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 덕후의 중간 리뷰 [19매]
-게임요약-
이 게임의 주 목적인 <무의식의 의식화>란 미지의 무의식을 <검>과 <망토>와 <등불>을 들고 차근차근 탐험하고 <창>과 <방패>의 과정을 통해 지도를 밝히는 일이다.
-들어가기-
로그인은 <의식의 동굴>을 통해 가능하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동굴 모양이고, 출구를 나서면 허공이다. 두 절벽이 서로 마주보고 있고 아래는 세찬 강이 흐르는, 그중 한 절벽의 중간쯤에 출구가 있다. 동굴 출구에 있는 고리에 두 개의 등불 중 하나인 <내관의 등불>을 걸어두고, 난간 없는 절벽 계단을 위태위태하게 올라가면 절벽 위로 하얀 궁륭 지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을 모두 올라 절벽 위에 서면 멀지 않은 곳에 <의식의 사원>이 있다. 여기까지 로그인 과정이다. 엄청 번거롭고 오래 걸린다.
-시작지점-
게임 제목과 같은 이름인 이 <의식의 사원>은 이 내적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물이다. 사방으로 범람하려는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세계를 보호하는 벽이기도 하고, 거기까지 들어간 자의식을 안전하게 지키는 성이기도 한다. 동시에 매번 조금씩 위치를 옮기는 그 자리가 의식과 무의식의 접경지임을 알리는 경계석 역할도 한다. 다만 무의식 바로 곁이기 때문에 거기 머무는 것만으로도 뇌력뿐만 아니라 체력까지 빠르게 소모된다.
2014년에 있었던 <침략 전쟁>의 배경이 곁에 작은 숲과 호수를 끼고 있는 이 <의식의 사원>이었다. 사원이 뚫리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난잡하게 뒤섞이며 안 그래도 어려운 게임 난이도가 한도 없이 올라가게 된다. 사유 체계가 망가지고, 감정 및 충동 억제가 거의 불가능해지고, 성찰과 명상을 진행할 수 없을 만큼 집중력이 사라진다. 집중과 우울은 상호불가분관계라 집중력이 낮아질수록 우울함이 늘어난다. 낮아진 집중과 높아진 우울은 무기력으로 합쳐지고, 오래 묵은 무기력은 무감각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세계의 근간이 되는 세 기둥, <시비>와 <가부>와 <호불호>가 낱낱의 벽돌로 다시 해체된다. 일관된 기준 없이 감정과 충동에 휘둘리는 무감각한 인간. 의식과 무의식이 경계 없이 뒤섞였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 인간 형태. 이때부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인 <나는 산다>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사이에서 게임이 진행되지 않는다. 동굴 출구가 있던 이쪽 절벽과 맞은편 절벽 사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와 <죽고 싶다>의 구름다리 위에서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탄생일을 인생의 기점으로 기준 삼으면 인간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종말일을 인생의 종점으로 기준 잡으면 하루씩 죽어가는 것처럼.
-게임목표-
하여 결국 <의식의 사원>이라는 게임은 이 <의식의 사원>을 무의식의 어디까지 밀어넣느냐가 목표이자 전부인 <Inner-Reality Messive Single Role-Playing Game>, 즉 내면세계 대규모 단독 알피지다. VR과 비슷하지만 가상현실 대신 내면현실로 들어간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아직 미지인 무의식의 영역을 차츰차츰 탐험하고 개발해서 그만큼 의식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 시작할 때는 허허벌판에 놓인 작은 <의식의 사원>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 근처에 숲, 호수, 창고 등등 다른 요소를 추가해 나가며 의식 세계를 진일보시키는 것. 그에 필요한 자원을 무의식 너머에서 꺼내오는 것. 무구를 만들고 능력을 개발하는 것. 시간과 지능이라는 자원을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곳에 분배하는 것 등등. 이런 건설, 전략, 탐험, 육성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의식의 사원>에서는 보통 로그인 후 무의식으로 들어가기 전에 상태를 간단하게 점검하거나, 반대로 무의식에서 도망치듯 튕겨 나와 잠시 숨을 고르면서 '빨리 정리해야 하는 생각'을 짧은 명상을 통해 다듬는 일을 한다. 나머지 길고 섬세한 생각은 주로 동굴 너머에서 이루어진다. 명상은 눈을 감고 하는 명상과 뜨고 하는 명상으로 나누는데, 그중 눈을 감고 앉거나 누워서 하는 좌상이나 와상이 아니라, 눈을 뜨고 앉거나 움직이면서 하는 동상 중에 하는 편이다. 좌상과 와상은 <의식의 사원>에서 치르지만, (눈뜬)좌상과 동상은 완전한 의식 세계에서 치러야 불필요한 체력을 소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소품-
전체적인 게임 난이도는 아주 높다. 무의식의 저편은 맨몸으로 들어가면 소위 ‘3초 컷’이 날 만큼 어렵기에 탐험 과정에 도움을 줄 만한 여러 <무구>가 필요하다. 자원을 가지고 자신만의 <무구>를 만드는 것도 이 게임의 핵심이자 재미다. <무구>란 어떤 방식, 체계, 과정을 한 칸에 짜 넣은 <자동 매크로>나 <수동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나는 현재까지 <성찰(창)>, <명상(방패)>, <사유(검)>, <관조(망토)>, 그리고 <내관(등불)>까지, 이렇게 다섯 개를 만들었다.
<성찰>과 <명상>는 하나의 특정 행위나 단계가 아니라 방식의 전체 형태에 속한다. <성찰>은 무의식을 <내관>, <사유>, <관조>하는 전체 과정인데, 그 모습이 마치 <창>과 닮았다. <명상>은 거기서 얻은 생각을 정리하여 흡수하는 전체 과정이고, 그러는 모습이 마치 <방패>와 닮아있다. 그에 반해 <사유>, <관조>, <내관>은 하나의 방식, 또는 과정을 수행하는 도구에 가깝다. <의식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데 필요하거나, 무의식에서 자원을 추출할 때 있어야 하거나, 또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길에 사용한다.
-진행방식-
<성찰>의 과정
1. <무구>를 챙겨 의식의 동굴로 들어간다.
2. 출구에 <등불> 중 하나인 <내관의 등불>을 걸고 계단을 올라 <의식의 사원>으로 간다.
3. 뇌력과 체력이 되는 만큼 무의식을 탐험하거나 의식 시설을 정비한다.
4. 나와서 <의식의 사원>에서 <명상>를 통해 전리품을 분류한다.
5. 계단을 내려와 <내관의 등불>을 들고 동굴을 통해 다시 의식세계로 나온다.
6. 앉아서 눈을 뜬 채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또는 걸으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다.
7. 그 정돈된 결과물을 종이 위에 글자로 옮겨놓는다.
이렇게 일곱 단계다.
-용어정리-
성찰 :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의식으로 나오는 일곱 단계 과정
명상 : 난잡하게 흩어져 있거나 덕지덕지 부산물이 붙은 생각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일 / 눈을 감고 하는 명상(와상, 좌상)과 눈을 뜨고 하는 명상(좌상, 동상)으로 나눈다
유영 : 무의식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의식의 사원에서 무의식을 구경하는 일
꿈 : 의식의 사원이 아님에도 의식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다른 장소에서 무의식이나 위상이 겹친 다른 세계를 구경하는 일
의식의 사원 : 의식과 무의식의 접경에 위치한 하얀 건물. 전 과정의 단예점
사유 : 무의식에서 생각을 추출할 때 필요한 이성적·합리적 판단 도구, 또는 그러는 과정
관조 : 과다한 생각과 감정에 자아가 휩쓸리지 않고 기준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차분한 심상 상태, 또는 그 과정
내관 : 외적 입력을 끊어내고 내적세계에 집중하는 상태, 또는 그 과정
25. 0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