까 봐 먼저 ‘으앙’하고 울음을 터트린 기억. 그리고 내가 울기도 전에 이미 내 팔을 잡고 있던 할아버지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의 느낌. 딱 그 정도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러니 이 공백 부분은 전혀 들은 이야기다. 가족을 모두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고 착각한 나는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바로 온도계 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리품을 얻는 듯 두 손으로 온도계를 쥐고 번쩍 들어 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마구 흔들었다고 했다. (이 부분을 추정해 보면, 아마 움직임에 따라 안에 담긴 영롱한 액체가 흔들리는 것이 좋아서였겠지. 더 세게 흔들면 액체도 더 흔들릴 테니까. 자신의 손아귀 힘은 생각도 못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당연히 깃털 같은 아귀힘에 잡혀있던 온도계는 내 손을 벗어나 마당으로 날아갔다. (아마 이쯤 할아버지는 벌써 내 뒷덜미를 잡고 계셨을 것이다)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마당 사방이 햇빛을 받은 깨진 유리로 산산한 장면은 기억이 난다. 놀라기도 했지만 혼날까 봐 나는 먼저 ‘와앙’ 울면서 선수를 쳤다. 어느새 나온 할머니와 어머니도 나를 보고 막 웃으셨다. 나는 그대로 할머니 품에 안겨서 히끅거렸다. 아마 ‘이 일로 혼날까 안 혼날까’ 고민하듯 눈을 데룩데룩 굴리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겠지. 앙큼한 것.


정확히 기억나는 장면은 나비가 날아다니는 마당, 처음 본 온도계, 누군가 온도계를 만지지 못하게 나를 떼어놓은 것, 내가 가족들 등을 방으로 미는 것, 온도계를 잡아 흔든 것, 그리고 마당에서 깨진 유리들이 반짝반짝거리던 것, 할아버지의 억센 손 느낌, 누군가에게 안겨서 혼날까 봐 두려웠던 것, 이렇게만 남아있다. 나머지는 예전에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들었던 기억, 그러고도 중간중간 빈 곳은 내 성격과 행동을 기반으로 한 추정과 보완이다.


이 기억이 내게 의미가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인생 첫 기억이라는 점. 이다음 기억은 세 살, 그다음 기억은 다섯 살, 이렇게 1-2년 단위로 건너뛰는 기억의 첫 장면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 당시 내게 심겼던 (아마 심겼으리라 추정하는) 어떤 정서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내 편이구나’라는, 온 세상이 나를 긍정하고 보듬어주는 듯한 그 충만함과 만족감, 내 눈에 띄는 모든 것이 내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고 내 머리와 등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안도감과 안정감. 이후 내가 쌓는 모든 ‘정서의 기반’, <정서적 초석>을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울면서 처음 가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나는 긍정받고 있구나. 내가 존재함을 누군가 기뻐하는구나. 모든 인지적 생물의 첫 근거가 되어야 하는 그 정서적 발판을 나는 한 살이던 이 때 얻었다고 여긴다.


그 덕인지 이후 나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난다. 사랑받은 만큼, 이 모든 애정과 관심을 온몸으로 흡수한 만큼 곧고 긍정적으로 세계를 무럭무럭 키워간다. 물론 여섯 살(한국 나이로는 여덟 살)에 입학한 초등학교에서 촌지를 받지 못(해서 그랬다고 추정)한 50대 교사의 무자비한 폭력을 뒤집어쓰고는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이가 내게 친절한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되지만, 그래서 이후 초등학교라는 공간을 떠나기 전까지는 아주 작은 다툼도 내가 받은 것과 똑같은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래도 결정적으로 삐뚤어지지는 않았다. 폭력의 현장 당시 두 은인의 도움도 물론 있었으나, 무엇보다 그간 내게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애정과 관심을 쏟아온 모든 이들의 역사는 고작 뇟보(:사람됨이 천하고 더러운 사람) 한둘의 패악질로 지워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중학교에 올라간 순간, 정확히는 초등학교를 떠난 순간부터 나는 언제 폭력적이었냐는 듯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예전처럼 밝게 자라났다.






2025.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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