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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팀 응원석

by 이한얼






[A-7석]

오늘 경기가 끝난 순간, 몹시 화가 났다. 우리 선수들에게 아쉬웠고, 상대 선수가 너무 미웠다. 그러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나를 다스렸다.


내가 아무리 아쉬워봤자 직접 경기를 한 당사자인 선수보다 아쉬울 리가 없다. 내가 선수들보다 절박할 수도 없다. 내가 선수들보다 간절할 수도 없다. 내가 선수들보다 화가 날 수도 없고, 속상할 수도 없다. 우리 선수들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나는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없다. 열심히 했지만 실수를 했든, 단지 오늘 상대보다 실력이 부족했든, 아니면 이런저런 운이 맞지 않아서 결과가 나오지 않았든, 열심히 했음에도 승리라는 결과를 얻지 못한 우리 선수들을 격려했으면 했지, 비난하거나 욕을 하거나 화를 낼 수 없다.


그건 너무 저급한 행동이야. 인간으로서 너무 질이 떨어져. 생각이 얕고 공감능력도 떨어지는 머저리 같아.


다른 이가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삶을 어떻게 규정하고 취급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의 삶을 판단할 권리가 내게 없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고. 다만 최소한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방금까지 응원을 하던 선수들에게, 패배했다고 침 묻은 팝콘을 집어 던지며 욕설을 퍼붓는 꼴은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모습이 아니다.


나는 내로남불을 극도로 혐오한다. 그리고 남에게는 가혹하지만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를 아주 하찮게 취급한다.


그러니 내 삶이 저러지 않기를 바란다. 내 삶이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지도 않고, 내가 타인의 삶을 그딴 식으로 취급하고 싶지도 않다. 나보다 더 절실하게 최선을 다한 이에게, 단지 내 뜻대로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해서 욕을 하는 머저리 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다.




[B-13석]

그런 이는 신기하게도, 자신이 한 행동을 남이 자신에게 똑같이 하면 화를 내거나 억울해한다. 자신은 남이 실패했을 때 오직 결과로만 판단하지만, 남은 자신이 실패했을 때 결과보다 과정으로 헤아려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실수를 하면 사연이 한 무더기지만, 남이 실수를 하면 연유가 어떻든 그 행동만 가지고 물어뜯는다. 숨 쉬듯 내로남불을 하고, 언제나 자신에게만 관대하다. 상대가 저 돈을 받는 이유는 남들보다 그만큼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고, 단지 자신이 욕을 해도 참아야 하기에 받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신이 일을 해서 받는 돈은 자신이 그만큼 실력이 있거나 노동력을 제공했기에 받는 것이지, 그 돈이 자신에게 욕을 해도 되는 권한은 아니라고 여긴다. 자신이 남에게 하는 욕은 언제나 정당한 이유가 있고, 남이 자신에게 하는 욕은 언제나 부당한 처사일 뿐이다.


그런 이는 학교든 직장에서든 조금만 실수하면 쌍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자신도 남에게 그랬으니까. 잘 해보려고 한 행동에 결과가 나쁘면 어떤 참작 없이 비난만 당해도 할 말이 없다. 자신이 남에게 그랬으니까. 아주 작은 실패를 했을 때 저주와 같은 악담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왜냐면 자신이 먼저 그랬으니까. 타인의 작은 실패를 보며 너무도 쉽게 ‘졌다 이미 끝났네’. ‘그렇게 할 거면 나가 뒤져라’, ‘넌 그냥 은퇴해라’라고 했으니까. 그러니 남이 자신의 의도와, 열의와, 절심함과, 경력과, 아쉬움을 알아주지 않고 오직 결과로만 비난하거나 욕설을 퍼부어도 괜찮다. 마침 몸 상태가 좋지 않았든, 개인적인 우환이 있었든, 사소한 사건사고가 있었든, 단지 운이 없었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비난과 욕설을 하는 이가 어중이떠중이여도 괜찮다. 어떤 전문성이 없어도 괜찮다. 오래 지켜보지 않았어도 괜찮다. 그냥 슬쩍 보고도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괜찮고, 멀리서 보고도 어떤 훈수와 욕설을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먼저 다른 이를 그리 대했으니까.


나는 남에게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 남이 나를 그렇게 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한쪽이 다른쪽을 그렇게 대하면, 다른쪽도 이쪽을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오직 결과로만 비난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욕을 하는 관계가 된다. 그런 관계뿐인 사회라니, 나는 서로를 그렇게 대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 ‘남이 나를 이렇게 대했으면 좋겠다’와 똑같은 방식으로 먼저 남을 대할 것이다.




[후문 출구]

애들아, 고생했다. 나보다 너희가 더 화가 나고 속상하겠지. 더 아쉽고 분하겠지. 너희 열심히 하는 거 내가 봤다. 최선을 다하는 거 전부 지켜봤다. 오늘은 아깝게 됐다. 일단 저녁 맛있게 먹고, 다시 준비 잘해서 다음 경기에서 힘내보자.


…물론 그래도 많이 아쉽다. 아까 2대1로 이기고 있을 때는 눈물이 잠시 찔끔 날 만큼 기뻤는데. 사실은 찔끔보다 조금 더, 잠시보다는 약간 오래.


상대 선수들에게도 미안하다. 우리 팀이 진 순간, 잠시지만 너희가 진심으로 미웠다. 너희는 그저 승부의 세계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오늘 우리 팀보다 실력과 운이 더 좋았을 뿐이고, 어떤 부정한 행위 없이 절차 안에서 열심히 했을 뿐이데. 알면서도 너희가 미웠다. 그래서 미안하다. 못난 어른이어서 한참이나 어린 너희를 잠시나마 미워했다.


속상한데, 괜찮다. 결국 우리 선수들이 다시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서있으면, 나는 또 응원을 할 테니까.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응원 밖에 없기도 하고. ㅋㅋㅋㅋ


잘했다! 고생했다! 너희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큰 기쁨이다. 이것이 스포츠의 묘미겠지.




[불 꺼진 경기장]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스포츠를 보면서, 응원하는 팀이 지면 화가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 그만큼 열정과 애정을 가졌으니,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근데 지나치게 화를 내는 사람과는 연애하지 마. 경기 자체가 아닌 경기 이후 분노와 비난에 스스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사람과는 결혼하지 마. 이건 공감능력에 대한 부분이니까. 보통 이상의 공감능력을 가진 이는, 불쑥 화가 났다가도 ‘아니 막말로 나보다 당사자들이 더 아쉽지 않나? 나에게는 그냥 좋아하는 경기지만 저들은 자신의 직업이자 인생이고, 무엇보다 당사자인데? 외부자인 내가 당사자인 저들을 필요 이상으로 비난하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그게 공감능력이야. 역지사지고. 그런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하게 되면, 곧 저 선수 자리에 네가 들어가게 될 거야.‘





2025.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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