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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자이 :1의 사람들] 1

1. "언니가 전화를 안 받네."

by 이한얼






물건이 가진 주인 개념은 사람의 것과 다르다. 누가 그것을 샀는지, 혹은 마지막에 소유한 것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누가 가장 많이 사용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기에 내 주인은 나를 구매한 자이가 아니다. 마지막 잉크를 쓰고 뚜껑을 닫은 동화도 아니다. 절반 이상 쓴 화자가 내 주인이다.

그러니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진 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첫 번째 주, 목요일



둘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 환영회였다. 신입생 환영회. 지난 삼일 동안 이 여섯 글자만큼 나를 설레게 하면서 동시에 궁지로 모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새로 들어온 학생을 환영해준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 생각인가. 물론 예쁜 이름만 한 꺼풀 벗겨내면 환영을 빙자한 괴롭힘과 온갖 흑심의 아수라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중고등학교 때는 1학년이 되어도 별다른 환영회를 하지 않았다. 냉동감자튀김에 소주는커녕 매점 빵에 콜라를 늘어놓은 자리조차 없었다. 최소한 학교 공식적인 일정은 그랬다. 아이들끼리 자체적으로 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교탁 앞에 서서 ‘환영회 할 건데 올 사람?’고 말하면 눈이라도 마주칠까 싶어 벽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런 학생이었으니까. 혹시 누군가 같이 가자고 소매를 잡아끌면 기쁨의 비명을 억누르며 마지못해 끌려가는 척했겠지. 하지만 아쉽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런 친구는 없었기에 변변찮은 모임도 없이 졸업을 했다.

그에 비해 대학교는 환영회가 있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심지어 10분짜리 첫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로 쳐들어온 훤칠한 학회장은 신입생 전원은 의무참석이라며 강하게 통보했다. 지금까지 이토록 달콤한 강압이 달리 있었던가. 사실 그런 의무는 없다던가, 혹은 그럼에도 안 갈 애들은 가지 않는다는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표정을 다듬은 나는 별로 내키지 않은 듯이, 의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처럼 가방을 챙겨 맸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인생 첫 술자리가 될 것이다. 사실 술은 별 관심 없다. 내 기대는 온통 술을 마시고 달라질 내 모습, 특히 성격이 판이하게 변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에 쏠렸다. 활발해지거나, 말이 많아지거나, 혹은 6년 간 자취를 감췄던 사교성이 불쑥 튀어나온다던가.

남들보다 천천히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모임 장소에는 아직 몇 사람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싶어 창으로 몰래 살펴봐도 벽에는 우리 과 현수막이 선명했다. 실내는 언뜻 봤던 선배들만 바쁘게 뛰어다니는 중이었고 신입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언덕길을 내려올 때 내 앞쪽에 우르르 몰려있던 아이들은 전부 어디 갔을까. 나도 다른 데서 시간을 죽이다 오는 것이 좋을까.

그때 출입구가 열리며 박스를 든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눈이 마주친 나는 굳어버렸다. 고등학생 때 기대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어쨌든 팔뚝이 잡혀 끌려 들어온 나는 졸지에 모임 준비를 거들게 되었다. 처음인 장소에 낯선 사람들. 내게는 상극인 분위기였다. 과한 긴장으로 어깨가 굳어서인지 간단한 운반조차 쩔쩔매던 나는 고작 20분 만에 진이 빠져버렸다.

앞서 밝혔지만, 둘을 처음 만난 것은 이 자리였다. 얼마쯤 그러고 있었을까. 입구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인솔하는 선배 한 명과 어느 순간 사라졌던 스물댓 명의 신입생들이었다. 그 중심에 아이가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미인인 아이는 무리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아담한 키였지만 다리가 길었다. 딱 붙지 않은 코트 위로도 날씬한 몸매가 슬쩍 드러났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채는 것은 눈이었다. 별이라도 갈아놓은 것처럼 반짝반짝하게, 이를 드러내며 초승달처럼 웃을 때는 주변이 함께 환해지는 듯했다. 아이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온, 구김살 없는 밝음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이가 신입생으로 들어왔으니 선배고 동급생이고 어찌 안 예뻐할까. 아이는 단번에 환영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여러 사람의 호감과 흑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입생의 에이스. 소주 뚜껑처럼 구석으로 밀려나서 안주나 나르는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미어캣처럼 등 돌린 군중을 향해 구시렁거리는 여자 선배들의 뒷말도 들려왔지만 나는 너무 예쁘게 웃는 아이를 미워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동경, 혹은 막연한 부러움뿐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백화점 쇼윈도에 진열된 아주 예쁜 코트를 본 심정이었다. 가지고 싶지만 돈은 없고 선물해줄 사람도 없어서 백 단위 가격표를 막연히 응시하다가, 오래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억지로 걸음을 물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와는 사는 세상이 다르겠구나. 안주로 나온 돈가스를 집어먹으며 코트도 아이도 그렇게 납득했다.

학회장의 개회사로 환영회가 시작됐다. 서로 데면데면하던 것은 처음뿐, 삼심 분쯤이 지나자 대부분의 자리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처음 얘기를 나누는 사람이 대부분일 텐데 마치 늘 이랬던 사이처럼 서로 웃고 떠들었다. 선배들이 먼저 분위기를 이끌었다. 신입생들도 그에 동조했다. 그렇게 삼심 분이 더 지나자 빨리 어울리지 못하는 몇을 제외하고 모두 한 팀처럼 떠들고 있었다.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만큼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연달아 들어오는 안주만큼 접시 사이와 발치에 뭉친 휴지들이 쌓여갔다. 일렬로 붙인 테이블에 수시로 듬성듬성한 빈자리가 만들어지면 다른 테이블에서 넘어온 사람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녹색 병을 기울여 잔을 채웠다. 다시 비어버린 자리에 담배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누군가가 앉았다. 그 일선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던 내 눈에 모두가 하나의 취지를 향해 달려가는 듯했다. 취하겠다. 너랑 건배를 하겠다. 몇 달 전까지 여기 절반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단지 해가 바뀐 것만으로 괜찮은 걸까. 원래 이런 건가. 다들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그게 당연한 건데 나만 이상한 걸까.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맨 정신인 내게는 온통 별천지 같은 모습이었다. 점점 집에 가고 싶어 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불꽃이 깜빡깜빡거리는 가스버너를 살피던 중에, 왁자하던 주변이 썰물처럼 조용해졌다. 소음의 공백에 자연스럽지 않은 위화감이 섞여있었다. 차갑게 식은 가스 연료통을 흔들며 고개를 돌리니 아이를 보고 있었다. 시선을 모은 아이는 마주 앉은 웬 남자를 보고 있었다. 머리를 깔끔하게 말아 넘긴, 서글서글하게 잘생긴 어느 선배였다. 선배는 뜻밖이라는 듯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반면 아이는 표정이 없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나는 충분히 흔든 연료를 버너에 끼웠다. 그대로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서너 마디가 지나갔다.


“뭐라고?”


잘못 들었나 싶은 선배가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기분 나쁘다고요. 취했어요?”


간간히 이어지던 포크 소리마저 멎었다. 살얼음만 껴있던 분위기가 아이의 딱딱한 어조에 급격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다들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장난으로 넘길 상황이 아니게 됐다고. 신입생은 물론 다른 선배들까지 입을 다무는 동안, 나는 연료와 버너를 연결하는 레버를 눌렀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자꾸 훑어보고, 이상한 농담하고. 기분 나빠요. 술도 억지로 먹이려고 하고.”

“난 그냥 분위기 상….”

“여기가 주점도 아니고, 분위기를 훨씬 넘었잖아요. 그리고 아까부터 걔 손은 왜 자꾸 만져요?”


아이가 맞은편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선배 옆자리에 앉은 신입생에게 모였다. 시선을 받은 여학생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본인도 모르게 왼손으로 오른 손등을 쓸어내렸다. 그쯤 되니 애써 웃던 선배의 얼굴도 구겨졌다. 달칵. 나는 스위치를 힘차게 돌렸지만 한 번에 불이 붙지 않았다. 달칵. 달칵.


“무슨 억지야? 그냥 장난친 건데.”


선배는 벌떡 일어났다. 말끔하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사람들은 진위여부를 몰라 허둥대기 시작했다. 다시 뺀 연료통을 흔들면서 나는 그들 주변부터 살폈다. 지난 십 년은 눈치라도 빨라야 욕을 덜 먹는 삶이었다. 아이의 말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 얼굴에 미약하게 동조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만으로 선배의 태도가 스스로 항변하는 만큼 말끔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연료를 끼우고, 레버를 누른 후에, 스위치를 돌렸다. 달칵. 화르륵하고 피어오른 불꽃이 냄비 바닥을 들이받았다.


“편히 마시자고 분위기 잡은 건데, 그렇게 몰아가면 어떡해?”


표정을 다잡은 선배는 머리를 긁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난처한 웃음을 보였다.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마주 웃었다. 선배의 태도는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기세를 억누르는 듯했다. 혹은 오해가 개입되었다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것처럼 보였다. 선배의 제스처에 지금껏 팽팽해지기만 하던 기운이 허리에서 끊어졌다. 한발 물러서 있던 군중은 그때부터 기운에 휩쓸리듯 이완되기 시작했다. 솟았던 어깨가 내려가고, 사라졌던 포크 소리가 군데군데서 다시 나타났다. 분위기 불편하게 만들지 말자고, 되도록 좋게 넘어가자고 하는 기류가 번졌다. 그제야 선배는 다시 아이와 눈을 맞췄다. 똑바로 떨어지는 시선을 본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미안한 듯이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오해로 억울한 것도, 이제라도 화해하자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미물에게 손가락이라도 물린 듯 괘씸함만 가득했다. 묘한 광기가 있었고, 또 상대를 해하려 하는 불쾌한 폭력성이 있었다. 뭐가 되었든 지금황이나 분위기에 맞지 않았다.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있는 아이는 벽처럼 단단한 얼굴이었다. 곱게 자란 난초가 비바람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서있는 것 같았다. 멀지 않은 자리에서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보던 나는 이제야 더럭 겁이 났다. 밤하늘이 번쩍거리기에 불꽃놀이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큰 산불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나처럼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다들 술자리에 있을 법한 사건처럼, 이제는 흥미위주의 시선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임원석에서 사건을 중재하려고 일어섰던 선배 한둘이 도로 자리에 앉았다. 모두 아마 이쯤에서 끝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처음처럼 꼿꼿했다.


편하게 마시려고 쓸데없이 손 만지고, 어깨 두드리고. 싫어서 피하는 게 뻔한데 자꾸 옆으로 오고. 안 마렵다는 애한테 화장실로 가라고 계속 떠밀었다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반대쪽으로 향했다. 졸지에 자리를 양보했던 남자 신입생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내 앉아있던 이가 벌떡 일어났다.


“전 갈게요.”


그러고 정말 코트와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제야 지금껏 미적거리던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와 아이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진위를 떠나 아이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기는 했다. 이미 오늘의 주인공이 된 아이가 이런 식으로, 더군다나 이런 문제로 나가버리면 환영회는 그 순간 끝이었다. 애매한 분위기로 흘러가다가 1차가 끝나면 전부 흐지부지 돌아갈 터였다. 예쁜 이름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낸 채로 말이다. 그럴 바에는 선배 한 명만 들어내고 아이를 진정시켜 환영회를 이어가는 것이 현명했다. 그런 면에서 선배들은 역시 경험자였다. 임원인 여자 선배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선배 아이에게 붙어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반대쪽은 단단해 보이는 남자 선배들이 흥분하려는 선배를 진정시켰다. 아이에게는 ‘쟤가 좀 취했나 보다’ ‘대신 미안하다’는 식의 사과와 설득이었고, 선배에게는 ‘닥치고 사과해라’ ‘일 커지면 학과장한테 끌려간다’는 식의 협박과 종용이었다. 사태가 불리함을 파악한 선배는 아이를 잠시 노려봤지만, 결국 먼저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다. 흐름 상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지경이 됐는데 과한다고 끝나겠어? 그런 나를 비웃듯 아이의 반응은 놀라웠다. 방금까지 다신 안 볼 것처럼 쏘아대던 사람이 맞나 싶게, 아이는 부드럽게 사과를 받았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낯선 자리라 긴장했는지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자기도 미안하다. 그러며 환하게 웃었다. 가자미눈으로 살펴도 가식이 아닌, 처음처럼 말끔한 웃음이었다. 다만 나는 왠지 불안함을 느꼈다. 깨끗한 미소를 띤 저 모습이 어째선지 금 간 유리 위에 서있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순간 아이가 불현듯 내 맞은편 자리를 봤다. 그리고 연달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아이를 보는 내 얼굴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속모를 눈빛으로 찌르듯 나를 바라봤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압박에 나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그 시선에 붙들려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아이에게 소주병을 내밀었다. 그제야 아이는 시선을 거뒀다. 도로 자리에 앉아 웃는 얼굴로 잔을 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밀렸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쉬었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불편한 기세는 스멀거리며 사라졌다. 선배들의 앞장섬과 신입생의 맞장구로 분위기는 이전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임원들의 얼굴이 안도감으로 물는 동안, 분란을 일으킨 선배는 잠시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를 처음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 눈에 띄기 시작한 때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사실 그는 꽤 빨리 와있었다. 내가 여기 도착하고 얼마 후, 그는 일행 없이 혼자 들어왔다. 큰 키에 운동복, 그리고 운동선수들이 쓸 법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전혀 기억에 남을 특색은 없었다. 물론 이후에 한껏 꾸미고 나타난 신입생 사이에서 안 좋은 의미로 두드러지기는 했다. 어쨌든 그뿐이었다. 그는 말수가 없어 보였다. 모임 준비를 같이 했음에도 딱딱하게 느껴지는 인상 탓에 먼저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환영회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대각선에 앉아서 건배할 때마다 잔을 부딪쳤지만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여자라는 알량한 이유로 선배들의 적선 같은 질문이 종종 떨어졌다. 하지만 복학생 같은 신입생인 그에게는 누구도 쉽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선배들은 티 나게 그를 배제했 주변의 신입생들도 티 나지 않게 무시했다. 그럼에도 그는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무례하지 않을 최소한 문답만 유지하며 자리를 지켰다.

그런 그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분위기가 절정으로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조용하게 앉아있는 것은 나와 같았지만 그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많은 이의 관심이 아이에게 몰입되며 말과 행동 하나에 들뜨고 있을 때 그는 반대로 점점 무심해지는 듯 보였다. 어떤 비유가 좋을까. 마치 장례를 치르는 중인데 옆집에서 칠순 잔치가 벌어진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 자의로 반응을 내보인 것은 잠시 후 아이가 한차례 파란을 일으켰을 때였다. 얼굴색이 옮겨가듯, 사라지는 아이의 표정만큼 그에게 표정이 나타났다. 처음은 남의 집 불구경이라도 하는 것 마냥 미약한 호기심만 드러냈다. 하지만 아이가 사과를 하고 다시 앉아 사람들과 이전처럼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얼굴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 남의 집이 자기 집이 된 것이다. 이후 반쯤 깨진 가면으로 어색하게 웃던 사람들과 달리 그는 송곳 같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은 왠지 알 것 같았다. 그때 그의 표정은 아마 환희에 가까웠다. 물론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동감 넘치는 그의 얼굴을 그 뒤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술에 담근 시간은 홀짝홀짝 금세 지나갔다. 1차를 마친 환영회는 길 건너 다른 술집에서 2차를 시작했다. 일찍 가야 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니 인원은 절반 정도로 줄어있었다. 취한 사람이 많은 2차는 1차보다 짧게 끝났다. 환영회의 공식 절차는 여기까지였다. 다들 술집 앞에 모여 화기애애하게 다른 이를 배웅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알큰하게 취한 상태로 그중 어딘가에 껴있었다. 가란 말이 없다 보니 빠져야 할 시기를 놓쳐버린 것도 있고, 사교성이 곧 나올 것 같다며 기다린 탓도 있었다. 그러다가 취해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이었다. 시계를 보니 8시는커녕 9시도 한참 넘었다.

취한 사람부터 먼저 보내고 나니 아직 발음이 멀쩡한 사람만 남았다. 선배 다섯에 신입생 여섯이었다. 자체적인 3차와 해산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무리에 아이뿐만 아니라 그도 껴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둘 역시 의외였다. 아이는 깍쟁이처럼 1차에서 빠질 줄 알았는데. 덜 마신 건지 아니면 술이 센 건지 몰라도 하얀 혈색 그대로였다. 반면 건물에 기대선 그는 딱 봐도 취했다. 그럴 만했다. 등 돌린 군중 속에서 지금까지 버티려면 술이라도 마셔야지.

남은 무리의 방향이 점차 3차 쪽으로 기우는 듯하자 아이가 앞서 손을 들었다.


“전 이만 들어갈게요.”


모인 이들의 표정이 하나 같이 추락했다. 그 모습이 절묘해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벽을 보고 숫자를 세는 동안 선배들은 아이를 붙잡았다.


“너무 늦었어요. 사실 아까부터 졸렸거든요.”

“그래도….”

“내일 1교시부터 수업도 있으니까요. 다음에 봬요.”


바늘 들어갈 틈도 없는 명분에 선배들도 고개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웃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섰더니 선배들이 왜인지 나를 보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새어나갔나. 뜨끔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본 후에야 깨달았다. 신입생 중에 여자는 아이와 나뿐이었고, 그러니 자연히 아이 다음 순번이었다. 왠지 아까보다 시선이 곱절은 간절해졌다. 나 역시 쉬고 싶었으나 가겠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뱉어놓고 아차 했지만 이미 선배들의 표정은 완전히 추락했다.


“너는?”


선배들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말만 물어보는 거지 사실 별 의지는 없는 듯했다. 가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그도 귀가 의사를 밝혔다. 선배들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신입생 셋만 챙겨 자기들끼리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제 술집 앞은 우리 셋만 남았다. 아이는 아니겠지만 그는 분명 아이 때문에 남았을 것이다. 둘만 남기고 먼저 가는 것이 걱정될 만큼 그는 술자리 내내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봤으니까. 최소한 아이를 배웅할 셈이었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는 중에 그가 먼저 움직였다. 멀어지는 선배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선 그는

“잘 곳 없지?”

라고, 건너 듣는 내가 깜짝 놀랄 만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늘은 의외만 가득하네. 동시에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마치 밥은 먹었냐는 질문처럼 태연하게 반응했다.


“왜?”

“그럴 것 같아서. 없지?”

“있어.”


이번에는 그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불콰해진 피부를 움직여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아니 쟤 말을 네가 왜 불신해.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왜 나를 보는 걸까. 지금 그의 표정을 지적했어야 했나. 내가 가만히 서있자 아이는 미간을 구겼다. 이번에는 아이 쪽이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끝내 말이 없으니 아이는 그를 보며 말했다.


“없으면?”

“우리 집에서 자.”


음료라도 권하는 어투에 내 입이 쩍 벌어졌다. 아이는 대답 대신 그의 눈을 봤다. 정확히는 눈 너머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무슨 생각인지, 무슨 의도인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 같았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지. 내가 아는 한 둘 사이의 접점은 이 자리가 처음이었다.


“그래.”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이 잘못 들었나 싶어 멍청하게 서있는 나를 향했다. 세 명의 눈이 허공에서 만났다.


“너는?”


그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난 있긴 한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아쉽다는 표정을 본 나는 어째서인지 변명하듯 대꾸했다.


“사촌 언니가 자취해서.”

“멀어?”

“데려다줄까?”


그와 아이가 나란히 물었다.


“아냐, 가까워. 혼자 갈 수 있어.”

“그래. 그럼 다음에 봐.”


아이는 환한 얼굴로 축객령을 내렸다. 나는 잠시 대꾸할 말을 찾아 엉거주춤 있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섰다. 선배들이 갔던 길을 따라 얼마쯤 걸어갔을까. 문득 돌아보니 아이는 선배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 곁에 선 그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둘 다 비범했다. 어쩌면 내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저대로 두고 가도 정말 괜찮은 건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들어선 골목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그냥 가도 되나. 아니, 그냥 가야는 건가. 잠시 제자리에서 방황하던 나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오늘 못 갈 것 같아. 동기 방에서 더 마시기로 해서. 아니야, 여자애들만 남았어. 응. 내일 봐.”


통화를 끝낸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갔다. 둘을 떠올리면 어째 한숨부터 나왔다. 왠지 귀찮은 일에 발을 담그러 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일 들을 사촌언니의 잔소리가 아니었다. 뒤쫓아 갔을 때 혹시 그가 지을 낭패라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왜 돌아왔냐는 아이의 표정이 더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보니 얼추 10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의 집은 깨끗했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이라 외벽과 내부도 깔끔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작은 신발장이 있는 주방이 먼저 나왔다. 정면에 있는 문 너머는 거실이었고, 거실 왼쪽은 방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주방이 머리고 화장실이 꼬리라 치면 직사각형을 말아놓은 정사각형 구조였다. 인테리어는 방주인의 성격을 반영한 듯 단출했다. 있어야 할 가구와 물건만 놔둔 미니멀리즘. 그런 만큼 몇 벌의 이불과 베개는 눈에 띄었다.


“웬 이불이 이렇게 많아?”


같은 것을 느꼈는지 아이도 그것부터 물어봤다.


“필요할까 해서.”


그는 들고 있던 봉투를 내려놓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흐음, 하고 낮게 대답한 아이는 한쪽에 자신의 가방과 코트를 내려놨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옷 줘.”


맡겨놨냐. 어처구니없는 속마음이 울대를 오가는데 그는 서랍을 뒤져 검은색과 회색 바지를 꺼냈다. 여성용 운동복이었다. 세상에, 남자애 방에 저게 왜 있어. 놀랄 틈도 없이 행거에서 하늘색과 연두색 여성용 티셔츠를 내렸다. 아이에게 검은색과 하늘색, 내게는 회색과 연두색을 줬다. 그는 어디서 갈아입어야 하나 두리번거리는 나를 지나쳐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이미 원피스를 벗는 중이었다. 왠지 누군가 훔쳐보고 있을 것 같아 나는 쭈뼛거렸다. 그 사이 전부 갈아입은 아이는 벗은 원피스를 접으며 거실을 살폈다.


“보통 남자들은 이러고 사는구나.”


보통은 이러지 않을 텐데.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한 장미 벽지는 집주인의 횡포라 치자. 그래도 보통 구겨진 양말이나 재떨이 따위가 굴러다니지 않을까. 남자 방에 들여온 것은 처음이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창문에 사진들이 촘촘히 붙어있거나, 베란다에 이젤과 붓이 담긴 물통이 있거나, 몇 벌의 이불과 여자 옷을 미리 준비해놓지는 않을 터였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레이스 커튼만 갖춰놓으면 미대 다니는 여학생 방이라고 해도 믿겠다.

눈치를 보며 주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마치 지켜본 것처럼 간결한 노크와 함께 그가 방에서 나왔다. 대답도 듣기 전에 벌컥 나올 거면 노크는 왜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주방 앞에 멀뚱하게 서있는 내게 앉으라고 눈짓을 했다. 의자가 두 개뿐인 식탁에 아이는 이미 앉아있었다. 남은 의자에 엉거주춤 앉으니 그는 주방으로 나갔다. 냉장고를 열어 검정 플라스틱 박스를 꺼내온 그는 내용물을 보여줬다. 렌즈통, 세척액, 여성용 스킨과 로션 등이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둔 하얀 플라스틱 박스도 들고 왔다. 머리끈과 헤어핀, 손톱깎이와 면봉. 리무버와 클렌징 솜 등이 들어있었다. 이쯤 되니 서랍장에서 생리대와 속바지까지 나올 것 같아 무서울 지경이었다. 반면 아이는 태연해 보였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시킨 그는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놨다. 책상 의자를 끌어와 식탁 모서리에 자리를 잡았다. 순서대로 흐르던 움직임이 삼각형을 만들며 멈췄다. 그는 마치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또렷한 눈빛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 그때까지 창에 붙은 수십 장의 사진들을 훑던 아이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아이는 나를 봤다. 저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를 두고 왜 나를 보는지 모르겠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마주 봐도 그저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맥주 있어?”


아이는 냉장고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내 기억에 맥주는 안 샀다. 빈손은 예의가 아니라고 두루마리 화장지만 사 왔다. 맥주도 살 걸 그랬나. 내가 안절부절못하기도 전에 그가 답했다.


“있어. 소주도 있고.”

“안주할 것도 있어?”

“간단한 탕이랑 볶음 정도.”


아이의 말에 그는 바로바로 답을 붙였다. 잠시 알 수 없는 얼굴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오늘은 늦었으니 일단 자자.”


그냥 잔다고? 그럼 술안주는 왜 물어본 거야. 그는 잽싸게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침대와 바닥에 요를 까는 동안 아이가 말했다.


“어디서 잘 거야?”


눈길이 자연스레 방으로 향했다. TV 앞에 침대는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싱글 사이즈였다. 평생 침대 밖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침대라고 해도 될까. 나는 필사적으로 혀를 붙들었다. 이불을 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잠시 후 바닥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침구 정리를 마친 그는 아이의 시선에도 묵묵부답, 장승처럼 식탁 앞에 서있을 뿐이었다.


“침대에서 자도 돼?”


아이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 이불이라 깨끗해”라고 덧붙였다. 아이는 조용히 침대로 올라갔다. 등받이에 기대 허리까지 이불을 덮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불을 껐다.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들어온 가로등이 벽지에 연하게 번졌다. 그는 거실에 자리를 폈다. 옷을 거는 행거와 식탁 사이였다. 키가 큰 그가 누울 법한 공간은 거기뿐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주인이 잘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잘 자.”

“잘 자.”


아이의 말에 문 앞에 선 그가 답했다. 그 모습에 누워야 할지 앉아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너희들 씻는 것은 어쩌고. 자자고 했으니 그냥 누워야 하나. 슬쩍 이불속으로 누우려는데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왜? 아니야? 역시 씻어야겠지? 황급히 상체를 세웠다. 그럼에도 시선은 여전했다. 나는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자.”


어두웠음에도, 아이가 환하게 웃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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