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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12] 간격

by 이한얼






“아기씨.”


“응?”


“실뜨기해봤어?”


“실뜨기? 손가락에 실 걸어서, 그 실뜨기?”


“난 참, 무슨 얘기를 들었을 때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확인해보는 그 말버릇이 참 좋아.”


“도령, 벌써 취했어? 갑자기 웬 이상한 소리야?”


“아니야. 아무튼 그거 맞아. 해봤어?”


“당연히 해봤지. 예전에. 우리 어릴 때는 사실 놀 거리가 많지 않았잖아.”


“그렇지. 그 시절에는 내 몸뚱이가 가장 좋은 놀이기구였으니까.”


“근데 갑자기 웬 실뜨기?”


“계란말이 위에 케첩 보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어. 나는 말이야. 이념과 욕망, 전혀 반대에 서있는 두 단어가 실뜨기의 실처럼 엄청 난잡하게 꼬여있어. 어느 때는 이념을 위해 싸우는 혁명가일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부른 배와 따듯한 등을 위한 욕망의 돼지가 되기도 하고.”


“음… 그건 누구나 그렇지 않아?”


“맞아. 나도 그렇고, 아기씨도 그렇고 누구나 다 그렇지. 그런데 왜인지, 아니면 그래서인지, 나를 알고 싶다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결국 내 이념을 도무지 모르겠다며 떠나가. 모든 걸 이해해줄게, 라며 다가온 사람들도 결국 내 욕망에 미친놈 보듯이 떠나갔지.”


“…내 생각에 그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도령의 잘못도 아니고, 그들의 잘못도 아닐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내가 보기에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다가가는 것 같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원래부터 존재했던 그의 옆에 나를 살며시 내려놓는 거야. 함께 있는 것도 같이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서로의 눈에 띄는 곳에 있을 뿐이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두는 거라는 거지?”


“맞아. 상대에 대한 앎도, 납득도, 이해도, 수용도 모두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니까. 두 사람이 같은 색으로 물드는 일은, 그래서 '너와나'가 되는 본질은 그래. 그 시작은 비록 인간의 시도였어도, 그 과정은 섭리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욕심이 두 사람을 그렇게 두지 않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아무리 욕망에 휘둘려 상대에게 끌려가도, 서로가 정한 선 이상은 절대 넘으면 안 돼. 그 자리가 상대를 향한 최단이자 최선인 셈이지. 그 너머는 섭리의 영역이라 더 가까이 가고 싶지만 선 바로 앞에서 멈춰야 해. 그 부분이 참 아이러니한 것 같아. 선을 넘지 않는 한, 가깝게 붙을수록 상대와 가까워지는데, 선을 넘는 순간 오히려 순식간에 멀어지게 되는 것이. 그래서 모든 것에는 간격이 중요하다고 봐. 사물이든 사람이든, 주차된 자동차도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간격이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 있어야 두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 같아.”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네. 그건.”


“맞아. 거기에서도 이념과 욕망이 서로 엉켜 난잡하게 싸우는 거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평생 그렇게 줄다리기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마음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섭리의 그림자 안에 옹송그린 채로 해를 기다리는 거지. 선이 조금 뒤쪽으로 물러나서 그만큼 내가 다가갈 수 있기를, 혹여나 도로 이쪽으로 밀고 오지 않기를. 그래서 안타까워. 그 옛날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면, 죄에 대한 벌이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음, 왠지 좀 씁쓸하다.”


“그렇지. 자, 그러니까 빨리 선에 맞춰서 잘 따라봐. 모자라서 서운하지 않게, 넘쳐서 혓바닥이 날름거리지 않게, 당신이 날 갈구하는 만큼 가득 채워줘.”


“아, 나 이런 거 잘 못한다고!”


“그래서 원래 누군가를 갈구하는 일은 대부분 구갈로 끝이 나지, 킬킬. 팔 아프다. 술 따르는 사람 어디 갔나.”


“그냥 병째 마셔! 계란이 상했나, 잘 먹다가 갑자기 웬 헛소리야.”


“술 먹으면 과격해지는 이런 점도 참 멋져.”





201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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