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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05] 사람은 누구나 이상해.

by 이한얼






“도령.”


“응.”


“나 이상해?”


“사람은 누구나 이상해. 나만 빼고.”


“그런 의미 말고.”


“그런 의미 말고는 너무 많은 의미가 있는데.”


“…도령이 보기에 나 이상해?”


“그게 처음 질문이랑 뭐가 다른 거야.”


“아니, 내 말은….”


“확실히, '사람들이 보기엔' 아기씨가 좀 이상하긴 할 거야.”


“이상해?”


“이상하지. 보자, 여기 대한민국에 어떤 여자가 있어. 키도 고만고만하고, 얼굴이 특별히 예쁘지도 않지. 머릿결이 좋은 편도 아니고, 몸매가 훌륭한 편도 아니야. 비율도 그냥 그렇고, 다른 곳도 그냥 그래. 근데 멋있는 남자랑 내내 붙어 다니는 걸 보면 남들에겐 좀 의아해 보이겠지. 내적으로 보자면, 그래, 성격은 폐쇄적이지. 스스로한테 거짓말도 잘하지. 나이와 경험이 부족해서 아직 사리를 분간할 본인만의 백과사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존심은 더럽게 세서 남 말은 안 듣지. 그뿐인가. 방구석 폐인만치 혼자 잘 있지, 게다가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맞다, 애교도 없구나. 생각은 또 겁나 많아서 한 생각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다가 젊은 나이에 벌써 흰머리까지 있어. 한번 땅굴 파고 들어가면 정도가 없고,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세상 전부를 미워하지 않나. 그래 놓고 욕심은 많아서 아무거나 막 주워 먹고. 성격도 모난 부분이 있어. 실제로 슬퍼서 아파서 우는 것보다 억울해서 분해서 우는 횟수가 훨씬 많아. 어느 때는 되게 현명한 것 같은데 어느 때는 되게 똑똑하기만 하고. 듣는 귀도 열렸다 닫혔다 하고. 게다가 말도 잘 못해.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을 항상 세 보따리씩 싸 짊어지고 다니면서 정작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삼 티스푼 정도 되나. 그래서 일찍 말하면 쉽게 풀 일도 크게 키워서 나중에 속은 속대로 상하고 일도 잔뜩 꼬여서 복잡해진 후에나 빵 터트리네. 어린 나이에 생각도 굳었지. 가치관도 굳었지.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아파. 아프니까 눈은 퀭해, 다크 서클은 광대까지 내려와, 피부는 푸석푸석, 정신은 멍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화도 잘 내고, 잘 삐치고, 온몸 관절은 삐걱대고. 그런 상황에서 집에만 있으면 괴롭고 지구 반대편까지 굴 파고 들어갈 기세라 일단 살려고 나오긴 하는데, 기껏 밖으로 탈출하면 또 괴롭고. 우와, 사실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용하다. 아파서 회사도 그만 뒀지. 일 못하니 돈도 없어. 그렇다고 능력이 없어? 아니지, 또 능력은 출중하잖아. 그러니 답답하고. 그럼 또 짜증 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목에선 약 맛 올라오고, 날갯죽지는 불쏘시개로 지지는 것 같고, 뒷목은 벽에 걸린 옷처럼 내내 매달려 있고, 숨쉬기 힘들고, 안압 때문에 눈알은 터질 것 같고, 허리는 허리대로 발목은 발목대로 쑤시네. 이리 누우면 이쪽이 아프고, 저리 누우면 저쪽이 아파서 한 자세로 오래 눕지도 못하고. 그거 다 감수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야. 음… 아직 한참 남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십 대 한창인 여자 치고는 참 이상해 보이겠지?”


“…근데 도령은 그런 나랑 왜 같이 있어?”


“왜긴. 나한테는 안 이상하니까 그렇지.”


“나 안 이상해?”


“안 이상해. 아기씨는 충분히 이상한 여자지만, 나한테는 안 이상해.”


“도령한테만 안 이상한 거야?”


“그런 셈이지. 아기씨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래. 남이 보기엔 사람은 누구나 이상해. 하지만 스스로 보기엔 이상하지 않아. 당연하지, 인간은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그럼에도 스스로가 이상하다 생각되면 그건 정말 큰일이 난 거야. 둘 중 하나야. 본능적인 프로그램을 역행할 정도로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남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보고 있는 거지. 그럴 때 사람은 스스로를 참 하찮게 여겨. 뭘 해도 바보 같고 마음에 안 들지. 스스로 하는 작은 실수는 아주 크게 느껴지고, 잘한 행동도 말끔히 뿌듯해하지 못하고 매사 불안해하지. 그러면서 지금 아기씨처럼 혼자 땅굴 파면서 질질 짜는 거야. 아기씨는 지금 어때?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느껴?”


“응. 난 지금 내가 너무 낯설고 이상해.”


“그래. 그래서 지금 아기씨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야.”


“도령 같은 사람은 뭔데?”


“사람은 모든 것이 다 균형이야. 극이 없고 일방적인 것도 없지. 플러스와 마이너스, 흑과 백을 양쪽에 두고 제로와 회색으로 수렴하도록 되어 있어. 즉, 중도의 삶이지. 이것도 마찬가지야. 보통 ‘이상하다 여기기 때문에 날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시선’과 ‘이상하지 않으니 이해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자각’으로 삶의 균형을 맞추는데, 지금은 타인의 시선도 내 자각도 같은 색이잖아. 그러니까 사람이 중심을 못 잡고 자꾸 한쪽으로 끌려가는 거야. 그럴 때는 ‘남이되 남이 아닌 자’가 필요해. 지금 끌려가는 사람의 이마를 한 대 탁 치면서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의 의견이 옳든 그르든, 논리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단지 그렇게 이마를 쳐줌으로써 그 사람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정신 차려’ 혹은 ‘괜찮아’라고. 그럼 이후는 그 사람이 알아서 제자리로 찾아가는 거야.”


“…….”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헤매는 날 잡아줄 누군가가. 그걸 꾸지람으로 받아들일지, 다독임으로 받아들일지는 본인의 몫이겠지만.”


“그럼 그래서 나한테 안 이상하다고 하는 거야? 진짜 안 이상해서가 아니라?”


“아니. 내가 보기엔 진짜 안 이상해. 나는 남이되 남이 아닌 자니까.”


“남이되 남이 아닌 자는 뭐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당신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마치 당신 본인인양 당신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지. 누구나 주변에 한 명쯤은 그런 사람이 있어. 없으면 분발해야겠지만, 최소한 아기씨는 있네. 그런 내가 보기에 아기씨는 하나도 안 이상해.”


“그럼 나 잘못한 거 아니야?”


“무슨 잘못을 했어. 내 아이스크림 몰래 먹은 적 있으면 자백해. 지금이 기회야.”


“나 큰 잘못 저질러서 지금 이렇게 아픈 거 아니야?”


“아니야. 아기씨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도 않았지만 팔아먹지도 않았어. 선악후선이랬지. 이 시간 다 보낸 후에 잘 먹고 잘 사려고 지금 고생하는 거야. 노후 연금이라고 생각해.”


“그런 연금 필요 없는데. 복권 일등 같은 거 필요 없으니 평생이 그저 잔잔했으면 좋겠어.”


“필요 없다고 안 할 수 있으면 진작 때려치웠겠지.”


“……그럼 나 괜찮은 거지?”


“그래, 괜찮아. 지금은 딱 세 가지만 고민하면 돼. 씹은 음식물을 어찌 소화시킬 것인지. 그걸 어느 타이밍에 쌀 것인지. 그리고 어떡하면 일 분이라도 더 잘 것인지. 나머지는 아직 아기씨 몫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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