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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해서 서로 억울한

: 냄새가 가진 그 모호함에 대하여 [18매]

by 이한얼






언제부터인가 나는, 기도하듯 몸을 닦는다. 오늘도 잘 썼다. 내일도 잘 부탁한다, 라는 듯이.


지난 번에 한 번 왔던 손님을 오늘 카페에서 다시 봤다. 물론 자주 왔을 수도 있으나 매일 오는 나는 그날 이후 처음 인지했다. 지난 번과는 반대 방향이기는 해도 역시 바로 옆 자리에 앉더라. 그때부터 미약하게 쉰내가 나기 시작했다. 활짝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상대가 앉은 자리에서 내 쪽으로 넘실넘실 ‘그 냄새’가 넘어왔다. 거품을 충분히 낸 샤워타월로 온몸을 구석구석 세심하게 씻어내지 않으면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날 수밖에 없는, 땀과 피지와 체취가 뒤섞인 쉰내. 그리고 옷을 자주 빨지 않으면 그 쉰내가 섬유 깊숙이 스며들어 나중에는 빨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 삭은내까지. 냄새가 아주 심하지는 않았으나 분명 맡을 정도이기는 했다.


딱 이 정도가 사회에서 자주 만나는 냄새다. 전철이든 버스든, 다중이용업소든 사람이 모인 곳에서. 특정 장소와 목적 하에서는 평소라면 절대 그러지 못할 만큼 타인과 가깝게 붙어있게 되니까. 광장 같은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붙으면 비명부터 나올 일이지만 전철 같은 곳에서는 그렇게 앉아서 한참을 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이런 냄새는 주로 상황에 의해 타인과 밀접하게 접근할 때 주로 맡게 된다.


그럴 때 이정도 옅은 냄새는 다른 의미로 서로 불편하다. 나는 익숙치 않은 냄새라 바로 맡았지만 상대 스스로는 이미 익숙해져서 맡지 못하니까. 사무실에서든 카페에서든 혹은 집에서든, 서로 농틀 만큼 충분히 가깝건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건, 언급하기 꺼려지는 내용이다. 서로를 위해 용기 내 말해도 듣는 입장에서는 불쾌하기만 할 뿐이다. 아니라고 즉답하지는 않지만 수긍하기 어렵다는 표정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상대는 부끄러움과 억울함에 기분이 상하고, 그래서 강한 대꾸가 돌아오면 나도 무안해지고, 그렇게 서로 불편해졌지만 냄새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기막힌 삼각지대가 만들어진다.


냄새라는 것이 참 이렇게 묘하다. 무시하기에는 신경에 거슬리고, 언급하자니 많이 껄끄럽다. 좋게 풀린다 한들 서로 뒷맛이 좋지 않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모여살기에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갈등 중 하나다.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하루에 한두 번 꼴로 맡을 만큼 흔하고, 또 ‘이 정도 이상은 악취야’라는 객관적 기준도 꽤 명확하다. 허나 그런 것에 비해 서로 속시원하게 터놓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주관적 인지 차이가 두드러지는 기묘한 영역이다.


저런 냄새는 분명 악취야(객관적 공감대), 다만 지금 내게서 나는 이 냄새는 그 정도는 아니야(주관적 인지 차이), 라고.


이렇게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와 그로 인한 피해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다른 일과 달리, ‘행위자가 행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피해자의 항변에 의해 오히려 스스로를 피해자라 느끼는’ 일이기 때문에 냄새에 관한 논담은 더욱 다루기 어렵다. 이렇게 피해와 인식이 일치되지 않음에도 사람의 부끄러움과 억울함은 또 효율 좋게 긁어대니, 그래서 봉 감독님도 소재로 쓰지 않으셨나 싶다.


차라리 정도가 아예 심하면 나은 점도 있다. 한 번 강하게 말하면 그 자리는 아니더라도 저녁에 집에 가서 벗어놓은 옷이나마 킁킁 맡아볼 테니까. 그러면 본인도 깨달을 것이다. 애당초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정도로 심하기도 어려우니. 마음이 많이 망가져있거나 정신이 어딘가 완전히 팔려있지 않는 이상 그 전에 스스로 깨닫게 되니까. 유전자 문제로 체취에서 생선 썩는 냄새가 나는 이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한 나라를 통틀어 봐도 극도로 드물고. 그러니 잘 씻고 세탁만 자주 해도 이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면서도 그렇게 나쁜 마음까지는 들지 않는다. <예전 글>에도 적었듯이,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까. 마음이 완전히 망가져있을 때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좌절의 골짜기에서 겨우 기어오르고 나서야 내 온몸과 모든 옷에서 이런 삭은내와 담배쩐내가 뒤섞여 있음을 알게 됐다. 무척 부끄러웠고, 그래서 이후로 신경 쓰며 사는 중이다. ‘일정 기간 이런 냄새를 풍겼던’ 사람이 되는 것은 부끄럽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평소부터 내내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극도로 희박한 유전병이 아니라면, 매일 샤워를 하면 된다. 뜨거운 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손바닥에 비누거품을 적당히 내서 중요부위만 문지른 후에 나머지는 흘러내리는 거품이 씻어줄 것이라 믿는 것도 아니다. 거품 낸 타월로 손에 닿는 곳만 닿는 듯 마는 듯 대충 문지르는 것 또한 아니다. 나도 한때 그랬듯이, 이런 식으로 씻으면 본인만 맡지 못할 뿐 주변 사람에게는 충분히 거슬리지만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불편한 냄새를 지속적으로 풍기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샤워타월에 바디워시든 목욕비누든 충분히 거품을 낸 다음에 온몸을 구석구석, 세심하게, 약하지 않은 힘으로 문지른다. 하루 동안 피부에 쌓인 땀과 피지와 먼지와 기름 속의 단백질이 삭아서 모공과 주름 사이사이에 냄새가 배기 전에 그것들을 모두 긁어낸다는 느낌으로. 오늘 하루도 몸을 잘 썼으니 관리한다는 마음으로, 마치 내일 하루도 잘 부탁한다는 듯이. 곁에서 보면 사뭇 경건해 보여서 마치 예배를 드리는 것 같다고도 했다. 손이 쉽게 닫는 부위는 당연하고 그 외에 귓바퀴 위와 뒤, 귓불 안, 목뒤, 양쪽 날갯죽지 사이, 배꼽, 샅, 팔꿈치와 무릎처럼 살이 자주 접히고 펴져 유난히 주름지는 부분, 그리고 발목과 발가락 사이까지 전부. 매일 그렇게 샤워하면 피부 장벽이 무너지고, 어디가 당기거나 가렵고, 솔직히 제대로 안 씻을 때는 그런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냥 샤워 후에 바디로션을 바르면 전부 해결될 일인데.


그리고 세탁에 사용하는 물 대신 다른 것을 조금 더 아끼기로 했다. 샤워 시간을 줄이거나, 설거지 거리를 모아서 한 번에 빠르게 처리하거나, 양치할 때 물을 틀어놓지 않는다거나, 스쿠터 세차를 조금 긴 간격으로 한다거나(ㅋㅋㅋㅋ 그래서 내 스쿠터는 1년 중 대부분 꼬질꼬질하다), 목까지 푹 담그기보다 반신욕을 한다거나, 그렇게 아낀 물로 빨래를 자주 하는 편이다. 물론 그럴수록 옷이 빠른 속도로 해지기는 해도 깃고대에서 삭은내가 나는 것보다는 낫다. 후드 소매에서 담배냄새가 나는 것보다도 낫고. 겉옷 개념이 아닌, 맨살에 직접 닿게 되는 옷은 한 번 입으면 되도록 빨래통에 넣는 편이다. 유일한 예외가 청바지 정도일까. (맨살에 바로 닿는 옷 중에 얘만 오래 입어도 냄새가 안 난다. 이상한데 왜인지는 모르겠다)


매일 꼼꼼히 씻는다, 가 첫째. 코를 박고 냄새가 나는지 아닌지 모호하다면 그냥 빤다, 가 둘째. 주변인과 비교했을 때 체취가 강하지는 않지만 땀이 적게 나는 편도 아닌, 'ABCC11' 유전자가 변이된 한국인의 딱 평균적인 냄새를 가진 나는 이 두 가지만 지켜도 몸에서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체감 상 80%가 넘는 한국인의 큰 다수는 이런 생활 습관으로 살아 가는 중이고. (수건이나 면옷 같은 것은 따로 모아 매번 뜨거운 물로 빤다, 인 셋째도 있다. 근데 이건 보통 다 그러지는 않는 듯하다) 거기에 매트리스 패드와 이불을 2-3주 간격으로 세탁하고, 젖은 신발을 미루지 않고 빨아 볕이 드는 곳에서 잘 말리니 아저씨 혼자 사는 집에서도 점점 홀애비 냄새 대신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너무했지. 2014년의 내 집에서는 가구에 쩐 담배냄새(당시에는 옥상방에서 연초 담배를 피워댔으니), 옷에서 나는 삭은내, 이불과 베개에서는 쉰내, 그리고 몸에서는 영혼이 고여 썩어가는 냄새까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을 것이다.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끔찍하다. 그만큼 지금 누군가의 몸에서 안 좋은 냄새를 맡게 되면 불쾌함보다 속상함이 먼저 든다.


뭐, 지난 번에 적었던 <여전히 불쾌하고…> 글과 그리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그 글은 내 지난날과 연유에 조금 더 중점을 뒀다면 이 글은 현재와 그 변화에 조금 더 집중했다는 차이뿐.






25.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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