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숭배
: |종교|사령 숭배의 하나로, 조상의 영혼을 우러러 신앙하는 것. 집단의 사회적 연대의 강화와 확인의 계기가 된다.
조상신
: |민속|4대조보다 더 앞선 조상을 신으로 여겨 부르는 명칭. 자손의 보호를 맡아본다고 여겼다. 보통의 제사에서는 모시지 않고 시향이나 가신제에서 받든다.
<예전>
우리는 민속신앙으로서 조상숭배를 합니다. 4대조 이상의 조상을 신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후손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더불어 종가로써 같은 신을 모시며 같은 제사를 지내는 일로 소속감과 일체감을 높이고 서로의 연대를 확인합니다. 즉, 제사는 집안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자 종교적 제례입니다.
<현재>
우리 가족은 각자 종교가 있어요. 누구는 무교고, 누구는 기독교고, 불교도 있고 천주교도 있고 다양해요. 그래서 우리는 조상숭배를 하지 않습니다. 조상은 핏줄과 연력에 따른 집안 어른들일 뿐, 신으로 여기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이미 각자가 믿는 종교에 따라 윤회하였거나, 천국에 갔거나, 무로 돌아갔거나 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이제 와서 제사는 종교 제례와는 별리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1. 각각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일만한 강력한 계기이자 근거.
2.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은 일을 하면서 가족의 정서와 연대감을 쌓는 행사.
3. 나를 키워주신 조부모와 부모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시간이자, 내가 태어날 수 있게끔 대를 이어 주신 조상들께 드리는 감사.
4-1.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점점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아이들은 점점 자신과 부모, 넓어봤자 조부모까지만 인식이 닿게 된다. 구성원 숫자만 핵가족화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인식까지도 핵가족화 하는 것이다. 역사의 커다란 물결, 인류 문명의 진보, 인간이라는 생물이 자손을 낳아 기르고 키우는 일에 대한 숭고함, 자신의 의지를 핏줄에 실어 후손에서 물려주는 장엄한 대물림, 이런 것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만큼 그 중요성을 소홀하게 여기고 그 가치를 절하하는 경향이 생긴다. 마치 자신이 아무런 기원이나 근거도 없이 이 세상에 뿅 하고 나타난 줄 안다. 그것이 아님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그렇게 여기며 살게 되는 것이다. 즉,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원의 단락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만 잘 살면 돼’, ‘내가 힘들면 가치 없어’라는 의식이 팽배해진다.
4-2. 제사가 됐든 무엇이 됐든 어떤 하나의 행위만으로 이 모든 것을 수습하고 보완할 수는 없지만, 이와 관련되어 부모와 조부모가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의무는, ‘종이에 이름으로만 남은 이가 실제 이 세상을 살았음’을 알려주는 일이다. 보통 고조부모나 증조부모는 실제로 얼굴 한 번 마주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을 테니까. 운이 좋지 않다면 조부모조차 기억에서 희미할 수 있다. 워낙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면. 운이 많이 나쁘다면 부모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의와 타의가 섞여 ‘기원의 단락화’가 진행될 아이에게, 아이의 고조부모와 증조부모를 실제 봤고 함께 살아왔던 조부모가 그들에 대해 되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전해줘야 한다. 아이의 증조부모와 조부모를 실제 봤고 함께 살아왔던 부모도 아이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줘야 한다. 아이의 핏줄이자, 기원이자, 역사이자, 조상인 사람들이 아이에게 그저 ‘종이 위의 이름’으로만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허공이 비틀리며 그 안에서 툭 튀어나온 외계종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이 지구상에서 아주 예전부터 살아왔던, 전란일 때도 기근일 때도 천재지변일 때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는 일을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노력과 기원이 닿고 연결되고 이어진 끝에 도달하게 된, 그 기적 같은 결과물이 자신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의 존귀함’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4-3-1. 나는 그냥 태어난 줄 알았어. 그냥저냥,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 왜냐면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인간이 이렇게나 많으니까. 나 하나 있든 없든 사실 상관없는 거 아냐? 80억분의 1인데? 그냥 무작위 난수의 연산값인데?
4-3-2. 근데, 사실 아니었대. 농구에서 3점 슛을 연달아 10개 넣는 것조차 너무 힘든데, 그 3점 슛보다 어려운 일을 지난 400만년 동안 20만 번 이상 연속으로 성공시킨 거래. 아니 이게 말이 돼? 근데 그 결과물이 나래. 물론 내가 이 억지 같은 노력의 총합 그 자체는 아닐 거야. 그렇게 괴물같이 대단한 사람일 수는 없지. 다만 그 결과물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이 세상에 있어도 되는, 계속 머물러도 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 아니야? 왜냐면 나는 20만 명의 아이인데. 어느 허공에서 근본도 없이 툭 튀어나온 이물질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과 기도가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이어진 결과물인데.
4-3-3. 아, 이게 대물림이라는 거구나. 고작 100년, 한 세기조차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이 45억년이 된 지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를 거듭해서 계속, 계속, 계속, 언젠가 어떤 이유로 끝이 날 때까지 계속 자신의 핏줄과 의지를 이어 보내는 일뿐이구나. 그러다 보니 그런 20년이 20만 번이 쌓였고, 그래서 400만년 동안 이어져 온 거구나. 나는 그렇게 태어났고, 나 역시 인류의 종착지가 아닌 기착지겠지. 대물림이 낳은 권리이자 동시에 의무고, 결과이자 원인이겠지. 대물림은,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위구나. 대단하다. 지금도 이렇게 살기 힘든데, 전쟁 중에는, 대기근 때는, 강점기 때는, 에어컨과 상하수도와 없고, 전기와 패딩도 없고, 질소비료도 만민평등도 없는 그 시대에는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새삼 모두 대단하네.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까지 의식을 확장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이는 자신의 뿌리와, 근거와, 그리고 발판을 찾게 된다.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그 발판 위에서 삶을 구가할 수 있게 된다.
4-4. 이렇게 아이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려줘서 ‘기원의 단락화’를 막는 일에, 제사는 세상에서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근거이자 계기가 된다.
4-5. 조상을 신으로 숭배해서도 아니고, 동태전이 먹고 싶어서 눈이 뒤집혀도 아니다. 휴가갈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해외여행을 혐오하는 국수주의자여서도 아니다. 명절이든 기일이든 특정 날에 온가족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면서, ‘누구한테 절하는 거예요?’라는 아이의 질문에 ‘아빠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시간을 자주 보냈어. 너한테는 증조할아버지지. 증조할아버지 알아? 아빠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빠인 분이야. 사진 보여줄게. 이렇게 생기셨어. 아빠가 어릴 때 할아버지와 무엇을 가장 많이 했냐면…’ 하고 이야기를 꺼낼 가장 좋은 분위기가 된다.
5. 그러면 이 모든 과정이 반드시 ‘제사 형식’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굳이 제사 형식일 필요가 없다. 이런 근거와 계기를 챙기고,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어떤 형식이어도 괜찮다. 조율이시 홍동백서의 거창한 제사상도, 간단한 과자와 차와 술이 놓인 다과상도, 아니면 피자와 햄버거, 제육볶음과 잔치국수에 놓인 잔칫상도 괜찮다. 다만, 나는 조상숭배를 하지 않지만 내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챙겼던 가치를 존중하고 풍습을 유지하고 싶어서 제사를 드리는 것뿐이다. 내가 본 모든 기독교인 중에 가장 독실했던 할아버지께서도, 당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 평생 제사상을 차리셨던 것처럼, 나 역시.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자유를 누구에게도 침범 받아서는 안 되고, 누구도 그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조롱할 거리도 아닙니다. 모든 조롱은 부당하지만, 이 경우는 더더욱 그렇지요. ‘조상 잘 만난 사람은 해외여행, 못 만난 인간들만 제사~ 엘레벨레~’라며 남을 조롱하기 전에, 자신이 하려는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존중합시다! 제가 먼저 당신의 ‘제사 지내지 않을 자유’를 존중하고, 그것을 비난하지 않을게요!
2025. 09. 28.
<참고>
https://brunch.co.kr/@e-lain/111
https://brunch.co.kr/@e-lain/316
<여담>
사실 09월 27일 자 <하루에 사전 한 장>에 들어갈 내용인데, 너무 길어져서…
주석 하나가 평소 본문 내용보다 길어지면 그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