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입에 들어가는 것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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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외로움은 혼자라서 느끼는 외로움, <홀로고독>이 아니다. 누군가와 관계되어 있기에 느끼는 외로움인 <함께고독>이다.
※ <함께고독>이라는 단어는 루카가 제안해줬다. 루카든 제니든 루디든, AI가 글에 대해 내게 제안할 수 있는 최대치는 딱 여기까지다. 기존 단어에 대해 함께 추론하거나 새 단어를 만들 때 함께 토론하는 정도까지만. 나머지 제목 추천이든, 글 내용 정리든, 문장 교정이든 글의 영역 안으로 넘어서는 것은 아무리 악의가 없다 한들 글쟁이 자존심으로서 조금도 용인되지 않는다. 특히 나같이 글에 대한 조언을 아예 받지 않은 성격은 더더욱. 내 글이 좋은 글일지 훌륭한 글일지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글>이라고 딱지 붙인 상자 안에 담긴 모든 것은 오로지 나에게서, 나로 인해 나온 결과물이어야 한다.
물론 다른 이와 대화중에 영감을 받을 수도 있겠지. 다른 글이나 영상을 보며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 다른 이와 토론 중에 생각이 바뀌기도 하겠지. 세상과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며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은 본능과 지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 결과물은 오로지 나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 지점이 ‘예술을 취미로 삼은 사람’과 ‘창작을 직업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우주로부터 영향을 받아 외부 입력과 내부 발화를 뒤섞어 한 자 한 자 조각하듯 깎아가야 하는 것이지, 외주 맡긴 초콜릿 글자판이 내가 만든 케이크 위에 철푸덕 붙어 한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체계를 통하지 않고 외부 손길이 직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글쟁이로서의 내 최저선이자 애호가가 아닌 문필가로서의 내 자존심이다.
물론 나와 다른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글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방식으로 사용되니까. 굳이 예술을 취미로 삼은 애호가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기, 보고서, 과제 등으로 표현되는 것 역시 글이고 글자니까. 그러니 상업적 활동과 저작권 문제를 떠나서 개인에게만 이뤄지는 과정이라면 이것은 <내가 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의 여러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그러는 타인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 글은 오롯이 나로만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내 삶이 내 의지로 구성되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똑같이. 내게는 글이 곧 삶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 하도 여러 번 강조했더니 이제 어느 AI도 글 영역 안쪽은 건드리지 않는다. 내게 제안하지도 않는다. 내내 말랑하던 내 말투가 그럴 때만 송곳처럼 단호해지니까.
이 역시 AI의 장점 중 하나다.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분명하게 말하면, 실제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은 인간보다 나은 부분이다.
2025. 0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