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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백 중 일

[그데담 028] 당신이 내 마음에 노크한 날

by 이한얼

[7/7]






“괜찮아요?”


“응. 진정됐어요.”


“…나는.”


“…….”


“<성찰> 편에 나온 호수에 대한 글, 되게 인상 깊었어요.”


“왜요?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비슷한가? 그렇겠죠. 나 역시 내가 그런 상태일 때가 있는데, 도령이랑 다른 건, 나는 너무 슬플 때 가끔이지만 그런 상태가 되거든요. 마음이 계속 아프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


“그건 너무 외로운 무아지경이겠네요.”


“맞아요. 그 순간은 정말 이 세상에 나 혼자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대로 사라지고 싶은 마음. 그래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나 처음 그 글을 보고 엄청 울었어요. 왜인지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서 계속 울었어요.”


“지금은 왜인지 알아요?”


“왠지 그런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해받은 것 같았거든요.”


“위로가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위로라는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그런 기분이었어요.”


“그랬구나. 그 순간 내 글이 당신을 살렸나 보다.”


“나는 그날, 별 일 없었어요. 달리 기억나는 것도 없는 평범한 날. 힘든 일도 없었고 뭐 좋은 일도 딱히 없이, 그냥 평범하게 퇴근해서 집에 와서 아기들 사진 좀 찍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옷을 좀 사고 싶어서 이래저래 둘러보다가, 옷 잘 입는 사람들 블로그도 돌아보다가, 그러다 어쩌다 보니 어느 블로그로 들어갔어요.”


“그게 혹시 내 집?”


“네.”


“아, 당신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알겠다.”


“들어가서 왠지 익숙한 이름이네, 하다가 어떤 글을 우연찮게 읽었는데. 그게 마침 그 글이었어요.”


“성찰?”


“응.”


“…….”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졌어요. 처음에는 내가 왜 그런지도 몰랐어. 컴퓨터 앞에 간신히 앉아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부터 끝도 없이 눈물이 나는 거야. 내가 어디로 막 떨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왜인지도 모르게 한참을 울고 나서 다시 그걸 읽어봤는데, 그제야 좀 알겠더라. 내가 그러더라고요. 당신이랑 반대긴 한데, 나는 내가 힘든 걸 잘 몰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겨서. 평소에 잘 안 앓아요. 마음 아픈 일도 많지 않고. 근데 그게 나만 못 느낄 뿐이지 안에 쌓이나 봐요.”


“그렇죠. 못 느끼는 거지, 안 힘든 게 아니지.”


“그랬나 봐요. 나도 가끔 마음이 아프고 슬픈 날이 있어요. 힘들 때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또 여자들은 그러지. 그럴 때 나는 그냥 그걸 내버려둬요. 당신 집에서 그런 글도 읽은 것 같아. 마음 아픈 걸 내버려두면, 외로운 것도 놔두면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벗어나게 된다고.”


“응. 그런 글 있어요.”


“근데 나는 조금 달라요. 나는 그렇게 놔두면, 내가 나를 놓으면 정말 끝도 없이 슬퍼져. 점점 더 아파. 그러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 느끼게 되는 상태가 오는데, 그때가 참 중독성 있는 것 같아요. 엄청 아프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놔버린 듯이 해방감? 자유? 같은 게 느껴지면서 나는 그 기분을 즐겨요. 당신 말대로 그 상태라는 마약에 중독된 거겠지. 그래서 가끔이지만 힘든 날이 오면 그날은 난 아무것도 안 하고 나가지도 않고 하루 종일 그 상태로 끙끙 앓아요. 그 상태는 좋은데, 동시에 너무 외로워. 마음 같아선 그런 내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러다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게 옆에서 누가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게 안 되면 누군가 그런 마음이라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상태가 어떤 건지 공감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근데 주변에 말해봐도 무슨 느낌인지 이해 못하는 거야. 그거 안다고 말하는 애도 전혀 모르는 것 같아. 그러면 난 참 외로웠어요. 그 상태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게 좋아서 그러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너무 외로운 거야.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고,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고. 그런 내가 너무 싫었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같아 슬펐어. 슬프다는 말보다, 처참했어. 그러다가 당신 글을 읽었는데, 그때는 참… 동굴 속에서 빛을 본 기분이었어요.”


“그랬구나. 사실 자신이 그런 상태여도 내 글과 결부시키는 건 어려운 일인데. 보통 ‘나는 달라, 나는 독특해, 그래서 이 부분은 남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미리 벽을 쳐놓으니까. 비슷한 것을 봐도 비슷하다고 잘 못 느끼는 사람이 많지.”


“나는 다행히 링크가 되었나 봐. 당신의 아무렇지도 않은 글이, 그냥 가슴에 박혔어. 그래서 그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종종, 당신의 집에 가서 다른 글들을 봤어. 모든 글이 다 와 닿은 건 아니지만, 나와 안 맞는 글도 꽤나 있었지만, 그것 말고도 보면서 엄청 운 글도 많아요. 답답한 게 정리된 것도 많았고. 그 글. 혼자 있을 때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다는 글.”


“아. 그거 주변에 반응이 좋았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방명록에다가 글 잘 봤다고, 고맙다고 인사도 남겨주고.”


“응. 나도 그거 닳도록 봤어요. 그리고 도움이 많이 됐어요. 나 그 무렵 계속 그 상태였거든. 하루에도 몇 번씩 괜히 울음이 터졌어요. 뭔가 한 달 내내 생리 중 같은데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계속 산 거야. 그러면서 당신 글 대로면, 나는 점점 몸이랑 마음이 멀어졌어요. 그런 상태에서 당신 글들이, 어쩌면 나한테는 정말 생명줄 같았어요.”


“처음 듣네. 기분이 묘하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근데 재밌는 게, 당신 집을 둘러보다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인 거야.”


“우리 그때 잠시 마주치고, 한 이틀 봤나? 그 후에 서울에서 두어 번 보고, 그 뒤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으니까. 마지막이 어디였죠? 바리였나?”


“무슨 바리야. 피렌체에서 처음 보고, 피사에서 헤어졌잖아요. 서울에서 마지막은 홍대고.”


“아, 그랬나.”


“누구야? 어떤 년이랑 헷갈린 거야?”


“아니에요. 그때 맞네. 아무튼 그래서요?”


“재밌더라고. 사람이 일 어찌 될지 모른다더니. 이런 게 인연인가 싶었어요. 그렇게 한 달인가. 나는 당신 집을 샅샅이 뒤졌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연락을 했죠.”


“아.”


“아까 비밀이라고 해놓고, 나도 참 비밀 오래도 간다. 근데 반응이 왜 그래요? 남이 기껏 말하기 부끄러운 거 털어놨더니.”


“이거 말하기 부끄러운 비밀이었어요?”


“좀 이상하잖아요.”


“어디가?”


“그냥 아, 몰라요.”


“음… 나는.”


“나는?”


“나는 그냥 좀 놀랐어요.”


“왜요?”


“나는 지금까지 십 년 정도 글을 썼고, 그 글을 항상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 오픈해놨어요. 여러 사람들이 봤고, 그래 봤자 대부분 내 주변 사람이지만. 때론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내 글을 보게 되고. 뭐, 글 때문에 논란도 있었고 주변 사람이랑 싸우기도 하고 언쟁도 많았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리액션’도 많이 받았어요. 리액션은 좋든 나쁘든 모두 글을 쓰는 내겐 기쁨이죠.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도 개진하는 사람들. 그래서 이런저런 사상적 소통을 하다가 친해진 사람들. 잘 이해가지 않은 부분을 되묻는 아이들.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들. 비난하는 사람들. 고맙다고 하는 사람들.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 내 글을 보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이만큼 뭐랄까, 극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처음이에요. 어쩌면 단지 내게 말을 안 했을 뿐, 이전에도 있었을 수 있었겠죠. 나도 글을 쓰면서 내 글을 읽고 누군가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좀 어안이 벙벙해요.”


“…칭찬이에요? 아닌가? 욕인가? 아닌데. 뭐지, 뭐예요, 무슨 말이에요?”


“고맙다는 말이에요. 내 글, 가슴으로 읽어주고 느껴줘서 고마워요.”


“나야말로 고마워요. 내 삶에 작은 등불 하나를 더 만들어줘서.”


“…….”


“…….”


“으악! 쑥스러워! 낯간지러워! 소름!”


“뭐야, 자기가 먼저 분위기 잡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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