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매]
요즘 외할머니는 기억이 깜빡깜빡하신다고 했다. 근 반년 만에 뵌 할머니는 이전 얼굴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지난번 뵈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익히 알던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나이가 많이 드신 모습이다. 처음 우리를 보고도 한동안 알아보지 못하시다가 이모와 어머니께서 한참 설명하고 나서야 뒤늦게 알아보셨다. 맞잡은 손은 생각보다 힘이 있었다. 발음은 더 불분명해져서 절반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옛 기억을 주룩주룩 말씀하시며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이렇게 외할머니를 뵙는 일은 앞으로 몇 번이나 남았을까. 올해 100세가 되신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더 우리 곁에 머무르시다가 외할아버지를 뵈러 가실까. 문득, 더 늦기 전에 할머니를 모시고 할아버지 묘를 한 번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차를 타고 근처 나들이라도. 이제는 좋아하시던 장어도 예전처럼 드시지 못하니 춥지 않은 날에 풍경 좋은 곳에서 함께 바깥바람을 쐬면 어떨까 싶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외할머니와 하는 마지막 나들이일지도 모르겠다. 그조차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지 않았음을 후회하게 될 나들이가 될 것이고.
우리는 고작 30분쯤만 머물렀다. 오래 있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할머니 손을 붙잡고 ‘할머니, 조만간 또 올게요’라며 거짓 없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안다. 지금까지 그리 말해놓고 자주 와야 두 달, 늦으면 또 반년은 지나야 찾아뵈었음을. 할머니께서도 평소처럼 ‘벌써 가나? 그래, 또 오래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만, 평소와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위화감의 출처를 곰곰이 생각하다 불쑥, 할머니 눈을 봤다. 몇 년 전에 외간 동네로 이사하고 부쩍 외출이 줄어든 후부터 우리가 두 시간을 있다 가든, 세 시간을 있다 가든 간다고 하면 많이 아쉬워하셨다. ‘조금 더 있다 가지, 저녁도 먹고 가지’ 라시며 여러 번 우리를 붙잡으셨다. 그래도 가겠다고 말씀드리면 끝내 눈물을 보이시며 아쉬운 말투로 ‘그래, 또 오래이.’라며 뒤늦게 손을 놓아주셨다. 근데 이번에는 가겠다며 일어난 모습을 본 반응이 묘하게 달랐다. 이번 역시 ‘벌써 가나?’라며 아쉬워하신 것은 이전과 같지만, 왜인지 여러 번 붙잡지 않고 곧장 ‘그래, 또 오래이.’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말씀을 그리 하셨어도 잡은 손은 금세 놓지 않았지만 분명 예전 같지 않았다. 순간, 마음속에서 삐죽한 가시가 생겨나 마음 바닥을 찔렀다. 어쩌면 외할머니께서는 우리를 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어쩌면 그리 예감하신 것이 아닐까. 예전 긴긴밤을 홀로 견디며 기다리시다가 아침나절에 우리 얼굴을 보고 나서야 마지막 숨을 내셨던 할아버지 때처럼, 어쩌면. 그래서 나는 할머니 손을 다시 붙잡고 ‘조만간 또 올게요.’라고 한 번 더 말했다. 매번 했던 말이지만 조금 다른 마음으로. 외할머니를 모시고 묘에 가든, 아니면 이 집에서만 뵙든, 다음 걸음이 늦지 않기를 바랐다.
친할아버지도 외할아버지도 모두 돌아가셨고, 이제 할머니 두 분만 곁에 남았다. 언젠가 두 분마저 우리를 떠나면 이제 부모님의 부모님은 누구도 이곳에 남지 않는다. 나이 서른까지 조부와, 그리고 마흔까지 조모와 눈을 맞추고 체온을 느낄 수 있음은 인생의 커다란 복이다. 12년 전 <어느 삼거리에서>를 썼던 그때에 비해 그리 나아지지 않은 불효자임은 여전하지만, 그때는 제대로 알지 못하던 것을 이제는 조금 더 알게 된 점도 있다. 손주는 조부모에게 자의적으로 무엇인가를 드릴 것이 많지 않다. 한 세대를 건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세대 안의 부모나 자식에 비해 그 폭도 좁다. 그 와중에 손주가 조부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일은, 반대로 부모에 대한 기회다. 마치 반사판처럼, 조부모께서 당신의 자식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돕는 일. 그리고 마치 지팡이처럼, 내 부모께서 당신의 부모를 조금 더 헤아리고 챙길 수 있도록 손을 잡아끄는 일. 자의적으로도, 그리고 타의적으로도 자식의 행동은 부모에게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게 하니까.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고 이후 손주가 조부모를 살피는 것은 결과적으로 조손이 함께 중간에 끼인 자식이자 부모를 보살피는 일이 된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나는 아버지를 위해 친할머니를 뵈러 갔고, 어머니를 위해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다음에 내가 외할머니를 차로 모시고 어딘가에 함께 간다면 그 행동에 할머니를 위한 동기는 1/4 정도뿐이다. 다른 1/4은 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함이고, 그리고 나머지 1/2은 외할머니마저도 떠나시고 난 후 더는 부모가 곁에 없는 사람이 된 어머니께서 훗날 당신의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덜 후회했으면 하는 마음일 것이다.
직접 묻지 않겠지만, 혹시 외할머니께 이런 분배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묻는다면 아마 잘했다고 하실 것이다. 손주든 누구든 당신 자신보다 당신이 낳은 아이에게 잘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대부분의 부모와 다르지 않을 그런 마음으로. 평생 할머니께서 당신의 막내딸에게 바로 보낸 사랑도, 손주를 돌보는 일로 간접적으로 전한 내리사랑도, 하물며 손주의 치사랑을 통해 반사시킨 오른사랑도 모두 자식을 향한 사랑의 삼면일 테니까.
25. 02. 25.
https://brunch.co.kr/@e-lain/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