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매]
카페 구석 창가자리에 앉아있는데 다른 손님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 두 사람이 내 근처 테이블에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사흘쯤 제대로 샤워를 하지 않았을 때 나는 삭은 피지와 묵은 땀이 뒤섞인 그런 냄새였다. 이것이 무슨 냄새인지, 어떻게 해야 이런 냄새가 나는지 나는 잘 안다. 예전에 엉망으로 살 때 내 몸에서 나던 냄새였으니까. 오랜만에 이 냄새를 맡은 순간, 불쾌함에 이어 부끄러움이 연달아 들었다. 당시 나는 주변에 이런 냄새를 풍기고 다녔구나. 며칠씩 샤워를 하지 않거나, 샤워를 해도 물로만 하거나, 바디워시를 써도 샤워타월 없이 대충 문지르기만 했으니까. 제때 닦이지 않은 땀과 피지가 입고 있던 옷 섬유 사이에 차곡차곡 스며들고, 그러면 스스로는 계속 맡았기에 코가 피로해서 잘 느끼지 못할 뿐, 일정 이상 가까이 다가온 주변인은 분명 내게 이런 냄새를 맡았을 것이다. 아무리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되었을 때였지만, 그래서 당시 내가 왜 그리 난장판으로 살았는지는 심정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지금은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워낙 대중교통 탈 일이 적으니 나는 이런 냄새를 자주 맡을 기회가 없다. 그런 만큼 정말 오랜만에 맡은 이 불쾌하고 부끄러운 냄새가 나를 11년 전, 2014년 무렵으로 순식간에 데려다 놨다. 하루에 고작 한두 시간뿐인 수면에 머리가 먹먹했고, 위장에는 고형물보다 알코올이 더 많아 움직일 때마다 출렁이는 배를 탄 듯했다. 걸을 때마다 오른쪽 골반에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느껴 절뚝거리며 걷고, 골반보다 마음이 더 아파 세 걸음에 한 번씩 멈춰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렇게 낮의 카페와 밤의 거리를 전전하다가, 자정쯤 겨우 옥상방에 도착하면 입고 있던 외투를 벗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스키복을 덧입었다. 그대로 신새벽이 지나 하늘에 푸른 박명이 번져올 때까지 글이 아닌 어떤 감정의 찌꺼기 같은 활자를 찍다가, 해가 뜰 무렵에야 영하 4도의 문 열린 옥상방 침낭 안에서 웅크리고 잠들던 시절. 담배 연기로 양치를 하고 눈물로 세수를 하면서 ‘죽고 싶다’와 ‘그럼에도 나는 산다’를 번갈아가며 되뇌다가 겨우 잠이 들고는 했다. 매일 감던 머리조차 당시에는 매일 감지 않았는데 샤워라고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수상하고 불쾌하고 꺼림칙한 기세와 냄새를 풍기는 만 스물여덟 살의 남자. 이 이상하고 불쌍한 사내는 그렇게 산지 8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의 몸과 입고 있는 옷에서 역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반대로 어찌 지금까지 맡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나쁜 냄새였다. 8개월 전과 달라진 점이라고는 더 이상 술을 매일 마시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와 ‘나는 산다’의 비율이 1대9 정도로 변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여전히 넝마가 된 가슴팍과 정신짝이었지만 어느새 눈빛만은 다시 형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그중 술이 가장 컸겠지. 내가 취하지 않고, 내게서 술 냄새가 나지 않았을 무렵부터 상대적으로 그 불쾌한 냄새를 맡게 되었으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2014년 초였던 시간은 곧 2015년을 앞두고 있었다. 그 8개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밀어도 밀어도 팔뚝에서 때가 나왔고, 옷 중에 몇몇은 되살릴 수 없어서 버려야 했다. 피부가 푸석한 만큼 눈두덩이도 퀭했고, 어금니 한쪽이 시큰거렸으며, 얼마쯤의 빚이 생겼다. 내게 가장 큰 스승님께서 작고하셨고, 가까운 지인 몇을 안 좋게 떠나보냈으며, 직장에는 사직서를 냈었다. 가정은 풍비박산 직전인 상태였고, 그 많던 전화번호도 대부분 삭제한 후였다. <이립의 사직서>, <오늘을 얻어낸 나에게>, <이별 후에 오는 것들>를 이때쯤 썼다. 나에게 남은 것은 결혼할 때 쓰려고 모아둔 알량한 돈 얼마와 만으로 스물아홉이 된 나이, 그리고 2900쪽의 종이뭉치, 책으로 치면 열권쯤 되는 일기장뿐이었다. 그리고 수없이 잃은 것 중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지난 10년간 착실하게 쌓아올렸던, 첫 번째 시대의 내 나라였다. 세계관의 완성을 목전에 둔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옥국玉國의 왕은 망국의 부랑자가 되어, 국호대로 다반향초의 길로 접어들었다. 왕이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맨땅에 나라를 세우는 것뿐, 모르고 한 번인지 알고도 두 번인지는 상관없었다.
그렇게 창밖에 시선만 둔 채 10년이 지났어도 떠올리면 아찔한 감정이 드는 과거를 배회하다 돌아온 것은 한참 후였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한 시간쯤 지나있었다. 문득 마스크 너머에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근처 두 테이블 모두 비어있었다. 마스크를 벗고 다시 맡아봤다. 카페에는 마치 지나간 자취인듯 아주 미약한 땀 냄새만 남아있었다. 여전히 불쾌하고 더없이 부끄럽지만, 어째선지 조금은 그리운 과거의 냄새였다.
25. 0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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