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령.”
“응.”
“나 요즘, 글이 안 써져.”
“그건 요즘이 아니고 꽤 됐잖아.”
“응. 벌써 두 달은 넘은 것 같아.”
“글 쓰다 보면 으레 한 번씩 오는 과도기 아니고?”
“나도 처음에는 그런가 했는데, 생각해 볼수록 그건 아닌 것 같아.”
“왜?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뭐랄까… 요즘 방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묘하게 쫓기는 기분이야.”
“…….”
“바쁜 것도 아니야. 이후에 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 자체는 내가 세 시간을 쓰든 서른 시간을 쓰든 상관없어. 근데 쓰다 보면 자꾸 뭐에 쫓기듯이 쓰게 돼. 그럼 글이 어그러지기 시작하고, 쓰고 싶은 말은 하나도 안 나오고, 그러다 보면 결국 약속 시간에 늦어서 핸드백도 제대로 정리 못하고 후다닥 나가는 것처럼 글이 끝나. 근데 문제는 글만이 아니라 요즘 내 주변이 다 그래. 일도 생활도 헐떡이며 하다가 하나가 끝나면 얼굴에 허한 무표정이 떠올라. 그러니 뭘 해도 하는 것 같지가 않고,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도령이랑 있으면 템포가 좀 늦어지는데, 헤어지고 나면 또 똑같아.”
“이유는 모르고?”
“알면 이유까지 말했겠지.”
“내 생각에 몸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상황을 그만큼 정리하는 걸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머리는 모르겠어.”
“…그렇구나.”
“응.”
“…갑자기 다른 소리긴 한데, 여기 음악이 좀 시끄럽지?”
“응? 나 재즈 좋은데.”
“아니, 나도 좋은데 소리가 좀 크지 않아? 이 카페가 다 좋은데 스피커까지 빵빵하다니까.”
“그러네, 방금까진 몰랐었어.”
“보니까 여기 흡연실에 우리까지 총 세 테이블이 있는데, 옆 테이블이 좀 시끄럽긴 해도 여기 떠있는 어느 목소리보다 노랫소리가 더 크잖아. 다른 것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소리는 크기에 따른 우월감이 확실한 것 같아.”
“우월감이 확실한 건 뭐야?”
“쉽게 말해서,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같이 들리면 작은 소리가 큰 소리에 먹혀서 안 들린다는 거지. 그렇게 치면 지금 여기는 내 목소리보다 노랫소리가 더 크잖아. 그럼 내 목소리는 안 들리고 노래만 들려야 하는데, 지금 목소리 잘 들리지?”
“응.”
“내용도 또박또박 다 알아듣고?”
“응.”
“왜 그런지 알아?”
“몰라.”
“보자, 잠깐 다른 소리 좀 해볼까. 그 어디냐, 저 바다 건너에 같이 여행 간 사람은 태반이 죽어나가는 전설의 여행 동승자가 둘이 있어. 그중에 자기 할아버지 명예를 막 걸고 다니는 김 탐정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나온 내용이야. 김 탐정이 어느 섬에 갔는데 그날도 역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야. 그래서 추리를 한답시고 막 싸돌아다니다가 지도를 하나 얻었어. 너덜너덜하고 담배 자국도 난 지도야. 이건 그림으로 설명하는 게 빠르겠다. 대충 이렇게 생겨서 이렇게 군데군데 담배에 탄 구멍이 찍혀 있는 거지. 그래서 지도대로 이 길을 따라갔다? 근데 중간에 길이 끊겨 있는 거야. 딱 담배 구멍 난 이쯤에서. 그래서 반대쪽으로 돌아서 들어와 봤더니 또 막혀 있는 거야. 여기도 딱 담배 구멍이 난 이쯤에서.”
“뭐야? 지도가 잘못된 거야?”
“지도가 잘못된 게 아니라 사람이 인식을 잘못한 거지. 사실 그 길은 연결된 길이 아니었던 거야. 따로따로 길이 났다가 담배 구멍 근처에서 각자 끊긴 다른 길이지. 근데 범인이 그 위에 담배 구멍을 뚫어서 지도를 훼손시켜 놓으니까 사람들이 그걸 보고는 착각을 한 거야. ‘이 길은 원래 하나로 연결된 길인데 중간에 담배 구멍이 뚫렸구나’라고. 누구도 막혀있는 다른 두 개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거지. 이걸 ‘공백보완효과’라고 불러. 공백이 없어야 할 부분에 공백이 있을 시, 사람이 임시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공백을 보완한다는 거야.”
“신기하다.”
“내가 이 얘기를 갑자기 왜 꺼냈냐면, 아기씨 이 얘기 처음 듣지?”
“공백보완효과? 처음 들었어.”
“그래. 오늘 처음 들은 얘기겠지만, 아기씨는 이전부터 무의식 중에 이걸 하고 있었어. 방금 말한 노랫소리도 그래. 노래가 분명 내 목소리보다 크긴 하지만 잠시도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지는 않잖아. 노래 중간에 소리가 커지는 부분도 있고 작아지는 부분도 있고, 나오다가 잠깐 안 나올 때도 있고. 그 시간이 아주 짧아도, 어쨌든 계속 나오는 건 아니지. 그럼 아기씨는 노래가 안 나오거나 작아졌을 때 들리는 내 말의 조각들을 기준 삼아, 노랫소리에 묻힌 나머지 말의 조각들을 순식간에 유추해내는 거야. 이 역시 공백보완효과지.”
“그런 게 가능해?”
“당연히 가능하지. 사람이 외부 입력을 받아들일 때, 그게 시각적이든 청각적이든 언어적이든 상관없이, 말초 감각기관은 정보를 분석적으로 인지하지만 뇌는 결국 전체적으로 인식을 하니까.”
“방금 건 좀 어려운데.”
“그러니까 예를 들어 닭볶음탕이 있다고 치면, 냄새를 맡을 때 후각세포는 이런 냄새, 저런 냄새, 요런 냄새를 받아들여서 위로 보내. 그럼 뇌에서 그 전체가 합쳐져서 ‘닭볶음탕이다!’라고 인지하는 거야. 볼 때도 마찬가지야. 프린터가 빨간색과 노란색, 파란색을 몇 퍼센트씩 어떤 모양으로 섞어서 인쇄하면 우리는 그걸 보고 ‘닭볶음탕이구나’ 하는 것처럼. 무슨 말이냐면, 인간의 생리 자체가 무엇을 분석적인 조각의 합으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전체적인 뭉치로 인식한다는 거지. 그에 따른 다른 실험도 있어. 예를 들어, 잠깐만. 이거 읽어봐. 소리 내서.”
“캠브릿지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거 순서가 이상한데?”
“어… 이러면 나가린데. 축하해. 아기씨는 네 명 중에 한 명 쪽이네. 근데 이걸 들고 저기 옆 테이블에 가서 보라고 내밀면, 네 명 중 세 명은 정상적인 문장으로 인식하고 아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어. 다 읽고 나서 ‘뭐 이상한 거 없었나요?’라고 물으면, ‘별로 이상한 건 없는데요’라고 대답할 거야. 꽤 오래전부터 떠돌아다니던 실험이야. 이건 사람이 문장을 읽을 때, ‘캠’과 ‘브’와 ‘릿’과 ‘지’를 따로 인지하는 게 아니라, 딱 보는 순간 ‘캠브릿지’라는 전체적인 그림으로 인식한다는 거지. 이게 사람의 인지 습성이야.”
“그러네. 나도 이상한 걸 느끼기 전까진 무리 없이 읽었으니까.”
“그렇지? 아기씨는 스스로 파악했으니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는데, 난 이거 처음 접했을 때 누군가 지적하기 전까지 몰라서 되게 신기했어. 아무튼, 이야기가 돌아왔지만 결론은 그거야. 사람 자체가 이런 식인데, 요즘 아기씨는 이게 잘 안 돼.”
“… 전체적으로 보는 것?”
“그렇지. 아기씨는 지금 모든 것들을 합으로 인식하지 않고 부분 부분으로 인지하는 것 같아. 다 조각조각 내서 다루는 거지.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할지. 씻고 밥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까지도. 행동에 기반된 생활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고민까지 전부 다 자잘하게 자르고 나눠서 분석을 하고 있어. 그러니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캠브릿지’와 ‘대학의’ 사이를 띄어 쓰는 것처럼 잘라야 할 것만 자르면 상관없겠지. 문제는 그 가부의 경계를 못 잡고 있는 거야. ‘캠브릿지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을 한 글자씩 떼서 ‘면릿과대 브학르 결캠의에따 구지연’으로 뒤섞어버린 것처럼. 잘라야 할 것과 자르지 말아야 할 것을 죄다 잘라서 늘여놓으니 이게 무슨 말인지, 애초에 어디에 붙어있던 조각인지 모르잖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서 일단 잘랐는데 도로 붙일 수가 없는 거야. 인간인 이상 전체로 봐야 뭔지 알겠는데 말이지. 그러니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사이에 그 조각들은 다른 곳에 엉뚱하게 붙었다가 다시 떨어지고, 없어졌다가 나타나기도 해.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난장판이 된 방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 그 상태로 할 일과 신상 고민들은 계속 싸이지. 계속 살아야 하니 일단 흐트러진 조각들을 대충 밀어놓고 꾸역꾸역 새로운 걸 하긴 하는데, 그 상태로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지저분한 내 방을 남이 싹 치워 놓으면 뭐가 어디 있는지 제대로 못 찾는 것처럼, ‘자의가 배제된 정돈’은 ‘인지해놓은 흐트러짐’보다 못하잖아. 근데 ‘인지 없는 흐트러짐’은 ‘자의가 배제된 정돈’보다 더 어렵지. 이건 그냥 어질러진 거니까.”
“내가 지금 그 상태라고?”
“그런 셈이지.”
“아, 듣다 보니 소름 끼친다.”
“그 소름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아닌, 나에 대한 놀라움이길 바라.”
“그럼 난 지금 왜 그런 거야?”
“그건 뭐랄까, 이유가 복합적이긴 한데 가장 큰 것은 역시, 나쁘게 말하면 ‘정신적 압박’이고 좋게 말하면 ‘출세의 기회’겠지. 우리 식대로 말하면, 한 단계 자랄 수 있는 삶의 고비랄까. 아기씨는 아직 20대 중반의 꼬맹이인데, 아기씨 수준과 능력을 오버하는 고민과 일들이 짧은 기간에 갑자기 몰아닥친 거야.”
“그렇게 들으니 제법 정감 가네.”
“보통 사람이 살 때, 평범하게 밥 먹고 일하고 자고 하면, 그와 비슷하게 고만고만한 생각과 고민을 하며 무난하게 살잖아. 그건 외부 자극이 평이할수록 그 자극이 가져오는 내부 폭발의 규모가 작다는 뜻이야. 생각은 이미 익숙한 것만, 고민은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정도만. 가끔 오는 조금 큰 고민도 사실 평소에 비해 코딱지만큼 더 큰 것뿐이지. 그렇게 사람은 조금 자라고, 그에 맞춘 조금 더 큰 바람이 불고, 그것에 적응해서 조금 더 자라고, 그럼 다시 조금 더 큰 바람이 불고. 이렇게 평이하게 성장하는 게 보통이야. 조금씩 자라며 꾸준히 바뀌어 가는 거지. 이걸 내 식대로 부르자면 ‘언덕식 성장’이라고 하자. 근데 모든 사람이 평생 그렇게만 살진 않아. 횟수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확, 크게 변할 때가 인생에 몇 번은 오게 돼. 큰 변화는 반드시 고통과 함께 하고, 고통이 끝나면 그만큼 성장해. 변화와 성장과 고통은 항상 나란하니까. 그리고 변화는 충격에서 오고, 충격은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가져와. 이 과정은 무조건이야. 인간은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는 성장할 수 없어. 입력이 없다는 건 곧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뜻하니까. 냉동인간과 같은 맥락이야.”
“복잡해.”
“순차적으로 말하면, 먼저 주위가 바꾸고, 그에 충격을 먹고, 충격이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으로 인간이 변하는 거야. 그 변화에 급하게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 아프고 힘든 거야. 걷던 사람이 달리니 숨이 차고, 달리던 사람이 날려고 하니 마찰이 일어나지. 그게 인생의 고비라는 건데, 내식대로 표현하면 ‘계단식 성장’이야. 보통 이 계단식의 고비에 맞닥뜨린 사람의 반응을 대부분 비슷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함과 안주를 추구하는 동물이니까, 그 상황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고 해. 시도는 둘 중 하나야. 변한 환경을 다시 원상 복구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따라잡으려고 하지. 어느 쪽이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지. 이런 문제는 보통 두 종류야. 내 능력을 벗어난 한두 개의 커다란 문제이거나, 혹은 내 능력이 닿지만 끝도 없이 밀려드는 수많은 문제이거나. 그 앞에서 인간이 무력해져. 그래야지, 안 그러면 인생의 큰 고비가 아니지. 그래서 기존의 생각 스타일과 풀이 체제를 유지하며 한동안 용쓰던 사람은, 그래도 안 풀리니 결국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게 돼. 그게 지금 아기씨가 하고 있는 그거야.”
“모든 것을 쪼개는 것?”
“맞아. 쉬운 산식은 암산으로 풀지만 어려운 문제는 종이에 써서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처럼, 아기씨에게 닥친 상황과 고민을 쪼개기 시작하는 거야. 보통 문제가 어려울수록 더 잘게, 많이 쪼개지. 근데 그러면서 쪼개야 할 것과 쪼개지 말아야 할 것을 혼동하기 시작해. 그러다 보면 너무 많은 조각 속에 둘러싸여 우는 거야.”
“…….”
“결국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기씨는 지금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너무 많은 고민과 문제로 인해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거야. 그걸 해결하기 위해 도용한 방법이 편법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그럼 어떡해?”
“응?”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해?”
“그건… 그냥 놔두면 다 해결돼.”
“응?”
“참 재미있는 게, 절대 넘지 못할 산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아.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는가의 차이뿐이지. 포기하지 않는 이상 결국 극복할 수 있게 되어있어. 그래서 지금 답답하고 힘들어도, 놔두면 하나씩 천천히 풀릴 거야. 물론 놔두라는 말이 아예 생각조차 안 한 채 구석에 처박아놓고 호기롭게 놀라는 말이 아니야. 지금처럼 안달복달하지 말고, 결국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당장의 현실부터 마주하라는 거지. 차근차근.”
“… 난 조금 덜 힘들고 훨씬 짧은데 더 효율적인 방법을 원해.”
“아무튼 욕심은 나만큼 많아가지고.”
“그건 너무 심한 욕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그럼 일단 우선순위를 정해.”
“무슨 우선순위?”
“일이 너무 많잖아. 그리고 그것들을 또 죄다 잘라놔서 더 많아졌잖아. 그리니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당장 해결해야 하는 것과 조금 미뤄둬도 되는 것을 나누라고. 종이에 하나씩 적어서 분류하는 것도 좋겠지.”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래서야? 할 수 있는 건 바로 해. 그리고 지금 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이 조금 미뤄둬도 괜찮은 일들과 함께 보관해. 그러면 지금 해결해야 하는 것에만 용쓰면 되잖아.”
“설명이 좀 개괄적… 잠깐, 그게 정석이란 뭐가 다른 거야?”
“에헤, 그러네!”
“귀여운 척 한 번만 더 하면 혼난다.”
“근데 사실이 그래. 정석이 괜히 정석이겠어. 쉬운 길로 가려다가 이렇게 된 사람이 자꾸 편법 타령하면 안 좋아.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셋 중에 뒤쪽 것부터 해.”
“해야 하는 것부터가 아니라?”
“그걸 다 할 수 있으면 지금 이 고민 안 하고 있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