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매]
유명해진다는 것은 많은 이가 내 존재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나와 직접 만나 알게 된 이뿐만 아니라, 일면식조차 없는 이들까지도. 그리고 그 유명세를 오래 이어가는 것은 나를 응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가 망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역시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내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피해를 보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나의 몰락을 내심 기다린다. 그러다 뭔가 계기가 생기면 그제야 가면을 벗고 속마음을 드러낸다.
누군가가 이유 없이 비난받을 때, 또는 실수한 이가 원래 받아야 하는 정도보다 더 욕을 먹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기술 발전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루한 삶을 화풀이할 대상을 찾다가 어딘가 재판이 열렸음을 듣고는 우르르 몰려갈 뿐이다. 그런 옹졸함과 뇌동함이 자신의 인생을 더욱 비루하게 만들든 말든 관심이 없다. 마치 하루살이처럼 욕망과 충동으로 도파민만을 좇는 삶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럴 때 한없이 나약해진다.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이 똑같은 한 표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비루하게 똑똑한 인간>은 저런 <비루한데 똑똑하지도 않은 인간>을 다루는 데 도가 튼 말종이다. 누군가의 은근한 지원, 사주, 잘못된 정보를 받은 이는 그때부터 더 손 댈 것도 없이 자가발전이 가능해진다. 이곳저곳에 몰려다니며 자신에게 유일하게 넉넉한 것을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한다. 바로 시간과 혐오다. 그들 스스로도 안다. 자신이 똑똑하지 않음을. 그저 비루하게 하루를 낭비하고 있음을. 다만 어쩔 수 없다. 질투와 피해의식에 절여진 뇌는 다른 상호발전적인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그 길은 자신이 서있는 이 길과 달리 너무 번거로이 굽었기 때문이다.
도파민이 원하는 길은 오직 직선뿐이다. 그 뻗댄 노선이 타인을 근거 없이 모욕하는 일이든, 부당한 피해가 아님에도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든, 자신보다 높게 날아오른 이가 어떤 노력으로 그럴 수 있었는지 관심 없이 그저 언제고 할 실수만을 주시하며 뒤쫓는 일이든, 실수를 했든 오해가 있었든 흔들리는 그의 아래에 드글드글 모여서 추락하면 뜯어먹기 위해 입 벌리고 있는 일이든, 진짜든 아니든 입맛에 맞는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일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저 비루하게 똑똑한 이가 그들의 욕망을 살살 건드리고, 근거도 없는 정당성과 당위성의 프레임을 씌워주면 그들 스스로의 충동에 밀려 그 뻗은 길을 달려갈 테니까. 그 끝이 설령 낭떠러지라도 달리는 동안은 자신의 비루함을 잊을 수 있으니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열 개의 손가락이 고르지 못하고 단 하나의 손가락만 키만큼 길게 자란 이들. 그렇게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배양된 이들. 스스로 나올 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탈출을 쉽게 포기한 이들. 점점 도태되어가는 과정을 온몸으로 체감하지만 이제라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더 뭉치기로 결심한 이들. 서로를 쓰다듬고 그러쥐어봤자 어떤 짠맛도 단맛도 없이 그저 쓴 뒷맛만 남는 이들. 스스로 잘못된 길을 걸어왔음을 인정할 용기가 없어서 남을 멍청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이들. 혼자서는 거리에 나서서 자신의 삶이 이러함을 당당하게 밝힐 수 없지만 비슷한 이들끼리 뭉치면 늘 당당했던 것처럼 헛된 용기로 무장하는 이들. 연대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실상은 그저 스스로 오롯한 객체이기를 포기하고 군체로 살아가게 된 안타까운 이들.
그들은 열 손가락 중 유독 하나만 기괴하게 길다. 주로 남을 지적하고 지목하기 위해 내민 검지거나 혹은 모욕하기 위해 들어 올린 중지거나, 또는 비난하기 위해 아래를 향한 엄지기도 하다. 남과 같은 하루를 살지만 고작 한줌뿐인 음식을 먹고도 한 자루나 되는 배설물을 싸지르는 신비한 군체 생물이다. 그러고도 커다란 가치를 쌓아 올리다가 종종 무너트리는 이를 보며 그 사람 때문에 온 세상이 망한 듯 호들갑을 떤다. 허나 이 길가에 흔하게 널려있는 것은 누군가 흙바닥에 넘어지며 일어난 작은 모래먼지가 아니라 그들이 여기저기 푸짐하게 싸놓은 오줌똥뿐이다.
'사람들 이것 좀 봐라! 이 사람이 여기서 넘어지는 바람에 먼지가 날린다! 우리 다 폐병으로 죽게 생겼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보지만, 그 목소리는 뿌직뿌직 배설물을 쥐어짜는 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설득력도, 당위성도, 정당성도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그 배설물 냄새가 싫어서 손으로 코를 막으면 그 손짓이 마치 모래먼지 때문인 줄 알고 자기들끼리 신나한다. 그렇게 누구도 동의하지 않지만 많은 이들에게 지지 받는다고 착각하는, 매일을 그런 짧은 충족감과 긴 허무함으로 채우는 가련한 이들이다.
25. 0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