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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24] 인간의 조건

by 이한얼

[5/7]





“얼마 전에 무너진 게 뭐예요?”


“얼마 전 무너진 거? 너무 많은데.”


“엊그제였나. 무너지면 안 되는 게 갑자기 무너졌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 그렇죠. 지금 그게 가장 중요하긴 하죠. 그 뒤로도 중요한 게 계속 터져서 그렇지.”


“그만한 게 계속 무너진 거예요?”


“아니에요. 그 뒤는 좀 다른 종류고, 어쨌든 최근 가장 중요한 건 그거 맞아요.”


“어떤 거예요? 물어봐도 돼요?”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시비의 기준이에요.”


“시비? 옳고 그름, 그거요?”


“네.”


“아….”


“지금 그게 많이 중요한 건가?라고 생각했죠?”


“티 나요? 나름 관리했는데.”


“심층 의식에 드러났어요.”


“그럼 그냥 물어볼게요. 그게 왜 중요한 거예요?”


“사실 그거 하나만 두고 보면 그리 크게 보이진 않죠. 뭐가 옳고 그른지 잘 몰라도 뭐 죽기야 하겠어요. 그냥 좀 고달프고, 욕 좀 먹으면서 사는 거지. 게다가 사람은 어쨌든 하나의 가치에 얽혀서 연동되는 다른 수많은 가치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시비 기준을 상실하더라도 갑자기 막 엇나가거나 잘못되거나 그러진 않아요.”


“…끝이에요?”


“근데, 음….”


“아, 되게 60초 광고 같이 구네. 근데요?”


“그냥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 내 식대로 설명할게요.”


“날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말해요.”


“인간이 인간으로 살려면 최소한 세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해요. 혹시 뭐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머리 쓰는 것보다 도령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뭔데요?”


“세 가지 요소는 첫째가 시비, 둘째가 공감, 셋째가 이성이죠.”


“…….”


“지난번 그게 중요한 이유는 시비라는 내용이 아니라, 그 셋 중 하나가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너무 이른 타이밍에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사실 열아홉 때는 이 세 개가 그나마 나중까지 버티다 마지막쯤에 연달아 무너졌으니까. 근데 이번에는 너무 빨리 셋 중 하나가 빠져버려서, 그래서 그때 좀 힘들었어요.”


“만약에 그 세 개가 다 무너지면요? 어떻게 돼요?”


“그럼 짐승으로 사는 거지요.”


“어머, 짐승남.”


“이걸 이렇게 받아치네.”


“그냥. 한 번이라도 더 웃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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