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가 셋인 솥은 쓰러지지 않는다
정담
: 1. ①상대방과 정답게 주고받는 이야기. ②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이야기.
2. (마치 솥발처럼) 세 사람이 삼각형으로 마주 앉아서 하는 이야기.
요즘 한국 극장이 망해가는 모습은 보면 마치 안에 한국 영화 산업을 넣고 센 불에 졸이고 있는 삼발솥을 보는 것 같다. 이 솥이 다리 세 개를 가지고 똑바로 서서 안에 든 산업을 계속 끓여야 서서히 망해가는 거라면, 다리 세 개 중 단 하나만 없어도 솥은 바로 쓰러져 내용물을 엎질렀을 것이다. 그러면 망해가는 것 역시 멈췄을 테고. 근데 하필 다리가 세 개다. 각각이 참 튼튼하기도 하다.
그 각각의 다리에는 이름이 있다. ①영화 가격, ②영화&극장 수준, 그리고 ③OTT다. 만약 하나씩 없었다면 이 솥은 어떤 모습으로 넘어져 극장을 살렸을까.
1. 가격이 낮을 경우
: 집에 OTT가 있어서 집에서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어. 영화 수준이 낮거나 극장 시설이 허접해도, 이 돈이면 별로 안 아깝지! ㅋㅋ 야! 다른 데 가면 이것보다 더 나와! 눈앞에서 엉성한 영상물이 나온다 한들, 직원도 없고 쓰레기통이 꽉 차 있다 한들, 이 가격에 그냥 시원하고 따듯한 곳에서 두어 시간 데이트하는 거면 나쁘지 않지!
2. 영화&극장 수준이 높을 경우
: 집에 OTT가 있어! 영화 가격 개 비싸! 근데 찢었다! 세상에 나 소름 돋은 것 봐! 그래,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지! (실제 《트랜스포머1》을 극장에서 봤을 때 나는 소름 돋은 팔을 벅벅 문지르며 울면서 봤다) 이 경험! 이 감동! 대단해! 돈이 아깝지 않았다! 좋은 시간이었어! 혹은 영화는 적당히 재밌었지만 극장 수준이 좋아! 시설도 좋고, 친절하고, 깨끗하고, 이 정도면 이 돈을 내고 이용할 만한 훌륭한 여가 시설이야! 여가생활을 구가하는 나는야 훌륭한 문화 시민!
3. OTT가 없을 경우
: …영화도 재미없고, 극장 시설과 서비스도 엉망인데, 어떻게 대안이 없네. 어휴, 그래도 뭐 별 수 있냐. 달리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오긴 와야지. 비디오를 빌릴 거야 DVD대여를 할 거야 어쩔 건데… 물론 이전만큼 자주 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영화 보거나 데이트하러 오겠지.
이렇게, 셋 중 하나만 없었어도 지금 같지 않았을 텐데, 하필 세 가지가 모두 마련되어서 이렇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재밌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한국 극장이 망하는 이유인 저 셋 중에는 3인 OTT의 역할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1과 2는 3에 비해 극장 관람객 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1이라면 가난한 학생커플부터 지갑 사정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직장인커플까지 누구나 이용할 것이고, 2라면 극장에서 비싼 데이트를 했다는 인스타 간증사진이라도 늘어날 테니까. 반면 3인 OTT가 없었다 한들, 계속 올라가는 비싼 가격에 꾸준히 재미없는 영화, 점점 폐허처럼 변해가는 극장 서비스라면, 정말 당장 망하지만 않을 뿐 극장 관람객 수는 꾸준히 줄었을 것이다. 그러며 소비자는 계속 대안을 찾았겠지. 그러면 언젠가는 결국 OTT가 나왔을 것이고.
바꿔 말하면, 시대의 흐름인 OTT가 나올 때까지가 한국 영화와 극장에게는 기회의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소비자가 거부감을 느낄 만큼 가격을 올리지 않는 선에서, 영화 수준과 극장 서비스를 올려야 하는 시기. 언제고 반드시 나올 OTT라는 플랫폼에 대비하고 대응하기 위한 마지노선. 관객들이 약간의 가격 상승, 조금의 영화 실패, 극장 관람 체험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과도기적 불편을 참아주고 있는 동안.
근데 그 준비를 해야 했지만, 알 수 없는 부흥기에 취해 대비하지 않았던 관계자들은 이제 와서는 극장을 망하게 하는 원흉으로, 가장 영향력이 적고 필연적이기까지 한 OTT만을 탓하고 있다. 거부감이 드는 이용 가격, 한숨 나오는 영화 수준, 눈살을 찌푸릴 대상조차 없는 시설 수준은 외면한 채로.
허나 이해는 한다. 명색이 관계자인데 ‘영화 수준이 낮아요’, ‘극장 시설이 처참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주제와 분수를 몰라요’라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그러니 없앨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자신들의 실책과는 무관한 OTT만 패야지.
사실 말을 바로 하자면, OTT가 극장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다. 극장이 먼저 관람객을 내쫓았고, 그렇게 내쫓긴 관객의 발걸음이 OTT로 향했을 뿐. 그렇다면 극장이 OTT를 키운 공신인가. 또 그렇지도 않다. OTT는 놔둬도 알아서 잘 컸을 것이다. 설령 극장 운영이 정상이었어도, 영화 가격이 낮았어도, 설령 코로나가 안 왔어도. 극장은 원래 잘 될 OTT를 조금 빨리 잘 되도록 했을 뿐이다. 스스로 똥볼을 차면서. 근데 무슨 OTT가 극장을 죽여. 선후 인과 관계가 완전히 반대인데.
다만, 관계자이기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극장 관람’과 ‘방구석 OTT 감상’이 영화를 좋아하는 문화인들에게 ‘같은 체험’을 시켜준다고 정말로 믿고 있다면, 그래서 정말로 OTT 때문에 극장 관람객 수가 줄어들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러면……
아니면 그래서인가? 지금 이 결과가?
2025. 09. 27.
근데 막상 발행을 해서 위의 본문을 보면 띄어쓰기가 안 된 상태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왜 갑자기 이럴까.
브런치 관리자 분들, 띄어쓰기 인식 좀 되게 해 주세요…
저 같은 글찐따는 이게 너무 거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